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모음

鶴山 徐 仁 2015. 7. 21. 22:12


기독교는 기다림의 신앙이다


기독교는 기다림의 신앙입니다.
주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의 주로 임하심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 결 같이 기다림의 대가(大家)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릴 수 없는 중에 25년을 기다려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요셉은 어둠의 감옥 속에서 13년을 기다려 애굽의 총리로 세워졌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려
출애굽의 리더로 부름 받았습니다.
욥, 다윗, 다니엘, 이사야, 느헤미야, 하박국, 사도 요한, 바울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기다릴 수 없는 중에 기다려
쓰임 받은 사람들입니다.
-김석년 목사의 ‘기다림의 사람들’에서-

혹자는 기다림이 수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약한 사람들의 체념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급함이 인생을 망칩니다.
아브라함의 조급함이 불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고,
인류 역사의 큰 불행이 되었습니다.
조급함이 언제나 교회를 망칩니다.
그래서 인생을 향한 프란츠 카프카의 지적은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다.
조급함과 게으름이다. 다른 모든 죄도 여기서 나온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18: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The LORD lives! Praise be to my Rock! Exalted be God my Savior!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그리스도인의 질문 - 에베소서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염려와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여러분은 지금 어떠십니까? 자녀, 사업, 직장, 재산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한다면 나의 생각은 달라지겠지요.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인정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십자가 그늘아래,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근심 걱정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 각자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먼저, “나는 거듭났습니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마음속에 담대함과 기쁨이 있습니다. 거듭남의 대상은 속사람으로 속사람의 강건함입니다. 이 거듭남은 최고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이 거듭남은 또한 믿음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확신가운데 신앙인은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성령 충만하십니까?”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심입니다. 성령은 보혜사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감화하시며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그들의 사역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은 이후에는 한계 없는 사역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사역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 충만함으로 변화를 체험하고 능력있게 사역하심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나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입니다(17). 내 인생과 가정과 사업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 구주로 믿는 것과 실제적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을 필요할 때만 하다가 안 될 경우에 나를 도와주는 서비스 맨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려는 것은 불안한 우리 인생을 더 완벽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떠나서 내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았던 과거를 회개합시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모셔드리고, 그분과 동행하며 내 마음의 보좌를 주님께 내어 드립시다. 그리한다면 우리의 삶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적용>
- 거듭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나에게 그런 요소가 있는지요.
- 성령께서 나의 삶과 사역을 이끄심을 경험하시는지, 그리고 나는 순종하고 있으신지요.
- 당신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이제 고백하고 맡기시는 기도를 드립시다.

[기도]
존귀하신 주 하나님, 저를 사랑하시고 택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보리떡과 같은 인생이지만 주님께 맡기오니 새롭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저의 마음에 오셔서 주인되심으로 다스려 주시고, 성령충만하게 하시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은사는 다른 이를 도와주고 섬기는 것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섬기려고 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성경 길 마음 길’의 ‘조금만 더 사랑하세요’에서-

많이 배우거나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유익하며 좋은 일이지만
무작정 많이 가지고만 있으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면
내가 잘되고 행복하려고 모은 것들이 도리어 나를 망하게 하고
급기야는 이 세상마저 썩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귀한 것들로 힘껏 나누고 베푸십시오.
진정한 은사를 받은 자는 도와주고 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yet was without sin.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참된 그리스도인 - 로마서 8:5-9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4-5). 그 약속이 바로 성령강림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던 마가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재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행2:4). 그로 인해 교회가 탄생되었고, 지금도 성령은 교회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구별된 성도들입니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를 누리고, 건강하게 무병장수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다스리시는 귀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사명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성도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지명하시면서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민27:18)라고 말씀하셨고, 신약의 예루살렘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성령은 가장 먼저 강조되고 있습니다(행6:3). 결국 성도가 가장 큰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 충만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내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내 안에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고 상황과 상관없이 기쁨과 감사가 넘친다면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담대함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자신이 준비하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동행하기 때문에 담대함을 잃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자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만큼 고달픈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삶을 사는 신앙인의 마음에는 은혜가 넘칩니다. 네 번째는 내적인 갈등, 즉 영과 육의 전쟁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이후에도 세상의 정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 갈등을 느꼈던 것처럼 참된 크리스천들도 삶 속에서 영과 육의 전쟁을 늘 경험합니다. 이러한 갈등은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인 삶의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없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고, 만약 하나님의 영, 성령이 계시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9절).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고대하면서 살아갑니다. 또한 우리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4절). 자녀는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을 빼고, 몸을 물에 맡기듯이 우리도 성령께 모든 두려움을 버리고, 나의 힘을 빼고, 모든 것을 맡긴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용>
-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무엇이며, 나는 지금 그 복을 누리고 있나요?
- 만약 억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방안을 생각해 봅시다.
-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나는 성령 충만을 얼마나 사모하시는지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주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담대하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자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게 하시고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속사람이 강건하도록 성령으로충만케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하나님의 평강이 있다면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걱정이 없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주 안에서
다니엘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급으로 노예로 팔려갔다.
그런데 아무 걱정이 없었다. 왜 그럴 수 있었나?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무수한 전쟁 속에서도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손길이 지켜주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얼굴은 천사처럼 변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평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남수 목사의‘그래도 웃어야 합니다’에서-

내가 기뻐하면 이런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면 기뻐하겠다가 아니라
내가 주안에서 기뻐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은 환경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 포도열매나 감람나무나 양이나 소가 없을 지라도
우리가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고린도전서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However, as it is written: "No eye has seen, no ear has heard, no mind has conceived w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쑥과 담즙 - 애 3:19-39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19절).
여기서 말씀하는 <쑥과 담즙>이란 쓰디 쓴 고초와 각종 재난을 뜻합니다. 주님은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5)고 하시며 담즙처럼 쓴 재난이 죄와 무관치 않음과 또 회개하므로 그런 불행을 사전에 피할 수도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예레미야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내 쑥과 담즙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분노의 매는 정말 쑥처럼, 담즙처럼 치가 떨리도록 쓰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근심하게 하시나 본심이 아니시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33절).
이 말씀처럼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로 우리를 근심하게 하시고 고생하게 하시고, 쑥과 담즙과도 같은 고초와 재난을 겪게 하시지만 그러나 그게 결코 하나님의 본심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때로 당신의 백성들을 근심하게 하시나 언젠가는 반드시 긍휼히 여기사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실 것(32절)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 본심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매를 드시되 우리를 죽도록 때리시지는 않습니다. 때로 쑥과 담즙과도 같은 고초와 재난을 겪게 하시지만 보약처럼 결국은 입에 쓴 그 모든 아픔이 풍부한 하나님의 긍휼이 되게 하십니다. 그게 바로 우리를 근심하게 하시지만 본심은 아니라고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에서 나오느니라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38절).
그렇습니다. <복>뿐 아니라 <화> 역시도 다 지존자에게서 나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신 30:15). 화와 복, 생명과 사망이 다 여호와께 달렸음을 진심으로 시인하고 고백하십시오. 인간의 능력이나 재주나 노력 여하에 달린 게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가 내 삶과 내 운명에 결정적이고도 절대적인 존재십니다. 인생은 누구도 여호와를 떠나 참된 복을 누릴 수는 없고 여호와를 등지고 화를 피해 살 수는 없습니다. 화와 복과 생명과 사망의 진정한 주인이신 여호와께 더욱 성실히 순종하시고 복종하셔서 당신의 삶과 생애가 늘 화가 아닌 복으로, 사망이 아닌 생명으로 충만하시길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다섯 글자 예쁜 말 미운 말


어른들은 다섯 글자 예쁜 말을 얼마나 쓰고 있을까?
다시 만나요,
즐거웠어요, 언제든 와요, 살펴 가세요,
조심하세요, 건강하세요, 축하합니다,
오래 사세요, 행복하세요, 참 맛있네요,
참 잘했구나, 복 받으세요, 예쁘시네요,
고우시네요, 보기 좋네요, 멋지십니다,
자랑스럽다, 함께 웃어요, 함께 먹어요,
함께 갑시다, 걱정 마세요, 안심하세요,
잘될 겁니다, 충분합니다. 넉넉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할게요, 제 탓입니다, 미안(죄송)합니다.
부탁합니다. 잘 봐주세요, 한 번 봐줘요, 잘 넣으세요,
또 드릴게요, 도와주세요, 끌어주세요,
-최장환 목사의 ‘아름다운 신앙생활’에서-

어린이들에게는 예쁜 말을 하라고 노래까지 지어 가르치면서
정작 어른들은 예쁜 말은 고사하고
다섯 글자 못 된 말만 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만 끊어요, 돌아가세요, 오지 마세요,
보기 싫어요, 그만두세요, 모르겠어요,
내 돈 갚아라, 겨우 이거냐?, 공부나 좀 해, 자빠져 자라, 너 죽고 싶니?,
잘 났어 정말, 웃기고 있네, 싫다니까요, 빌어먹을 놈, 바보 같은 놈,
우라질 녀석, 벼락 맞을 놈, 나가 죽어라고 하면 나쁜 말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고린도후서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Not that we are competent in ourselves to claim anything for ourselves, but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 창세기 26장 17~25절
17.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삭이 블레셋 지역이었던 그랄 골짜기에 머물렀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삭이 그곳에 거주할 때 우물을 팠습니다. 그 우물은 샘의 근원이어서 물이 풍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랄 지역의 사람들이 그 우물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면서 이삭의 사람들과 다투기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팠던 그 우물을 메워두고 사용하지 않다가 이삭이 그 우물을 다시 파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이삭의 입장에서 보면, 괘씸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 곧 ‘다툼’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삭이 어떻게 합니까? 그 우물을 그랄 지역의 목자들에게 주고 물러납니다. 그리고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도 물이 터졌습니다. 그랄 목자들은 또 그곳까지 찾아 와서우물을 두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싯나’ 곧 ‘대적’이라는 붙이고, 다투지 않고 또 물러납니다. 그리고 나서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 이름을 ‘르호봇’ 곧 ‘넓다, 확장되다’라고 붙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랄지역의 목자들이 왜 싸움을 시작합니까? 이삭이 판 우물에서 물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에게 왜 다툼이 시작됩니까? 소유가 많아지고 나눌 것이 많아졌을 때, 우리의 삶에도 다툼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이 많아지기 시작할 때,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할 때가 아니라, 풍요로울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이삭은 다툼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에섹’ ‘싯나’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서 ‘르호봇’에 머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삭이 뒤로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이삭은 지경을 넓히게 된 겁니다.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느냐가 내 삶이 행복한가 아닌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양보하는 것은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넓어지는 길입니다. 우리의 안목이 이삭과 같이 넓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행복의 기준을 세상에서 더 많이 갖고 누리는 것에 둔다면, 우리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행복의 기준, 삶의 가치관, 인생의 목적이 변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서 뛰어가야만 합니다. 이삭이 그랄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물러설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바라볼지라도 우리는 다툼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물러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이삭과 같이 뒤로 물러나서 더 넓은 땅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신앙생활을 점검하라


사탄은 우리를 계속해서 넘어뜨리기를 원하고
우리를 기만하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를 알고 있는지
하나씩 점검하며 신앙생활하면 분별할 수 있다.
점검해야할 것은 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다니는 교회와 목회자 혹은 지도자의
영적 자질을 점검해야한다.
둘째는 나의 신앙태도이다.
셋째는 예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다.
-김제이 목사의 ‘참다운 교회, 참다운 신앙’에서-

우리의 신앙의 삶 속에도 늘 점검이 필요합니다.
크리스천의 행복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좋은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자를 만나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은 더 할 수 없는 행복이며 축복입니다.
나와 나의 신앙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더 철저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He lifted me out of the slimy pit, out of the mud and mire; he set my feet on a rock and gave me a firm place to stan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분노의 매 - 애 3:1-18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11.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1절).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서글픈 하소연입니다.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라는 시편 102편의 표제어가 어울릴 법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종종 자기 백성들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나 베어버리고 끊어버리려는 칼이 아니라 그들을 고치시고 바로 잡으시기 위한 매로 진노하십니다. 여호와의 분노의 매, 그것은 누구나 겪고 당할 때는 아프고 괴롭지만 결국에는 내게 유익이 되는 아버지의 사랑의 매입니다.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8절).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내 기도에 귀를 막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소리내어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귀를 막으시고 물리치사 내 기도가 그에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그 귀가 자기 백성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으시고, 긍휼의 문을 두드리는 모든 자에게 온전히 열려있으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굳게 닫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를 하는데도 응답은 커녕 아무런 위로도 격려도 없다면 그 고통과 답답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내가 드리는 기도를 외면당하거나 묵살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면 내 인생의 모든 문이 막히고 기도가 상달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통은 그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부디 기도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소통은 지키시고 최선을 다해 관리하셔서 불통의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셔야 합니다.

내 몸을 찢으시며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11절).
하나님의 <분노의 매>는 종종 우리의 육신을 겨냥합니다. 그래서 <그가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시고>(4절)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12절) 삼으십니다. 하나님이 쏘시는 활은 빠르게 날아와 내 몸 깊숙이 박힙니다. 심지어는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십니다>(16절).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건강을 잃는 것이고 몸에 병이 드는 것입니다.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몸져 눕거나 또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보면서 우리는 충격을 받기도 하고 두려움과 슬픔에 떨기도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분노의 매를 사지 마십시오. 내 건강과 생명을 화살로 겨냥하시는 하나님의 분노의 매는 내 삶과 운명에 치명적입니다. 부디 분노가 아니라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신실한 주의 자녀가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구원은 인간의 선한 행위(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 즉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행위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전적인 은혜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의가 없이 온통 죄로 가득한 사람이라도
이 예수님의 의로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으로
즉각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믿는 즉시로 신자 안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 믿음은 신자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며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여
하나님이 신자를 구원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박영돈 목사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에서-

바울사도는 너희 가운데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입니까?
아들을 희생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이루시고자 하는 기쁘신 뜻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그의 아름다운 형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새사람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는 교회를 세워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18: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You broaden the path beneath me, so that my ankles do not turn.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하나님 뜻 - 마태복음 26 : 36~41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세상에 모든 것은 목적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은 영광받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그 분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짧은 일생을 살아가며 세상에서 아등바등하지만, 영원한 나라에서의 삶을 위하여서는 준비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자기의 길을 계획하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잠 16:9). 우리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의 뜻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되어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멸망하는 인간을 구원해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요3:16).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형벌이라는 중대사를 앞에 놓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같이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으나 제자들은 기도하기는커녕 잠만 잡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고통을 두려워하시며 고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묵묵히 십자가의 고통을 담당하셨던 것입니다(39).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하고, 돈 잘 벌고, 세상에서 잘 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영광 돌리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시고 주시려는 것이 일단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요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기도할 때 자기가 실패한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하나님이 계시면 한 번 나와 보라고 하며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평생을 기도해도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로만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육신의 생각과 정욕을 따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하고 잘 살아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기도하기를 제자들에게 권면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지만, 제자들은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41). 결국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적용>
-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잘못되었다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수정하세요.
- 요즘 나의 기도생활을 점검해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 내가 져야할 십자가는 무엇이며(가정, 자녀, 직분, 복음...), 그 십자가 감당키 위해 기도에 힘쓰십시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저를 세상에 보내시고 믿음의 선물을 주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일에 너무 치우쳐 부르심의 목적을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용서하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행하게 하시고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따라서 제게 주어진 사명의 십자가 잘 감당하게 하시어 주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설교자의 인격이 위기를 맞고 있다


여러분 이 말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여러분들에게 가까이 와서
‘존경합니다’ 말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라.
그들의 내면에 진심이 있는가?
교회 안에는 불행하게도 은혜 받은 아첨꾼들이 너무 많이 있다.
우리는 그 아첨하는 말에 너무 많이 흔들린다.
그 아첨에 넘어가다 보니,
오늘 우리의 인격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못 받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 사역자에게 있어서 인격이 이만큼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자와 인격’에서-.

능력 있는 목회자, 능력 있는 설교자,
이런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눈이 빛납니다.
그러나 인격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부흥에 대한 어떤 방법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구름떼와 같이 모입니다.
그러나 인격에 대한 어떤 것을 강조하면,
다 눈을 감고 졸고 있습니다.
아첨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인격향상에 대해 철저히 고민하십시오.
한국교회의 사역자들이 인격적인 존경을 받아야합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전도서 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All his days his work is pain and grief; even at night his mind does not rest. This too is meaningles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노동의 신성함 - 살후 3:6-12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기독교적 경제원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노동의 신성함입니다. 근면한 노동에 대한 강조는 성경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합니다. 일반 경제학에서도 노동은 경제의 근본토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종말론에 관해서 이단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이단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설교를 오해해서 주님이 곧 오시는데 구태여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럴듯한 말이 아닐까요? 내일 모레 종말이 오는데 굳이 땀 흘리며 일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기에 많은 성도들이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종말의 문제에 직면해 바울은 주님의 재림은 물론 확실한 것이지만, 그 정확한 시기는 비밀에 있으므로 성도는 깨어 근신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원으로 올라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에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바울은 종말을 핑계하며 게으르고 받은 말씀을 따라서 행하지 않는 신앙인들을 멀리하라고 강하게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6). 그리고 자신은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다고 말합니다(8). 바울은 자비량 선교사였습니다. 자신이 텐트를 만들며 선교비와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물론 바울이 100% 자비량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교회로부터 일정정도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결코 일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선교헌금이 적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본을 보이고자 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말이 아닌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9).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는 바울의 권면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10). 이처럼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는 오래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이런 권면을 듣지 않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며 일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까이 사귀지 말고 계속 권면할 것을 말씀합니다(11-15).
하나님은 경제와 경영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시며 통치하실까요?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3:9) 여기에서 경륜이란 헬라어로 “오이코노미아”라고 합니다. 이는 가정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경제를 뜻하는 “노미아”가 합해져서 하나님이 세상을 직접 경영하고 운영하심을 나타내십니다. 다시 말해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아버지가 일하시므로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5:17).

[적용]
-나는 노동의 소중함과 신성함을 인정하며 직업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하나님 안에서 일의 참 의미를 깨닫고 기쁨으로 사명감당하도록 기도합시다.
-내가 속한 직장안에서의 잘못된 노동 문화와 관행을 고쳐 나아가기를 결단합시다.

[기도]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힘과 건강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안에 있는 게으름과 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주시어 주어진 시간과 맡은 일에 성실과 정직함으로 임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