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사랑에는 덮고, 품어주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5. 7. 22. 20:56



의와 사랑을 붙들라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게 만든다.
사랑은 덮고, 품어주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정의보다 큰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를 붙들어야 한다.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는 사랑과 자비를 붙들어야 한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사랑만 붙들면 방종에 빠져들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의를 붙들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된다.
- 최장환 목사의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서-

우리는 잘 못된 적용을 하여
잘 못된 신앙으로 흐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서는 의를 붙들고,
인간관의 수평적 관계에서는 자비와 사랑을 붙들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의 배신과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는 법은
의와 사랑을 붙드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고린도후서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For to be sure, he was crucified in weakness, yet he lives by God's power. Likewise, we are weak in him, yet by God's power we will live with him to serve you.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세상을 거꾸로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10절)
[성경본문]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묵상글]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아 하노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서 일하고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잘사는 기준’을 따라서 목숨 걸고 살아가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라서 악착같이 살아가고, 사람들이 정해놓은 ‘가치관’을 따라서 직장생활, 사업, 자녀교육, 삶의 기준을 삼고 살아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단지 ‘주일에 교회를 다닌다거나 식사기도를 한다거나 가족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를 따라서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삶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치관을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삶의 기준과 가치관은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고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도 ‘바울파, 아볼로파’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시기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 역시 육에 속한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 선포함으로서 어떤 개인이 교회에서 높여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고 세상의 일과 사람의 말에 대해서는 둔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청종해야 합니다. ‘어떤 목회자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청종해야 합니다. 목회자나 모든 교우가 함께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이재에 밝고, 약삭빠르게 세상물정을 따라서 살아가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지역을 따라다니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비법을 배우러 다니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거꾸로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