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람들끼리 퍼부어대고 상처를 고백하면 지옥이 되니까 내 앞에 와서 부르짖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털어놓으면 하나님이 그 상처를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 상처를 고백하고
토해놓으면 상처를 준 사람의 영이 빠져나간다. 그 자리를 성령님이 채워주신다. 그때 상처가 사라진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 -문봉주 장로의 ‘새벽형 크리스챤’에서-
원리를 알면서도 상처를 고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상처 또한 의지로
고백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 비로소 조그만 상처까지도 다 고백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전에 미워했던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고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을 품게 해주십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의인의
입과=퓽括� 입>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잠10:11)
글쓴이 : 이무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아저씨
분노
- 렘 12:14-17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대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 내리라 15. 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7.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음이니라>(13절). 여호와가 당신의 백성에 대해 분노하시면 뭐든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고 죽도록 수고를
해도 아무런 소득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수치만 당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 7:11).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노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이자 복음의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앞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분노>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만을
아는 것은 그야말로 <절반의 하나님>만을 아는 것입니다. 보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분노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뽑아내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대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내리라>(14절). 하나님의 분노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뿐 아니라 이방나라들에게도 미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을
섬긴 택하신 백성 유다를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 바벨론을 들어 뽑아내셨을 뿐 아니라 유다를 내친 그 바벨론도 결국은 뽑아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분노의 회초리로 이용됐다 하여 바벨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 역시도 반드시 뽑아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주권은 역사와 이방민족의 운명까지도 다 관장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뽑아내시는 심판과 분노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시고>(15절),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게 하려는>(16절) 은혜와
구원에 그 최종 목적이 있음을 꼭 기억하십시오.
멸하리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7절). 구원을 목표로 삼되 이방족속들이 끝까지 순종하지 않고 복음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배척하고
우상을 고집하면 하나님은 그 나라를 뽑아 영원히 멸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6)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히 멸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키엘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을 성서적 실존의 중요한 특징으로 규정하고 이를
자신이 쓴 책의 표제로 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세상을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는 것은 우리를 지옥에 멸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을 제대로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즉 이는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을 의식하고 살면 세상이 주는 상대적인 두려움 쯤은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