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4. 9. 22. 10:28



거룩한 입맞춤으로


과거 초대 교회에서는 2∼3세기까지 실질적으로
성도간에 의식적인 입맞춤이 행해졌다.
거룩한 입맞춤이란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경의의 표현이며,
성도들 간에는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입맞춤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하나님과의 입맞춤이란 순종과 절대 헌신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마귀와의 입맞춤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다.
-김충기 목사의 ‘거룩한 입맞춤’에서-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입맞춤하고 축복받기 위해서는
교회를 가까이 하고 교회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영적 부모와의 입맞춤으로
축복받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양육할 때
거룩한 입맞춤으로 하는 영적 교제는 축복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며.
마귀와 입 맞추지 않는 확증입니다 .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저울>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11:1)
글쓴이 : 이무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아저씨
헌신의 시작 - 마가복음 1:16-20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헌신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헌신(devotion)은 '제물'(offer)이란 말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롬12:1).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한 이상 우리 몸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하고 우리의 기쁨이 아닌 그의 기쁨을 좇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나 아닌 다른 인격체에 몰두하며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헌신의 삶이 우리의 세상일을 다 포기하고 수도원이나 기도원에서 고행하며 사는 수도자의 삶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 밖으로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가서 세상을 주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 참된 헌신의 삶입니다.
헌신의 시작은 돌아섬에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대로 살던 삶의 방향에서 돌아서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방향의 전환을 '회개'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회개는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돌아섬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주님의 초청에 대해 베드로와 안드레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에 갈릴리의 어부 형제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어떤 고민도, 어떤 주저도, 어떤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과단성입니다. 어부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군인이 총을, 중이 목탁을 버렸다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다.
버리지 않으면 주님을 쫓아갈 수 없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방향을 돌릴 수 없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헌신할 수 없습니다. 헌신은 먼저 내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은 더욱 비장감을 더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배뿐 아니라, 아버지마저 버려두고 주님을 따릅니다. 아버지를 버려둔다는 것은 좀 심한 것이 아닐까요?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어긴 것은 아닐까요? 이 말씀은 물론 부모에게 불효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돌아섬의 과단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때때로 헌신된 자는 자신뿐 아니라 부모형제도 포기해야할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마10:37).
본문 말씀을 보면서 나도 제자들처럼 생계와 부모형제를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자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유리걸식하며 수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수도자적 헌신도 값지지만, 모두가 수도자적 헌신으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기도원으로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른 해석없이 직접 말씀을 적용해버리면 열이면 열 모두 이단으로 빠지고 맙니다. 본문은 회개의 과단성과 철저함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들어오시게 하려면 내가 나가야 합니다.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두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안다는 말씀입니다(눅9:62).

[적용]
- 내 삶이 말씀을 잘못 적용한 부분은 없는지 정리해 봅시다.
- 살아오면서 다른 어떤 목적으로 헌신 봉사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봅시다.
- 주님의 부르심에 당신의 반응은 어떠했는가요? 돌아서기 위해 즉각 결단하십시다.

[기도]
위대하신 하나님, 부족한 저를 택하시어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바르게 응답치 못하고 주저하며 살아가 불충한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이제 돌아서서 주의 일군으로 살아가도록 용기와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름다운 헌신의 시작이 있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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