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4. 6. 14. 09:45


찬송의 능력을 명심하라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말대로 죽고 산다.
현해탄에서 애인과 자살한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불렀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광씨도 낙엽처럼 죽었다.
그러나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를
찬송했던 루터는 종교개혁에서 승리했다.
성도가 부르는 찬송에는 위대한 능력이 담겨 있다.
가사가 있는 신앙고백이요,
기쁨이 있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예용범 목사의 ‘이스라엘의 노래’에서-

성령충만을 갈망한 찬양은, 보혈의 능력을 송축한 성도는
거룩과 경건을 이룹니다.
그것은 찬송은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찬송하는 자신과 찬송을 듣는 저들을
언약의 말씀, 신실한 주님께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즐거워하십니까?
찬송을 많이 부르십니까?
명심하십시오. 성도는 하늘의 성가대원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주께서 건지셨나이다>
시편 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For you, O LORD, have delivered my soul from death, my eyes from tears, my feet from stumbling,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 렘 1:4-7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예레미야 시대 유다도 모든 게 최악이었지만 지금 우리 시대 사정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예레미야서를 묵상하시며 깊이 공감도 하시고 내 나라에 대한 연민도 느끼시고 이 시대에 대한 바른 진단도 내리시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유다는 요시야 왕이 애굽과의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그때부터 오직 유다의 패망 만을 예언해야 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실로 끔찍했습니다. 유다가 망한다는 것과 적국 바벨론에 투항해야 그나마 목숨만은 부지한다는 게 그의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 때문에 곧 망할 것이므로 무모하게 저항할 게 아니라 순순히 백기를 들므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뼈 아픈 징계를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그의 예언 행각이 어찌 눈물 없이 가능했겠습니까?

말씀이 내게 임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4절).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변인입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특정인을 택하셔서 당신이 전하고 싶으신 말씀을 위임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고>(2절). 굳이 말한다면 구약시대의 선지자가 오늘날에는 설교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대는 다르지만 기본 원리에 있어서는 선지자나 설교자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은 최대한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시만을 충실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설교자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사역은 역시 선지자적 사명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설교자들도 청중들에게 아부하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의 최대 유혹은 듣는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현실과 타협하며 청중들이 좋아하는 말만 하면 결국은 다 죽습니다. 예레미야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가감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증거했기 때문에 늘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것입니다.

너를 알았고 성별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5절).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알았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지>(豫知)라고 합니다. 이는 바울 사상의 정수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모태 전>이 아니라 <창세 전>(엡 1:4)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그가 부름 받은 요시야 왕 13년이 아니라 이미 모태에 짓기 전에 아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선지자로 세웠다>고 하신 말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정>(豫定)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뿐 아니라 바울이나 우리 모두도 하나님이 이미 창세 전에 아신 바 된 자들이요 태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로 예정 받은 자들임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주님을 믿기 시작한 때란 곧 <부르심>을 입은 시점일 뿐 모든 게 이미 창세 전, 모태 전에 이뤄졌음을 확신하십시오. 따라서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이란 예레미야처럼 내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성별>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CTS 큐티   (0) 2014.06.17
CTS 큐티   (0) 2014.06.15
CTS 큐티: 정직한 침묵  (0) 2014.06.09
사도바울 영화   (0) 2014.06.05
CTS 큐티   (0) 201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