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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침묵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해석이나 설교는 사실 별 의미를 갖지 못할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 가장 설득력 있는 자세는 차라리 침묵이다. 정직한 침묵, 함께 있어 주고, 함께 울고, 함께 침묵하는 것이 차라리 힘 있는 위로라는 것을 욥의 세 친구의 모습에서 볼 수가 있다. 또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를 향해 가신 예수님은 침묵하셨다 이것은 위대한 침묵이다. -박조준 목사의‘누가 나를 위로해 줍니까?’에서-
욥의 친구들을 함께 고난을 짊어졌지만 침묵을 지켰습니다. 아마 이 침묵은 친구의 고난을 말없이 짊어지는 속죄자의 행위였을 것입니다. 이웃의 고난을 내 몸에 짊어지는 사람마다 그 아픔에 눌려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침묵이 이런 침묵이었을 것입니다. 이 침묵의 의미들을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이웃이, 가족이 고난당할 때 말없이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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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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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으로> |
시편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for he satisfies the thirsty and fills the hungry with good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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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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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정치권력 - 사무엘상 8:4-7 |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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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여 사는 이상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여기에 속합니다. 그 가운데서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시스템이 국가입니다. 성경에서 정치권력과 국가에 대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곧, 하나님만이 왕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으로 종말론적인 통치로 표현됩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권력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엡1:21-22). 그러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세상의 권력은 늘 긴장관계 속에 있게 됩니다. 따라서 국가와 정치권력은 성경적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국가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서 모든 혼란과 무질서를 막는 긍정적인 기능을 갖습니다. 둘째, 국가는 자신을 절대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려는 부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선지자 사무엘에게 왕의 제도를 요구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왕이라는 제왕 제도가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발달하기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강력한 신정정치(theocracy)의 이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면서 다른 나라처럼 왕권제도가 있어야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그런데 신정주의자였던 사무엘은 왕권에 대한 요구를 기뻐하지 않았으며 부정적으로 봅니다(7-9절). 왕권의 요구는 하나님이 왕이라는 신정정치의 이상과 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12지파의 연맹체였고, 그 중심에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유일 신앙이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정치는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사사에 의해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사는 상비군과 관료제를 갖춘 왕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카리스마적인 선지자였습니다. 따라서 사사시대의 지도자인 사사는 원칙적으로 세습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고대 이스라엘의 사사제도는 전제군주제보다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엄한 경고”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의 제도를 허락합니다(9절). 벌써 왕정에 대한 원리적인 거부감이 드러납니다. 왕정에 필수적인 상비군과 관료제와 조세체제는 백성들에게 중한 부담이 될 것입니다(12-17). 왕정에 대한 하나님의 원리적인 부정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라”(18절) 위의 말씀에서 “너희가 택한 왕”은 가깝게는 사울 왕, 멀리는 이스라엘 왕정시대의 모든 반역적인 왕들을 가리킵니다. 사울 왕은 “너희가 택한 왕”이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택한 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 왕권은 긍정적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관되게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라는 강력한 신정정치의 이상을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의 주권이 정치영역에서 영향력을 미치도록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심을 고백하고, 왕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결단합시다. - 역사의 흥망성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이 나라와 역사를 다tm려 달라고 기도합시다.
[기도] 왕이신 하나님, 이 땅의 위정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이 땅을 긍휼히 여기사 고쳐주시고, 영육간에 새롭게 되는 부흥을 경험을 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와 남북관계도 주님께서 친히 다스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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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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