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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만인이 기도하는 집 - 사 56;4-8 |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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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주님도 예루살렘 성전을 숙정하시며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마 21:13)하시며 진노하셨습니다. 사회가 늙으면 조직이 강화되게 마련이고 마침내는 그 조직이 화석화되어 비인간화와 더불어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잠식해 들어갑니다. 가령 성전에서 예배하려면 양이나 비둘기가 필요하고 이방에서 온 순례자들은 그런 제물을 가능한 한 성전 가까이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성전세를 내려면 외국돈을 유대돈으로 환전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전 당국은 아예 성전 안에다 양과 비둘기 파는 가게를 마련하고 환전소도 설치하여 예배자들에게도 편리를 제공하고 또 거기서 생기는 이윤으로 성전 유지비도 조달하면 서로가 좋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이같은 논리에서 보면 사실 그 어느 것 하나도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무엇이냐?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냐를 물을 사람도 없고 성전이 시장판으로 둔갑하고 독재와 착취와 온갖 부조리가 판을 쳐도 아무런 반성도 이의제기도 없이 살아갑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는 이방인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6절). 이제 하나님은 굳이 이스라엘만을 고집하시지 않습니다. 선민의 울타리 밖에 있던 이방인도 부르시고 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며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여호와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여호와의 안식일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며 여호와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들을 당신의 성산으로 인도하사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희생제물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산에 있는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만인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고 안식일을 욕되게 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기도할 수 있는 처소입니다. 대신 주인을 자처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이스라엘은 결국 그 성전에서 내어쫓김을 당했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집기를 둘러 엎으시고 비둘기와 양들을 밖으로 몰아내시며 의분을 터트리셨습니다. 그러자 일반 대중들과 젊은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지지를 보냈으나 성전 주인을 자처하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주님을 어떻게 죽일까 하고 모의했다고 합니다. 강도 같은 삶이 아니라 기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가 모으시는 사람들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8절).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께서 구원 얻은 당신의 자녀들을 다 모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도 모으시고,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다른 이방인들도 모으셔서 <연합하여 그를 섬기게> 하십니다.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고 하셨고, 바울도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4-5)고 했습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도 문자적 의미의 수치가 아니라 신구약 시대, 유대인 이방인을 망라하여 하나님이 모으신 구원받은 백성의 최종적인 연합체를 뜻한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계 7:4),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된 자>(계 7:14)들의 공동체를 이르는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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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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