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글로벌 ‘D 공포’ 한국도 마음 못 놔
기사입력 2014-01-23 03:00:00 기사수정 2014-01-23 08:49:20
美-日 등 물가상승률 1%대로 뚝… IMF “저물가 우려할만한 상황”
소비심리 위축→고용악화 악순환… 가계빚 많은 한국 ‘재앙’될 수도
국제통화기금(IMF)이 21일(현지 시간)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디플레이션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선진국 경제가 충격을 받으면 지금의 저물가 상황이 자칫 디플레이션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지난주 디플레이션을 ‘오거(사람 잡아먹는 괴물)’에 비유한 데 이어 일주일 새 벌써 두 번째 나온 경고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비슷한 지적을 하며 유럽에도 양적완화 조치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진단한 바 있다.
금융위기 이후 긴 침체에서 벗어나는가 했던 세계 경제에 다시 디플레이션 경보가 울리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한 저물가 현상을 보이는 한국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디플레이션은 빚 많은 나라에 ‘재앙’
저물가는 최근 선진 경제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디플레’ 위험성이 가장 높은 유로존의 경우 불과 1년 전만 해도 2%대였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2월 전년 동기대비 0.8%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제로금리 상태인 미국도 물가상승률이 10월 1.0%로 하락했고 영국도 지난 연말 4년여 만에 가장 낮은 2.0%를 나타냈다. 일본 역시 최근 아베노믹스로 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지만 여전히 1%대에 그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건 값이 싸지는 걸 뜻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엔 좋은 일인 것 같지만 사실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괴물이다. 물가가 계속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사람들은 소비를 뒤로 미루게 되고, 이는 물가를 더 떨어뜨려 기업실적과 고용 악화를 연쇄적으로 유발한다. 다만 아직은 물가가 소폭이나마 계속 오르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지금의 저물가 현상이 부채가 많은 가계나 기업, 정부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숫자로 표시된 빚의 ‘명목가치’는 그대로인데, 자산가치와 임금이 떨어지면서 채무부담이 늘어나는 ‘부채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유럽에서 물가상승률이 제일 낮은 쪽에 속하는 나라들이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재정위기 당사국들이다. 민간부채 비율이 높은 미국 역시 저물가 기조가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평상시 같으면 물가안정을 꾀해야 할 각국 중앙은행들이 어떻게 하면 시중에 돈을 풀고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디플레’라는 유령, 한국도 찾아올까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은 한국도 상황이 간단치 않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3%로 한국은행의 물가목표치 2.5∼3.5%에 크게 미달했음은 물론 1999년(0.8%)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경기가 좀 나아진다는 올해도 2.3%에 그쳐 목표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한은의 공식입장은 “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직 국민들이 예상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3%에 가깝고, 지난해 기후조건이 좋았던 것이나 무상보육 등 정책효과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저물가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년 내내 금리인하 타이밍을 놓쳐 저물가를 타개하는 데 실패하더니 올해는 양적완화 축소 때문에 통화정책을 쓸 여지도 사라졌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별 다른 해명을 못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은 디플레 가능성이 없지만 올해 하반기에도 물가상승률이 정부 목표 범위에 들어가지 않으면 당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
물가가 떨어지면서 실질금리가 상승해 채무 부담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서둘러 매각해 자산가치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을 말한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설명하면서 만든 개념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소비심리 위축→고용악화 악순환… 가계빚 많은 한국 ‘재앙’될 수도
금융위기 이후 긴 침체에서 벗어나는가 했던 세계 경제에 다시 디플레이션 경보가 울리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한 저물가 현상을 보이는 한국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디플레이션은 빚 많은 나라에 ‘재앙’
저물가는 최근 선진 경제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디플레’ 위험성이 가장 높은 유로존의 경우 불과 1년 전만 해도 2%대였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2월 전년 동기대비 0.8%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제로금리 상태인 미국도 물가상승률이 10월 1.0%로 하락했고 영국도 지난 연말 4년여 만에 가장 낮은 2.0%를 나타냈다. 일본 역시 최근 아베노믹스로 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지만 여전히 1%대에 그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건 값이 싸지는 걸 뜻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엔 좋은 일인 것 같지만 사실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괴물이다. 물가가 계속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사람들은 소비를 뒤로 미루게 되고, 이는 물가를 더 떨어뜨려 기업실적과 고용 악화를 연쇄적으로 유발한다. 다만 아직은 물가가 소폭이나마 계속 오르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지금의 저물가 현상이 부채가 많은 가계나 기업, 정부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숫자로 표시된 빚의 ‘명목가치’는 그대로인데, 자산가치와 임금이 떨어지면서 채무부담이 늘어나는 ‘부채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유럽에서 물가상승률이 제일 낮은 쪽에 속하는 나라들이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재정위기 당사국들이다. 민간부채 비율이 높은 미국 역시 저물가 기조가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평상시 같으면 물가안정을 꾀해야 할 각국 중앙은행들이 어떻게 하면 시중에 돈을 풀고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디플레’라는 유령, 한국도 찾아올까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은 한국도 상황이 간단치 않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3%로 한국은행의 물가목표치 2.5∼3.5%에 크게 미달했음은 물론 1999년(0.8%)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경기가 좀 나아진다는 올해도 2.3%에 그쳐 목표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한은의 공식입장은 “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직 국민들이 예상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3%에 가깝고, 지난해 기후조건이 좋았던 것이나 무상보육 등 정책효과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저물가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년 내내 금리인하 타이밍을 놓쳐 저물가를 타개하는 데 실패하더니 올해는 양적완화 축소 때문에 통화정책을 쓸 여지도 사라졌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별 다른 해명을 못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은 디플레 가능성이 없지만 올해 하반기에도 물가상승률이 정부 목표 범위에 들어가지 않으면 당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
물가가 떨어지면서 실질금리가 상승해 채무 부담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서둘러 매각해 자산가치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을 말한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설명하면서 만든 개념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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