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분단공간에서만 유용한 친북좌파

鶴山 徐 仁 2013. 11. 15. 17:36

 

분단공간에서만 유용한 친북좌파

 

 

자유통일이든, 적화통일이든, 통일공간에선 친북좌파가 설 자리가 없다.

 

최성재   

 

 

 

 옛 동독의 마지막 당서기장 크렌츠(Egon Krenz)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1971년부터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가슴 뭉클 이상 국가를 통치하던 호네커(Erich Honecker)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인구 3억의 세계 최대 부국 미국을 누르고 옛 소련에 이어 금메달을 두 번째로 많이 딴 인구 2천만의 선진공업(advanced industrialized) 공산국가를 통치하던 호네커가 권좌에서 밀려난다. 그 뒤를 꿈처럼 크렌츠가 이어받지만, 불과 1년 만에 통일독일의 법정에 서게 된다. 그는 6년 6개월의 형기 중 4년을 살고 나왔지만, 여전히 승자의 정의(Siegerjustiz/Victor's Justice)가 아니라 패배자의 정의야말로 진정한 정의라며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을 가슴에 오롯이 담고 있다고 한다. 자서전도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직접 들고 다니며 판촉까지 하는 걸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만, 글쎄 10부나 팔렸는지 모르겠다.

 

‘해 지는 부르주아’ 연옥에서 암약하던 ‘해 뜨는 프롤레타리아’ 낙원의 2만 명

혁명전사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글마다 말마다 평등과 진보와 평화의 암호를 음으로 양으로 새겨 넣던 서독의 수백만 무리들은, 공산주의의 최후 승리를 맹신하던 무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도 신바람 나게 혁명 운동을 계속하고 있을까.

 

적화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베트콩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방실방실 웃으며 수류탄 꽃바구니를 안겨 주고 수줍게 웃으며 수류탄 도시락을 건네주던 소녀와 소년은 다들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와 평화를 외치며 분신자살을 꾀하던 스님과 보살, 신부와 수녀는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프랑스가 아닌 통일조국에서 종교와 언론과 시위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다들 안녕하실까. 일약 출세의 가도를 달렸을까. 꽃 탱크 타고 카퍼레이드를 벌였을까. 아니면, 콩나물 감방에 갇혀 자본주의의 더러운 때를 속속들이 세탁하기 위해서 호치민 사상 양잿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했을까. 아니면, 허둥지둥 보트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녔을까. 분명한 것은 세포비서에서 당서기장까지 요직은 모조리 북쪽 공산당이 차지했고, 1986년 도이모이 이전까지 협동농장에선 천혜의 3모작도 아무 소용없어서 매년 쌀을 수백만 톤 수입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통일이든 적화통일이든 통일이 되면, 위선자들은 또는 바보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몸은 자유민주의 보호와 시장경제의 혜택을 한껏 누리면서 마음은 마교(마르크스교)에 빼앗긴 자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자유통일 체제에선 만민평등의 망상(理想이라고 쓰고 妄想으로 읽음)은 더 이상 씨알이 안 먹히기 때문이고, 적화통일 체제에선 비록 그들이 제5열의 소금 역할을 담당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당 서열에서 가장 아래의 일개 수족들인데다가 부르주아의 때를 벗지 못한 잠재적 반체제 인물로 분류되어 한갓 정화(淨化)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교화(敎化)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다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는 인구가 늘어난 만큼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자리는 더러 차지할 수 있을 따름이다. 대신에 독일의 최장수 수상 메르켈(Angela Merkel)처럼 공산 치하에 있던 사람도 정치색이 적었던 사람으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잘 적응한 인물은 능력만 출중하면 얼마든지 자유민주적 원칙에 충실한 선거에 의해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386운동권의 서열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내부 권력 투쟁에 의해서 검은 양복의 경호를 받는 회장님 이하 서열이 조폭처럼 칼같이 정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하부 조직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 잠수정 타고 평양에 가서 독재자 김일성을 만나고 오면, 그는 일약 형식상 조직과 무관하게 최고 서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도 평양에서 직접 내려온 진성 노동당원에게는 일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에서야 수뇌(首腦) 역할을 담당했을지라도!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고 온 자는 최고의 최고였다. 아마 그중에서 이선실의 서열이 노동당 22위로 제일 높았던 모양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얼마나 가까운가, 이것은 북한에서만 아니라 한국의 운동권에서도 서열의 기준이었다. 1만 명이 모여서 난상토론을 벌여도 그 결론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노선에서 1나노미터만 벗어나면, 한쪽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끔벅끔벅 졸면서 지켜보던 자에 의해서 일거에 뒤집어졌다.

“다시 토론하시오!”

 

강철서신의 김영환은 잠수정 타고 올라가 김일성을 직접 만나고 나서 그것도 몇 년 후에 전향했는데, 어쩌면 겉으로 주장하는 바와 달리 자신의 당 서열이 너무 낮다는 것을 알고 나서 배신감에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주체사상 남파 전도사 1만 명도 못다 할 일을 명석한 머리와 불굴의 정신으로 달성했으나 막상 북한에 가니, 불교로 말하면 성지 인도에 간 것이나 다름없는데, 누구도 주체사상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토론의 탁자 위에 올려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감히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놓고 토론을 벌일 참이었던 것 같다. 김일성이 그에 응할 리가 없었는데, 그는 이를 두고 김일성이 주체사상에 대해서 영 모르는 것 같았다며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아니, 김일성이 왜 몰라! 한 줄도 안 읽고도 다 안다. 왜? 그것은 아무리 현학적으로 고상하게 정교하게 씌어 있어도, 김일성 우상화, 김씨왕조 세습 정당화,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최근에는 이석기가 V님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모양인데, 서열 300만(노동당원의 숫자) 위나 될지 모르겠다. 한국 내에서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서열이 높은 자는 수두룩할 것이다. 그는 몸통은커녕, 아니 꼬리는커녕 털 한 올 정도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기존의 RO는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을 정비했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김일성을 직접 만나고 온 임수경이 이석기보다 당 서열이 높아도 한참 높을 것이다. 북한에선 지금도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만나서 손이라도 한 번 잡은 사람은 아무리 빈천한 노동자나 농민이라도 특별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한 번 앉은 자리는 국보급 사적으로 지정 받는다. 1대 독재자나 2대 독재자가 한 번 만진 나무는 천연기념수가 된다! 지금도 아마 김정은이 내려 보낸 선물은 먹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하지도 못하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보로 고이고이 모셔질 것이다.

 

1986년 도이모이(쇄신) 이후 이전에는 반동으로 몰렸던 옛 사이공의 시장경제 전문가들이 대거 등용되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그들은 2등 인민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로 치면 마름이나 청지기다. 상당한 독립성을 보장받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소유주보다 사회적 명망이 높은 선진경제의 전문 경영인과 공산당의 마름은 신분상 지위가 판이하다. 최근에는 베트남에서도 일당 독재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조금 들린다. 늦어도 20년, 빠르면 10년 안에 배가 불러진(온포溫飽) 중국에서도 공산당 일당 독재에 대한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전국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부정부패와 불평등이 공산권일수록 심한데, 중산층이 확산되면 그들이 불의를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국에서는 아직도 친북좌파가 문화권력과 사회권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2013년 들어 여기저기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라가 비로소 정상화되기 시작한 셈이다. 당연히 친북좌파는 물불 가리지 않고, 그것이 외통수로 몰리는 길일지라도 근 1년간 강공책을 펴고 있다. 분단공간에서만 그들의 존재 가치가 있고 지난 20년간 최전성기를 누렸는데, 자유통일이든 적화통일이든 통일공간은 어느 날 밤 불쑥 도둑처럼 찾아올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적화통일은 달성되더라도 100일을, 어쩌면 10일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옛 월남과 달리 한국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달하여 막상 피의 강물을 보게 되면 일시에 들고 일어날 것이니까.) 다시 말해서 그들로서는 이제 정상에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조금이라도 영화를 더 누리기 위해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다.

 

아마 통일공간에서 그들은 과거 지우기에 혈안이 될 것이다. 내막을 알고 보면 친북좌파의 직계인 악질 친일파처럼 그들은 재빨리 변신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지만, 크게 사면도 받을 것이지만, 더 이상 독선의 달콤한 자아도취와 위선의 짜릿한 행복은 누리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가라앉는 분단공간의 타이타닉에서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말고 저 멀리 자유통일호를 향해 삼삼오오 쑥덕쑥덕 쪽배를 타고 몰래몰래 탈출하는 게 좋을 것이다. 설마, 하고 계속 1980년대에 입력된 추상명사를 무한 되풀이하고 1980년대식 극렬 투쟁을 막무가내 계속하면, 숙청의 달인 김일성이 현재의 친북좌파보다 10배, 100배 공이 많았던 남로당이었지만 간첩 혐의를 덮어씌워 3대에 걸쳐 씨를 말렸듯이, 설령 100일 또는 10일 적화통일의 세상이 오더라도, 김씨공산왕조는 제일 먼저 ‘이중간첩’을 오랏줄에 꽁꽁 묶어 따발총으로 무장한 닭장차에 실어 요덕군의 혁명화 구역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모셔갈 것이다.

"어디 한 번 혁명 실컷 해 보라우!"

(2013. 11. 15.)

[ 2013-11-15, 1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