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믿음의 기도만이 하나님의 귀에

鶴山 徐 仁 2013. 11. 10. 15:04



믿음의 기도만이 하나님의 귀에


한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필요합니다.
냉장고의 온도를 영하 20도 정도로 낮추었습니다.
한 시간 후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따랐지만
미지근한 물 그대로였습니다. 왜 그러했겠습니까?
냉장고도 좋은 모델의 값진 신형이었습니다.
냉동실도 영하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전기 코드가 꽂혀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기가 통하지 않은 냉장고는 아무리 좋은 냉장고라도
냉동실이 영하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께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민병석 목사의‘기도는 왜 법칙인가?’에서-

구하는 기도가 주시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법칙에 따르려면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우리의 구하는 기도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만이 하나님의 귀에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여호와를 의지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히스기야의 간증 - 사 38:7-14
7.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8.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9.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의 병이 나은 때에 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10. 내가 말하기를 나의 중년에 스올의 문에 들어가고 나의 여생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11.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산자의 땅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내가 세상의 거민 중에서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2.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13.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히스기야가 죽을 병으로부터 놓여난 후 고백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히스기야는 원래 레위인들로 성가대를 조직하여 다윗의 시편을 찬양하게 한 사람입니다(대하 29:30). 여기에서도 그는 다윗의 몇몇 시편들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려운 문제가 해결됐거나 병에서 나았거나 하여간 감격스런 기도응답을 체험했을 때 히스기야 왕처럼 꼭 고백해야 할 간증이 있고, 불러야 할 찬송이 있고, 또 글로 남겨야 할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그렇게 했습니다. 뛰어난 글을 남기므로 은혜 입은 자의 도리가 어떠해야 함을 우리에게 잘 교훈하고 있습니다.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를 틀어서 끊으시리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12절).
히스기야는 지금 자기가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당시 과연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천수를 다 하지 못하고 한창 때 죽는다고 생각하며 절망했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당시 서른아홉 혹은 갓 마흔에 불과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년간 행복한 세월을 남겨두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을 병이 닥쳐 하나님이 그의 날수를 끊어버리시고 조만간 그의 생애를 끝내시리라는 절망감이 들어 몹시 낙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수한은 내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부르시면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고 아무리 아쉽고 억울해도 떠나야 합니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내 눈이 쇠하도록 주를 앙망하나이다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14절).
죽음을 선고 받은 후 히스기야는 새처럼 슬피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눈이 쇠하도록 여호와를 앙망하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다윗도 <내가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그랬고,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시 69:3)고도 했습니다. 눈이 쇠하도록 울며 기도하고 주님을 앙망하는 자는 반드시 응답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5절)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사람들에게서 눈물이 너무 말랐습니다. 기도에서도 눈물이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주님의 심금을 울리고 새처럼 슬피우는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요즘은 그런 습도 있는 기도, 촉촉한 기도가 희소해졌습니다. 눈이 쇠하도록 울며 기도하여 놀라운 주의 응답을 체험한 히스기야의 기도와 간증을 기억하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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