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이제는 正義의 칼을 뽑을 때이다!

鶴山 徐 仁 2013. 9. 5. 17:02

 

이제는 正義의 칼을 뽑을 때이다!

 

 

반역을 방관하거나, 반역에 관대한 것은 반역보다 더 나쁘다!

 

朴承用   

 

 

 

 

MIT의 대런 아세머그루(Daron Acemoglu)교수와 하버드 대학의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교수는 紙가 2012년도 정치·경제학 부문 최우수 著述(저술) 群(군)으로 선정한 그들의 共著(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경제에 대한 정치의 영향을 연구하면서 한국의 성공과 북한의 실패의 요인을 정치제도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다:


〈Korea is a remarkably homogeneous nation, yet the people of North Korea are among the poorest on earth while their brothers and sisters in South Korea are among the richest. The south forged a society that created incentives, rewarded innovation, and allowed everyone to participate in economic opportunities. The economic success thus spurred was sustained because the government became accountable and responsive to citizens and the great mass of people. Sadly, the people of the north have endured decades of famine, political repression, and very different economic institutions―with no end in sight. The difference between the Koreas is due to the politics that created these completely different institutional trajectories.

코리아는 대단히 同質的(동질적)인 나라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그룹에 들어간다. 남쪽은 인센티브를 창조하고 혁신을 보상하고 누구에게나 경제적 기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촉진된 경제적 성공은 정부가 국민 대중에게 책임을 지고 국민의 욕구에 응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지속되었다. 슬프게도 북쪽의 인민들은 수십년간의 飢餓(기아)와 정치적 억압과 남쪽하고는 다른 제도를 참아내어야 하였고 이러한 고난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이렇게 완전히 다른 제도적 궤적(결과)을 만들어 낸 것은 정치의 차이 때문이다. 《The Economist 2013년 8월24일字》

〈This paper believes that America is generally a force for good in the world. If Mr Obama does not keep his promises, it will no longer be much of a force at all.

本紙(본지)는 미국은 대체로 세계의 善을 위해서 존재하는 강대국이라고 믿는다. 오바마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겠다는 약속), 미국은 더 이상 강대국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The Economist 2013년 8월24일字》



인간성에 내재하는 善과 惡은 상호간 갈등과 투쟁을 일으킨다. 이것은 인간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해당된다. 善惡의 쟁투에서 惡이 일시적으로 우세할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善이 승리한다. 善이 없으면 인간사회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惡한 개인은 반드시 파멸하고 惡한 집단이나 사회나 국가는 반드시 패망하게 되는 것도 惡의 종말은 파괴이고 善은 건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善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공동체가 존속하고 문명의 발생과 발전이 가능했다. 그래서 인류는 본능적으로 惡을 응징하고 善을 추구하도록 진화하게 되었다. 즉 勸善懲惡(권선징악)이 인류의 생존과 진화의 법칙이고 문명의 바탕이 된다. 善惡의 쟁투에서는 언제나 善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善惡의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善이 승리하지만 그 승리가 지연되고 惡의 지배가 장기화 되면 가공할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惡의 무리를 제 때에 처단하지 않으면 국가가 망하기도 하고 국민이 엄청난 피를 흘리게 된다는 것을 인류역사가 생생하게 보여 준다.

19세기 말엽부터 러시아를 잠식하기 시작한 공산주의자들을 帝政(제정)러시아가 다소의 희생을 무릅쓰고 일찌감치 일소하였더라면 蘇聯(소련) 정권 75년 동안의 악마적 공포정치와 대량학살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20년대에 蠢動(준동)하기 시작한 독일 나치스의 싹을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미리 잘랐더라면 600만명의 유태인 학살과 수 천만 명의 전쟁희생자를 낸 2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解放(해방) 후에 미군정이나 남한정부가 남로당의 씨를 진작에 말려 버렸더라면 6·25 사변의 참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神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기다리신다(God sees the truth, but waits)’라며 惡의 세력이 자체 모순에 의해서 스스로 망하고 진리가 승리한다고 했지만, 승리의 날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동안에 나라와 국민의 피해가 너무나 커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종북 반역세력의 광란으로 국가가 存亡(존망)의 위기에 처한 현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惡의 세력이 自滅(자멸)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惡을 索出(색출)하여 박멸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나 국가가의 희생이 너무 커진다. 惡을 제거하는 과정에도 流血(유혈)이 동반될 경우도 있겠지만 이것은 善의 추구는 반드시 惡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생존조건의 모순 때문에 불가피하다. 국가를 顚覆(전복)하려는 반역의 무리를 정의의 칼로 응징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惡이다.

1945년 해방 후 한국은 善한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박정희라는 거룩한 超人(초인)의 領導(영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among the richest(가장 부자인 나라중 하나)’가 되었다. 반면, 반도의 북쪽은 악마의 논리인 공산주의를 지배이념으로 하고 김일성-김정일의 暴政(폭정)으로 ‘among the poorest(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면서 세계가 칭찬해 마지않는 善의 表象(표상)이 된 것이고, 북한은 참혹한 飢餓(기아)와 천인공노할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惡의 집단이 된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惡을 두려워하고 善을 지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극악한 살인범도 사이코를 제외하고는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며 惡을 부끄러워한다. 반면, 악마의 類에 드는 인간은 善을 증오하고 惡을 찬양하며 악행을 범하고도 환하게 웃는다. 스탈린·히틀러·김일성-김정일·모택동·폴 포트 같은 악마의 대리인들은 수 천 만명을 학살하고도 큰소리치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통진당 이석기는 ‘北은 다 애국’이라며 善한 나라 한국을 저주하고 善한 강대국인 미국을 철천지원수처럼 증오했다. 국가전복 활동과 내란음모의 大逆罪(대역죄)의 배경에는 이 같은 증오심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자 이석기는 묘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가 섬뜩했던 것은 비단 필자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逆謀(역모)를 하거나 반역의 죄를 지으면 陵遲處斬(능지처참)에다 三族(삼족)을 滅(멸)하는 형벌을 가했다. 국가가 없으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없었기 에 반역의 무리들을 가차없이 처단했던 것이다.

이제 正義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모조리 처단할 때가 되었다. 반역을 방관하거나 반역에 관대한 것은 반역보다 더 나쁘다. 반역자에게 정의의 칼을 뽑지 않는 것은 국민으로서는 不忠(불충)이고 인간으로서는 생존을 포기하는 것이고 국가로서는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

[ 2013-09-05, 1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