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안식하는 신앙(1 ~ 10)] 김진홍의 아침묵상

鶴山 徐 仁 2013. 7. 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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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하는 신앙(6)

2013-6-21

< 공동체의 안식 >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레위기 25장 10, 11절)

레위기 25장에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없는 특이한 제도가 나온다. 50년째 해를 맞이할 때마다 공동체 전체가 일 년간 안식으로 들어가는 제도이다. 이 해를 희년이라 하여 기쁨의 해, 나팔의 해라고도 한다. 나팔의 해라 부르는 것은 희년을 시작하는 나팔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지면 마을마다 가정마다 하던 일을 다 멈추고 일 년간 축제로 들어간다.

나팔을 히브리어로 YOBEL이라 하기에 The Year of YOBEL이라 부른다. 희년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 온 나라에 먼저 자유가 선포된다. 그러면 그 자유의 내용으로 두 가지가 실시된다.

첫째는 그간에 주인이 바뀌었던 토지들이 모두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말하자면 평등경제가 이루어진다. 성경의 토지제도는 원래 토지를 사고파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토지의 주인은 토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시요 농민들은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인들이기에 하나님이 주인인 그 토지를 사고파는 매매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가정사정이 긴급한 경우 그 토지의 경작권을 일시적으로 양도할 수는 있다. 토지 경작권을 양도하였다가 돈이 생기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를 토지무르기라 한다. 그러나 되무를 여유가 없었던 경우에는 50년마다 오는 희년이 오면 무조건 원래 주인에게로 되돌아가게 된다.

둘째는 감옥 살던 사람, 종살이 하던 사람들도 희년 나팔소리가 울러 퍼지면 자유를 얻어 가정으로 돌아간다. 일컬어 자유의 정치라 할 수 있겠다. 희년에는 그렇게 토지가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평등경제가 이루어지고 옥살이,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자유의 정치가 이루어진다.

셋째는 희년 나팔소리와 함께 모든 노동에서 해방되어 일 년간 축제를 벌이며 안식을 누리게 된다. 성경에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년제도를 지켰을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온 나라가 평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며 희년제도를 무시하였을 때에 평화가 깨어지고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들게 되었다. 희년제도가 백성들과 나라의 안식을 지켜 주는 안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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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하는 신앙(7)

2013-6-22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태복음 11장 28, 29절)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하던 때까지 방황이 심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공부가 하기 싫고 세상만사가 시들하기만 하여 무전여행을 떠났다. 윗주머니에 칫솔 한 개 꽂고 헬만 헤세의 시집을 들고는 여행을 떠나 마치 김삿갓처럼 이곳저곳을 다니기를 일 년 반을 보냈다.

다행히 일 년 반만에 마음을 잡고 집으로 들어와 다시 공부를 하여 2년 뒤에 대학을 들어갔다. 그러느라 고등학생 시절이 5년이나 걸렸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방랑 끼가 사라지지를 못하였다. 더욱이 철학과여서 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방황케 되었다. 3대째 예수를 믿는 모태신앙이면서도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신을 잃고 한 때는 불교연구에 심취하였다가 이런저런 철학이론에 빠져들곤 하며 종잡을 수 없이 방황하였다.

그러느라 건강을 해쳐 불면증과 위장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불면증이 심하여 날마다 새벽 4시는 지나야 잠이 들곤 하였다. 위장병이 심하여져 6개월이 넘도록 죽을 먹으며 지냈다. 그러던 중 어느 여름 날 생각하기를 “내가 젊은 나이에 이런 병으로 시달리며 내 귀한 젊은 날을 허비하여서 되겠느냐. 내가 분발하여 예수님과 담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담요 한 장을 들고 대구에서 시외로 나가는 버스를 무조건 탔다. 타고 보니 청도 가는 버스였다.

청도 종점에 내려 산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갔더니 운문사(雲門寺)라는 한 절이 나왔다. 구름으로 들어가는 문이란 이름이 맘에 들어 운문사 뒤편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을 들어갔다. 한 곳에 다다르러 소나무 아래 판판한 바위가 있기에 그 바위에 담요를 갈고 앉아 기도 드리기 시작하였다.

"예수 그리시도시여 당신이 정말로 계신다면 이 자리에서 나에게 나타나 주시옵소서! 당신이 계신다는 확증을 얻게 되면 나는 무조건 당신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3일간 계속하였다. 목이 마르면 골짜기로 내려가 물을 마시고 물 마신 후에는 제자리로 돌아와 그렇게 기도하기를 계속하였다. 그런데 그러기를 3일이 지난 날 새벽 3시경에 황홀한 체험에 휩쓸리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로 다가오시는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다. 감사와 기쁨에 넘친 나는 그 자리에서 춤을 추고 손뼉 치며 찬송 부르기를 계속하다가 날이 밝은 후 청도읍으로 내려왔다.

중국식당으로 들어가 우동 곱빼기를 시켜 먹었다. 위장병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 뒤로 지금가지 위장병과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단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나게 되면 예수 안에 있는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내 젊은 날의 체험이 그 산 증거이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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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하는 신앙(8)

2013-6-24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에베소서 2장 5, 6절)

기독교 신앙은 신비(神祕)다 신비주의가 아니고 신비 자체이다. 왜 신비인가? 우리가 지금 2013년에 한국 땅에 살고 있는데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을 때에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죽으실 때 함께 죽고 또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실 때에 함께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에베소서 2장에서의 말씀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 그렇게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 구원을 받은 후에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아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지금 우리가 땅 위에 살아가고 있는데 하늘에 앉아 있게 되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땅의 자녀로 태어났으되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하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하였다는 것이다. 땅의 자녀로 있었던 때는 허물과 죄, 방황과 고뇌, 스트레스와 갈등 속에서 영혼도 마음도 몸도 쉼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었지만, 이제 하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안식을 누리고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시무하던 교회에 자매 한 분이 있었다. 겉보기로는 부러울 것이 없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우울증 탓으로 자살하고픈 마음을 억지로 참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처지였다. 같은 교회에 속하여 있었어도 아무도 그런 줄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의 딸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저의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너무나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목사님이 좀 도와주세요."하고 청하였다.

나는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그녀를 강대상 위로 불러 꿇어앉게 하고는 두 손을 함께 잡은 채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렸다. "예수님께서 이 딸에게 하늘로부터 임하는 안식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우울증에서 벗어나 하늘의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드렸다. 기도드리는 중에 흐느껴 울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실컷 울도록 두었다. 그냥 곁에서 기도로 도와 드리며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냥 두었다. 반시간 가량이나 울고 나더니 그 후로 우울증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드디어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게 된 것이다. 예수 안에서 하늘의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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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하는 신앙(9)

2013-6-25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여호수아 21장 44절)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데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브리서 3장 18, 19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브리서 4장 8~11절)

BC 14세기 경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제국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모세란 지도자가 나타나 그들로 해방공동체를 이루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옮겨가게 하였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로부터 해방된 후 40년에 걸친 시나이 사막에서의 방황을 거쳐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을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라고 여호수아서에서 일러 준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에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길게 누리지 못하였다. 그들이 우상숭배하고, 부패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등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복을 스스로 잃게 되었다. 그런데 신약성경 히브리서 4장에서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상들이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미처 누리지 못하였기에 우리들이 누릴 안식의 몫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들이 누리지 못하였기에 우리들이 누릴 안식의 복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주어진 안식을 누리지 못하였기에 남겨진 안식을 누리는 삶이 진정한 신앙생활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그 남은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힘써서 그 안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바른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은 주신 안식을 누리게 되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안식을 잃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함으로 그 안식을 잃게 된 것이고 우리는 순종함으로 이미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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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하는 신앙(10)

2013-6-26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이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14장 13절)

안식하는 신앙의 최후 최종의 목표는 천국에서의 안식이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꿈에도 그리는 영원한 안식이다. 위에 인용한 요한계시록 14장에서는 주 안에서 죽는 모든 이들이 누리게 되는 안식의 복을 일러준다.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치르는 모든 수고와 희생을 마치고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안식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다음같이 일러준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요한계시록 21장 3절 4절)

나는 41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다. 해방 되던 해에 나는 다섯 살이었다. 형님은 9살이었다. 나는 다섯 살이었기에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나 형님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일본 아이들은 이지매, (왕따)가 심하다. 일본 아이들로부터 심한 이지매를 당한 형은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받았다. 자랄 때는 미처 몰랐는데 군에서 제대하고 난 후에 정신질환이 나타났다. 정신불열증이란 병이었다. 그 후 10년간 우리 집안은 병든 형님을 뒷바라지 하느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다.

그런데 그 형님이 숨을 거두던 때다. 숨 거두기 10분 전부터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는 천사 같은 얼굴로 변하였다. 형님은 감격에 넘치는 얼굴로 웃음을 띠며 말하였다.

"동생들 나 예수님 나라로 간다. 동생들 고마워. 내가 땅에선 동생들 신세를 못 갚아도 예수님 나라에 가서 예수님께 동생들 뒤를 봐달라고 부탁드릴게"

그 말을 남기며 행복이 넘치는 얼굴로 형님이 숨을 거두었다. 형님은 앉은 채로 손을 앞으로 내 밀며 "야, 예수님이 마중 나오시네"하며 행복한 얼굴로 숨을 거두었다. 그 순간 내가 받은 감격과 은혜를 평생토록 잊지 못한다. 나의 형님이 먼저 가서 안식을 누리고 있는 천국을 오늘도 그리며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다가오는 천국의 안식을 그리며 땅에서 열심히 사람답게, 사는 삶이 크리스천들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