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

鶴山 徐 仁 2013. 7. 2. 11:15


죄의 본성에서 승리의 삶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죄의 본성이 거하고 있다.
인간은 나쁜 것을 좋은 것보다 더 잘 습득하고 받아들이고
나쁜 감화에 좋은 감화보다 더 빨리 물드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처음 사단의 기만에 넘어가 범죄한 이후
죄의 본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악에 더 쉽게 치우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죄의 본성을 입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악한 것에만 복종한다면,
그것은 승리의 삶이 아니라 실패의 삶이 되고 만다
-피아노러버의 ‘승리의 삶’에서-

우리 곁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악의 타락성과
죄짓는 일에 빠른 발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죄의 본성을 억누르고 사단의 기만들로부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one way Jesus
호주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유명한 다리를 올라간다고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는데 더운 여름에 쉽지 않았습니다.
땀을 흘리며 겨우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옆 건물의 창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one way Jesus'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그 글이 덜 감동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님께로 가는 오직 한 길.
그 길을 따라가기 소망합니다.
글쓴이 : 김나현
영화연출
약한 자식을 더 생각하는 것이 부모입니다-(창세기 27장 1~13절)
1.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오늘 말씀은 이삭이 나이가 들어 죽기 전에 자식을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이삭은 맏아들인 에서를 부릅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하기 위해서 별미를 만들어서 들어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에서는 사냥을 하려고 들로 나갑니다. 그 때,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쌍둥이 아들 야곱에게 염소를 잡아서 가져오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줄테니까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라고 시킵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주려는 축복을 꼭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어머니 리브가가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떻게 엄마가 둘째 야곱을 시켜서 맏아들의 축복을 뺏으라고 가르칠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리브가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장면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머니 리브가의 마음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느 면으로 보나 형인 에서는 동생인 야곱보다 뛰어난 아들입니다. 사냥도 잘하고, 남자답게 생기고, 모든 면에서 능력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야곱은 연약하고, 어느 것 하나 뛰어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리브가에게는 약한 야곱이 눈에 들어오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본래 어머니는 그렇지 않습니까? 강한 자식, 무엇이나 척척 잘하는 자식보다는 약한 자식, 무엇하나 잘하는 것이 없는 자식이 눈에 들어오는 법 아닙니까? 더 마음이 가는 법 아닙니까?

제가 아는 분 중에 잘나가는 큰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콜 중독자로 살아가는 막내 아들과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가 계십니다. 제가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왜 좀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 큰 아들 집으로 들어가시지 않습니까?” 그분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막내가 죽기 전에는 큰애 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막내에게는 나밖에 없으니까요!” 이것이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요? 리브가의 마음은 그런 점에서 야곱에게 있었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26장의 마지막 절을 보면,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해서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이방여인과 결혼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통해서 자신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연약한 사람에게 먼저 눈을 돌리시고, 돕기를 원하실 겁니다. 오늘 삶의 현장에서 힘들어 지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오늘 그를 먼저 사랑하시고 도우실 겁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하나님께 집중하는 자


오늘도 사탄은 우리들로 하여 삶의 목표를 잃게 합니다.
아무 계획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게 만듭니다.
경제가 어렵고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나는 이제 끝장이구나, 내 인생은 재기하기 어렵구나,”
라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사탄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양준원 목사의 ‘영적 전쟁에 능한 자가 되십시오.’ 에서-

인생길에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고난, 고통과 시련과 유혹이 많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리하면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비전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평생 이루도록 주신 비전을 나누며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영적전쟁에서 사탄을 물리치는 승리를 맛볼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주님의 품안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마음 편해지는 나무들이었습니다.
더운 여름 그 아래 들어가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주님의 품도 이렇겠지요?
안기기만 해도 편안하고 행복하겠지요?
글쓴이 : 김나현
영화연출
회오리바람 같이-이사야 21장 1~4절
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여기에는 슬프고 힘든 시절이 오리라는 예언, 암울한 내용의 계시가 나옵니다. 1절의 <해변 광야>란 곧 바벨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벨론이 작은 바다 같은 호수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평지인데다 유프라테스 강의 많은 지류들을 통해 넉넉한 물을 공급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 군대의 <회오리바람 같은> 공격에 유린되어 철저하게 망할 것이고 그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도리어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혹독한 묵시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2절).
메대와 바사가 강력한 기습으로 바벨론을 덮칠 것입니다. 그들 군사들은 대부분 <두려운 땅>에서 몰려올 것이라고 합니다. 메대와 바사의 북쪽 지방은 산악지대여서 그들의 군대는 주로 그곳에서 훈련 받은 사람들이므로 강력하고도 무시무시한 인간 병기나 다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은 내부에서 변절자도 발생하여 적진에 가세할 것이라고 합니다. <속이는 자는 속인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인데 실제 당시 바벨론 군대의 <가다타스>와 <고브리아스>라는 두 장군은 변절하여 고레스 쪽에 섰는데 그들이 바로 메대와 바사 군대를 곧장 왕궁으로 안내하여 벨사살 왕을 손쉽게 살해할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바사 군대는 바벨론이 지금까지 열방에서 자행한 모든 만행을 그대로 되갚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속임수와 폭력, 기만과 약탈, 불의한 전쟁과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조약을 통해 이웃 나라들을 삼켜 버렸던 그들의 포악한 제국주의를 그들도 그대로 당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묵시가 심히 혹독한 것이라 한 겁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뿌린 대로 수확합니다. 바벨론은 그동안 숱하게 뿌려 온 그 모든 저주의 씨앗들을 이제 다시 거두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해산이 임박한 고통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3절).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슬프게 탄식하는 모습인데 이 독백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로 바벨론의 왕입니다. 그런데 실제 이것은 벨사살 왕에게서 거의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바벨론 성읍이 함락되던 날 밤 한 손이 나타나 왕궁 벽에 이상한 글씨를 쓰는 광경을 보고 나서 <왕의 얼굴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단 5:6)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슬픔과 고통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다니엘이 그 난해한 글자들을 해독하자 그의 공포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고 곧이어 성문을 파수하던 자들이 전해 온 소식은 그의 공포를 극에 달하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주연을 베풀어 수많은 후궁과 영주들을 불러 모아 흥청거리며 쾌락을 즐기던 그 밤에 바벨론의 패망과 함께 메대와 바사 군에 의해 살해되고 맙니다. 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의 극치를 아무런 방해 없이 마음껏 누리고 성전의 기물들을 더럽히며 하나님의 영광을 욕보이던 바로 그 날 밤이 그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회오리바람처럼 닥친 심판의 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헛된 즐거움과 쾌락에 목을 매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삶을 계속하고 그런 낙을 계속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벨사살 왕의 독백을 기억하십시오.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4절).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우정의 기본은 존경


동창회 때 상석에 앉는 사람은
친구보다 빨리 출세한 사람일 것이다.
그럴 때 진실한 우정을 가졌다면
‘저 사람은 내게 없는 훌륭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결국 우정의 기본은 존경이며
친구와 내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
항상 그를 우러러보는 기본자세가 되어 있으면
그 우정은 길게 지속될 수 있다
-소노 아야꼬의 ‘경우록’에서-.

친구의 단점은 재빨리 찾아내면서도
장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공통적인 빈약한 인격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르는 장점이 틀림없이 있는 타인을
상석에 앉히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자세로 상대의 우월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유연하고도 겸손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이런 어른스런 자세가 되어 있으면 우정은 강하게 자라며
많은 친구들과 기쁜 우정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그 사랑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시고
그 피를 흘리신 하나님 아버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을 어떻게 다 전할 수 있을까요.
글쓴이 : 김나현
영화연출
하나님의 마음-누가복음 15장 20~24절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가시고기는 알을 낳으면 15일 동안 그 알을 지키고 있다가 그 알이 부화할 때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부화한 새끼들은 죽은 어미의 몸을 뜯어먹고 살아남게 됩니다. 이를 통해 가사고기의 모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핵심부터 말하자면 둘째 아들의 회개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를 통해 부모의 사랑의 모습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사랑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면 아들이 그 재산을 방탕하게 사용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살아온 모습을 누구보자 잘 아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릴 때 부모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서 그런 무리한 요구조차 들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탕자에게 재산을 물려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용납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또한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사랑입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은 재산을 낭비하며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불효를 저질러 놓고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는 아들을 그 아들이 집을 떠난 그날부터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아갈 때에도 항상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몇 번은 참고 기다려 주지만, 계속 기다려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언제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더 나아가 기다리시다 찾아 나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바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요3:16).
그리고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들이 회개하며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지 않고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며 신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22절에 보면 고대사회의 의식을 통하여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맏아들이 보기에도 이웃들이 보기에도 시기가 날 정도로 과분하게 사랑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후에 그 아들이 어떻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행간을 본다면 그 아들은 아마 멋진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돌아보면 다 그분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은혜와 감사로 살아가시고, 자녀다운 신분의 삶을 살아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적용]
- 나는 탕자처럼 내 주장과 욕심을 따라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지금까지의 삶을 점검해봅시다.
-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만... 아니면 어떤 분으로 알고 있었나요?
- 새롭게 인식한 하나님 앞에서 미래를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결단하고 기도합시다.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지금까지 지내온 것 다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생각이 어리석고 불충함에도 불구하고 다 받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용서하시며 다시 기회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다시 방탕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독수리 날개에 업힌 새끼


어미 독수리의 날개에 업힌 새끼는 불안해 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미의 날개는 강력한 힘을 지닌 보호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은 노아의 방주,
40주40야 비가 쏟아져 내렸고,
그 물이 땅 위에 150일 동안 창일 했음에도
어느 한 곳 허술함 없이 안전했습니다.
지금 내가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잠잠해야만 합니다.
-김우영 목사의 ‘독수리 날개로 업어’에서-

우리는 ‘내’가 약한 인간임을 시인하고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도록 살아야만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무엇’을 주시려고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소유된 자를 구원하심에 있어
시시한 임시 미봉책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독수리 날개에 업힌 새끼는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내 안에 주님을 담읍시다
꽃을 담아두었던 가방에는 꽃향기가 나고,
비누를 옮긴 가방에는 비누향기가 납니다.
생선을 담았던 가방에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빨래를 담았던 가방에는 땀 냄새가 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나에게서 향기가 날지, 냄새가 날지 결정이 됩니다.

내 안에 주님을 담읍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널리 퍼지길 소망합시다.
글쓴이 : 김나현
영화연출
무너진 성벽의 재건- 느헤미야 1장 6~9절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파사(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간 포로민의 아들 중에서 출세한 사람입니다. 그는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직책으로 왕의 신임을 받은 최측근으로 경호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포로인 그를 그 자리에 오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나의 위치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그 분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분의 섭리가운데 출세하고 성공하여 살아간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느헤미야는 자신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국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2-3). 성문이 불타고 성벽은 무너졌으며, 남은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1차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귀환했고, 2차 에스라가 귀환하여 재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그는 먼저 기도부터 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4-5).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기도만이 어려운 현실을 바꿀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의 길입니다. 그는 왕을 찾아가기 전 왕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면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면 누구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것은 한 사람의 기도로부터 시작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하면 주변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신이 책임감을 느끼며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6-7). ‘나와 내 집이 범죄하였나이다. 큰 악을 행하였으며,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무너져 내린 모든 것의 재건의 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드디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재가를 얻어 고국으로 돌아가며 그에게 형통한 은혜를 주시어 그는 사명을 단 시일 안에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8-9). 그가 크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 것은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기에 이전에 모세에게 이렇게 약속하시지 않았느냐며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영원불변 하시고 위대하신 일을 이루어 주심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암 캐리는“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 무너져 내린 것들이 무엇이니까? 가정과 개인, 신앙과 교회와 국가와 경제 등을 다시 재건하는 길은 바로 이것입니다. 제 책임입니다. 제가 기도하지 않았고, 내 마음대로 살았으며, 모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 회개하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건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스가랴4:6).

[적용]
- 나의 주변에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 것들이 무엇인지 원인에 대해 살펴보십시다.
- 이러한 현실 앞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지 못한 잘못을 회개하십시다.
-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크게 구체적으로 구하십시다.

[기도]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지금 이 시대의 많은 부분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윤리와 도덕, 가정도, 교회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이제 기도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 회복케 하시고 치유하셔서 재건의 은혜를 주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오늘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은혜 받았다, 감사하다.”하는 동안,
“기적을 체험 했다. 성령도 받았다.”하는 동안,
교회 밖에서는, “내가 이렇게 외로워서, 죽고 싶은데,
누구 하나 따뜻하게 손잡아 주는 자가 없다.”
“나도 당신들처럼 예수님 만나 구원 받고 싶다.
당신들처럼 기쁘고 감격스럽게 찬송하고 싶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예수에게 인도하는 자가 없다.”
하며 영혼으로 절규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홍식 목사의 ‘나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은?’에서-

주님은 불쌍한 환자를 지나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유대 종교인들에게
“너희들, 이 자들의 절규를 외면한 채
많은 제물을 바치고 축제를 벌이면 뭐하냐?”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는 인생의 짐에 신음하면서 .
“누구 나를 예수에게로 인도할 사람이 없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끼리 구원을 만끽하는 사이,
교회 밖의 영혼들의 탄식소리가 있습니다.
혹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있지는 않은지요?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청년의 때를 주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가끔 젊어서는 내 맘대로 세상 것들을 즐기면서 살다가
나중에 늙어서 교회를 다니겠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때를 누가 압니까?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우리인데 말입니다.

청년의 때를 주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즐거이 헌신하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주님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글쓴이 : 김나현
영화연출
축복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창세기 27장 30~40절)
30.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오늘 말씀을 보면, 형인 에서가 동생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사라진 것도 모른채 열심히 염소를 잡아서 음식을 만들고, 아버지 이삭의 방에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에서는 아버지에게 축복해달라고 말하자, 이삭은 이미 야곱에게 축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에서에게 장자로서 축복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에서의 기분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분노합니다. 그리고 동생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듭니까? 에서가 오늘 이 상황에서 깨달아야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에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에서가 ‘장자의 직분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에서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이것을 보면,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자신이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는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축복이 결국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넘겼을 때만해도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팥죽 한 그릇의 작은 것이 에서에게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을 먹으려고 했을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주 작은 것을 소홀히 했다가 결국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때가 너무 늦어버린 경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일을 행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작은 일이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모든 삶이 작은 것을 어떻게 대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큰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삶에서 소홀히 여겼던 작은 일이 있다면, 우리가 그 일을 먼저 잘 마무리하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매듭을 짓고, 소홀히 대하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의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순간순간이 모두 가치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하나님과 멀어지는 인간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지개로 언약을 세우시면서
가까이 다가오시는데, 인간은 자꾸 멀어져 갑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숨어버린 것처럼 .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자꾸 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해 주셨는데도
못 믿겠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니
우리끼리 모여 힘을 합해서 문화를 발전시키고,
한 번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것입니다.
-한홍식 목사의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에서-

아버지 품을 떠나 집을 나간 탕자가 행복했습니까?
목자의 돌봄에서 떨어져나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그 양이 행복했던가요?
자기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지기의 본분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멀리 떠나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리는 우리의 자리가 아닙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더 아파하시는 아버지
가끔 주님께 투덜거립니다.
나 이렇게 힘든데 왜 내버려 두시냐고,
때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주신다고,
대체 내 기도를 듣고 계시기는 하는 거냐고,
투정을 부립니다.
늘 인고의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단련하시고 계셨다는 것을요.
제 기도를 듣고 계시지 않으신 게 아닙니다.
아마 기도를 들으시며 눈물 흘리고 계셨을 거에요.
제가 아파하면 더 아파하시는 아버지이시니까요.
글쓴이 : 김나현
영화연출
바벨론이여! -이사야 21장 5~10절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온갖 산해진미로 식탁을 가득 채우고 파수꾼들이 망대를 지키고 있는 동안 안심하고 기분 좋게 먹고 마시자 적군들이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우리의 용맹스런 장군들이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르고 기꺼이 적들을 맞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방심하고 안일했으며 무장을 다 벗어던진 채 오로지 먹고 마시는 일에만 탐닉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피할 수 있는 나라나 개인은 없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 풍부한 경제력, 뛰어난 종교적 전통, 안전한 지정학적 위치, 수많은 정치 군사적 동맹국들을 가졌다 해도 그 날은 결코 피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옛날 천하의 대국이었던 바벨론의 함락과 패망을 보며 그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아야 겠습니다.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5절).
왕이 신하들에게 명하여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파수꾼을 세우고 적의 동태를 신속히 보고하게 했습니다(6절). 우리는 다윗(삼하 18:24)과 예후(왕하 9:17)에게서도 이런 파수꾼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습니다.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사자가 포효할 때처럼 파수꾼이 외칠 때 귀 있는 자들은 잘 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우리 믿는 자들을 높은 망대에 세우셨다는 사실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3;17)고 하셨습니다. 파수꾼은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게으르지 않아야 하고 방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적이 공격을 개시하면 즉각 성 모든 주민들에게 나팔을 불어 대비하게 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이 바라시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깨어 있는 파수꾼이 되십시오.

신상이 부서지고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9절).
드디어 바벨론이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곧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은 우상들의 어미였고, 그게 또한 하나님이 그들과 싸우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숱한 우상들이 전혀 바벨론을 지켜 주거나 보호해 주지 못하고 모조리 땅에 떨어져 허무하게 박살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신봉하는 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능을 가졌다고 믿는 사물이나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 신이 자기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모든 가치관이나 삶은 그가 가진 신앙과 예배의 대상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와 도성과 그 백성들과 재산까지도 다 멸하라고 명하신 이유입니다. 강력한 대제국을 형성했던 바벨론이 신생국에 불과했던 메대와 바사에 그토록 쉽게 무너진 이유도 바로 극에 달했던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생활 속, 마음 속의 모든 우상들을 당신 스스로 소탕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강제하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사 모든 신상을 깨뜨리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한 바벨론의 운명처럼 한 개인의 완전한 패망을 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우쭐한 마음으로 소리를 지르면


이솝 우화 중에, 까마귀 한 마리가
큰 고깃덩어리를 물고 나무 위에 앉았습니다.
고기를 먹으려는데 나무 아래 여우가 와서 말을 시킵니다.
세상에 너같이 좋은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한 번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까마귀가 우쭐한 마음으로 깍깍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참 소리를 지른 후 먹으려고 보니까 고기가 없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이미 여우가 까마귀 입에서
떨어진 고기를 물고 도망친 뒤였습니다.
-한태완 목사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에서-

내가 잘났다고 소리를 낼 때 먹이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내 품안에 있는 행복도 떠나가고,
사랑도 떠나가고, 물질도 떠나가고, 축복도 떠나갑니다.
섰다고 생각하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잘한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는 언제나 퇴보하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겸손해야 하나님 앞에
좋은 것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항상 기도에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앞에 나아와
그분께 의지하고
엎드려 기도해야합니다.

무엇을 바라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글쓴이 : 김나현
영화연출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 이사야 21장 11~17절
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12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13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14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15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16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17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두마>에 관한 이 짧은 예언은 모호하고 난해하여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두마는 에돔 땅 혹은 에돔의 어느 성읍, 아라비아의 오아시스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그저 간단하게 <침묵>이라는 보통명사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역 통로의 북쪽 분기점에 있는 아라비아의 한 성읍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 말씀은 환난에 대비하도록 경고하는 예언일 뿐 아니라 아무리 급박하다 해도 주변 나라에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는 권면입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라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14절)
우리는 결코 안일해서는 안 되고 늘 전쟁 소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이르리라>. 빛과 평화의 아침이 오면 또 환난과 재난의 밤도 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늘 아침과 밤이 번갈아 오는 것입니다. 지금이 밤이라면 오래지 않아 아침이 올 것이고 지금이 아침이라면 또 머지않아 밤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목마른 자가 있고 주린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칼을 피해 도피하는 자들과 전쟁이 두려워 피난길에 오른 자들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고 도우라는 것입니다. 나도 언제 밤을 맞아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곤경에 처한 이웃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은 우리가 항상 기꺼이 감당해야 할 고유한 덕목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이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1-2). 심지어는 그가 원수일지라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롬 12:20)고 했습니다. 또 그런 자가 복되다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게달의 영광이 쇠멸하리라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16절).
게달은 무수한 가축 떼를 자랑했고, 또 잘 훈련된 궁수들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짐승들은 적군들이 다 몰고 갈 것이고 그들이 자랑하던 궁수들은 적을 타격하기도 전에 스스로 다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은 수가 적으리라>(17절)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짐승도, 아무리 노련한 궁수들이나 용맹스러운 용사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도리어 그런 사람이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적군의 칼날에 먼저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그 헛된 영광과 자랑은 한순간 훅하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그런 심판이 닥칠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긴 시간 당신의 계획을 집행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시면 실로 짧은 시간에도 얼마든지 큰 일을 행하시고 게달의 경우처럼 신속한 심판을 결행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래 참으시며 심판을 유보할 수도 있지만 또 <일 년 내에> 모든 영광을 쇠멸하실 수도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각자의 삶을 정직하게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의인을 의인되게 한 것


악인은 환난에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따라서 악인도 오기로 환난을 버틸 수는 있어도
환난의 폭우속에서 인내의 의미를 고백하기는 어렵다.
의인이 직면하는 최대의 환난은 죽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 기자는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의인의 죽음에서도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
그가 붙들고 있는 가치야말로
바로 그를 의인되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원 목사의 ‘의인의 죽음’에서-

의인이 붙들고 있는 가치는
환난과 더불어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환난 속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모든 순교 사건들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공통성은
그들의 삶과 죽음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의 확신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덧없는 인생들의 설왕설래의 폭풍우가 지나가면
진실의 가치, 의의 가치를 알게되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태양을 담는
오후에 눈부신 태양,
그 속에서 뿜어 나오는 햇살, 열기, 그로인한 눈부심.
작은 못(池)을 도구 삼아 감히 가둘 수 없는 태양을 담아 봅니다.
그 속에서도 변함없는 빛 그리고 찬란함.
그분의 윙크.
환상의 골짜기 - 이사야 22장 1~4절
1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
2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3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4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입니다. 이 표제는 적절합니다. 예루살렘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유다 땅에는 깊은 골짜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성읍들은 높이 솟아있는 산 같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이제 낮아져서 마치 골짜기 같이 깊게 가라앉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교회에는 <천국열쇠>를 비롯해 여러 가지 신령한 권세가 많이 주어져 있지만 교회가 그런 특권을 제대로 선용하지 못한다면 혹독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환상의 골짜기에는 특별한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남다른 은혜와 은사를 받은 사람일수록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 역시 그만큼 막중하다는 뜻입니다.

소란하던 성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들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2절).
예루살렘은 항상 활기에 찬 성읍이고,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분주한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떠들고 흥청거리던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게마다 문을 다 닫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없고 다만 적들의 동태나 성내 사정을 살피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만 더러 눈에 띌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환상의 골짜기 사람들은 적군의 <칼에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산헤립의 군대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고 땅의 소산들을 다 약탈하고 성 주위를 포위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 것이고, 또 전쟁과 죽음의 공포 때문에 실성을 하여 사색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낙심과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하다 붙잡혀 결박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군사들과 관원들이 스스로 활을 버리고 투항하여 앗수르 군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거저 접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36:1). 하나님은 사람들의 의욕이나 사기를 순식간에 꺾어 놓으실 수 있습니다. 그토록 떠들고 소란하던 성, 환상의 골짜기가 한순간 적막강산이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기억하십시오.

패망한 백성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4절).
유다와 예루살렘의 함락을 자신의 입으로 예언하고 또 실제 패망한 유다 백성들의 비애를 자신의 눈으로 목격해야 하는 선지자의 아픔을 묘사한 대목입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이 너무 커서 누구도 자신의 그 괴로움과 비통함을 위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그 애끓는 슬픔은 <내 딸 백성>이 자신의 면전에서 멸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지자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심정으로 유다를 <내 딸>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조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족은 모두가 내 형제요 자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내 민족에 대한 이사야와 같은 깊은 애정과 연민이 있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경고해야 합니다.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롬 9:3)고 했습니다. 우리도 <내 딸 백성>의 운명에 관해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믿는 자들에 대한 주님의 기대와 바람이십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의 근본적인 잘못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하신다(마 7:21).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성품의 결정이다.
하나님의 성품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조병수 목사의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며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뿜어낼 것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주의 이름을 고백하고 노래하게 하거나
주의 이름을 팔아 능력과 기적을 행하는데
마음을 두게 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것은 거짓 고백주의이며, 거짓 공로주의입니다.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가 만났던 위험이며,
현대교회가 만나고 있는 위험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흙담을 따라
가지런한 흙담을 따라,
노란 봄의 꽃 개나리가
담장 너머 세상이 궁금한 어느 봄날.
후회없는 인생 살기 - 요한복음 4장 10~14절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벌써 이 해의 절반을 보내고 오늘은 7월의 첫날입니다. 내 생애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가야 할까요? 정말 소중한 것인데 다하지 못한 것을 마감하고 후회함이 없이 생을 마감해야할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 인줄 알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아쉽고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후회스러움이 많은 것은 인생들은 참된 만족보다도 늘 목마름을 느끼며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명예, 권력, 물질을 다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함에 있습니다(전2:1-11).
신앙을 가졌지만, 여러 방법으로 생을 바꿔보기 위해 몸부림쳤던 수가성 여인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원인은 영혼이 곤고하였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에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공간은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으며, 채우면 채울수록 오히려 공허감만 더하게 됩니다. 그 빈 공간은 오직 예수님으로만 채울 수 있으며, 아니 차고 넘치게 하십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의미가 있으며 강건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한3서 2절). 사람에게는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 즉 속사람이 있습니다. 이 속사람이 강건하고 만족하고 충만해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처럼 늘 허전한 마음으로 살던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들으면서, 이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복음이 해답이며, 복음이 참된 만족과 행복의 비결입니다. 여인은 영원히 마르지 않고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소개받게 됩니다(13-15). 그리고 그 샘물이 예수님이심을 믿고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25-26).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의 고민과 후회스러움을 단번에 해결하였습니다. 그동안 열등감으로 소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 창피하여 남의 눈을 피해 정오에 물 길러 왔었지만, 이제는 세상을 향해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와서 보라고 외쳐대는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28- 29). 영원한 생수되시는 그분과 함께 살아가심으로 목마르지도 않고 후회스러움이 없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빈 공간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 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확신이 있나요?
-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하여 신앙의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계획을 세워봅시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불충함에 대한 아쉬움이 많습니다. 이제 남은 해를 주님을 위해,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충실하길 원합니다.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행복하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수되시는 주님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