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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울로 자신의 윤리관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물건을 어디에 둔지 모르고 혹시 누가 와서 가져가지 않았나, 혹은 방문객이 슬쩍하지는 않았나 의심을 하다가 얼마 후에 우연히 찾게 된 경험을 한 번 쯤 해봤을 것이다. 자신의 부주의로 남을 도둑으로, 선량한 상대를 파렴치범으로 단정한 것에 대하여 미안함과 반성으로 자신의 윤리관을 꾸짖어 본 일이 있는가? -임현재의 ‘사랑의 마음’에서-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면서 관계가 좋았던 이웃을 의심하거나 자신만을 위해 대중을 간과하는 행동으로 이웃의 마음을 혹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나 하나만의 이기적인 생각과 아집으로 주변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마음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십시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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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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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합니다 성령님> |
오늘 하루의 삶이 기대가 되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님은 당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두근두근 거리지 않나요?^^ "기대합니다 성령님!"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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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성은 인덕대만화과 졸업 빈아트 일러스트 한성대 애니메이션과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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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제물 - 사 1:7-17 |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식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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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밭들과 파괴당한 성읍들, 전쟁의 참혹한 피해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마치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조금은 <생존자>들을 남겨두셨다고 합니다. 과거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멸망했지만 유다는 그래도 하나님이 소수의 남은 자들을 배려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9절). 이사야의 이 <남은 자> 사상은 <남은 자가 돌아 올 것이라>는 뜻을 가진 그의 아들 <스알야숩>의 이름 속에도 이미 반영되어 있습니다(7:3).
짐승의 기름 숫염소의 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11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여러 가지 형식적인 종교생활이나 의식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예배하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 같이 삶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짐승의 피에 목마르시거나 살진 짐승의 고기에 굶주리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과거 유다 백성이나 이 시대 우리들은 그저 형식과 종교의식으로 모든 신앙생활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삶은 전혀 공의롭지 못한대도 주일 예배만 한 번 드리면 자기 할 일을 다 한 양 뿌듯해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시며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3절)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의식이나 제물이나 제사 그 자체가 아니라 제사와 제물에 담긴 그 사람의 삶과 중심을 받으신다는 사실과 결코 짐승의 피나 고기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13절)고 하셨겠습니까?
마당만 밟을 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12절). 성전 뜰만 어지럽힐 뿐이라는 참으로 냉소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사는 안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신약 히브리서 11장 4절은 그 이유를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리고 피를 바친다 해도 믿음이 없으면, 그게 단지 짐승의 고기와 피 뿐이라면 그건 죽은 제사일 뿐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산 제사, 신령한 예배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성전 마당만 밟을 뿐 다른 의미가 없으므로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우리로 하여금 또 한 번 예배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손에 가득한 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15절). 이 말씀도 참 충격적입니다. 아예 기도를 안 하거나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고 많이 했음에도 안 들어주시겠다고 합니다. 왜요?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손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악하고 그 삶이 전혀 정직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17절을 보면 당시 그들의 잘못된 행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의를 일삼고 정직하지 못하고 학대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고아와 과부를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의 그런 악행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23절에서 다시 반복하여 성토했겠습니까?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교회 안에서는 그럴듯한 표정으로 신앙인 행세를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철저한 세속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하나님이 지금 역겨워하고 계신 겁니다. 따라서 이런 자들에게 있어서의 신앙이란 곧 미신에 지나지 않다는 게 이사야 선지자의 지적입니다. 당신의 예배생활,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부디 올 한 해 당신이 바치는 모든 예배가 헛된 제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향기로운 산 제사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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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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