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3년2월1일 QT - 근면의 땀방울이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3. 2. 2. 12:55



근면의 땀방울이


부지런하고 빠르게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이미 집안에 들어온 상태라고 한다면
게을러서 뒤처진 사람은 아직 문밖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집안에 들어앉은 사람은 평안하고 여유가 있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부지런히 일하라.
근면은 성공의 유일한 지름길이다.
-노학자의 ‘깊이 생각하고 빨리 결정하라’에서-

아침에 게으름을 피우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해질녘이 되어서 재앙이 찾아올 때
허둥대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애쓰지 않았다면 저녁의 성과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열심으로 쏟아내는 땀방울만이
성공의 눈물로 바꿔지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회개는>
회개한다고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죄로 인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시나요?
혹시, 내 노력으로 이런 죄들이 사라진다고 믿나요?
죄는 회개하고, 노력한다고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
늘 나와 함께하시기 원하시는 성령님을 믿고 ,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죄는 눈녹듯이 사라질것입니다.
"매일매일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시작하세요!
글쓴이 : 김성은
인덕대만화과 졸업
빈아트 일러스트
한성대 애니메이션과 졸업
하늘이여 땅이여 - 사 1:2-6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하늘이여 땅이여>라는 김진명의 소설이 있습니다. 금융대란과 함께 찾아 온 우리의 정신문화의 위기와 그 극복을 탐색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이 절규하는 <하늘이여 땅이여>란 비참한 운명에 빠진 유다의 아픈 현실과 백성들의 위선적인 신앙에 대해 회개를 촉구한 이사야 선지자의 뼈 아픈 절규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結�귀를=藪岾繭�여호와께서=뻬맨絿챰綬�내가=黴컥�양육하였거늘=流湧�나를=탓で臼뉘뎬�(2절).

소도 임자를 알건만
<소는 그=湛美�알고=け姑�그=聆括�구유를=江퓔떪�이스라엘은=個�못하고=だ�백성은=駭北�못하는도다=究絹뎬�(3절).
본래 선지자라는 사람들은 역사라는 정황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여선지자 드보라(삿 4:4)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700년 동안 이스라엘의 역사와 백성들에 관해 예언했습니다. 사무엘과 이사야는 성전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예언했고(삼상 2장, 사 6장), 아모스와 예레미야는 성전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암 7장, 렘 36장) 선지자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에스겔은 또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이방에서 유배생활을 한 선지자고, 학개와 스가랴는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복역한 선지자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선지자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했는지를 바로 알 때 그 선지자의 예언 내용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이사야 1장은 몰락한 유다 성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공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민족적 파국을 부른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라는 호소입니다.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곧 짐승은 아니지만 인간다운 행동을 하지 못했을 때 쓰는 모욕적인 언사입니다. 지금 유다의 경우도 소나 나귀만도 못하다는 고발과 함께 깨닫지도, 회개할 줄도 모르고 거역하기만을 계속한다는 선지자의 원색적인 비난입니다.

슬프다, 행악의 종자여
<슬프다 범죄한=ざ璨�허물=�백성이요=宣퓽�종자요=敾㎞�부패한=治컥肩灌�그들이=㈗?拷�버리며=決볘璨ㅐ�거룩하신=見�만홀히=ʼn�멀리하고=갬�У뎬�(4절).
엄격하고 냉정한 재판관이 아니라 슬퍼하는 아버지가 가슴을 치며 피고가 된 유다 백성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범죄>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파기했다는 뜻(창 50:17)이고, <허물>이란 원래의 모양을 잃고 비뚤어진 생활방식을 따르는 삶을 뜻(사 30:13)하며, <행악>이란 포괄적인 의미의 악독을 가리키고, <부패>란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파괴한다는 의미의 군사적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 멀리할 때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따르는 결과들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이렇듯 진실을 밝혀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자식지간처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던 인격적인 관계가 이제 하나님과 유다 백성 사이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라고 부른 것은 이사야가 즐겨 사용한 말인데 <유다의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의 백성들도 거룩해야 하며 죄를 지었다면 지체 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발바닥에서 머리까지=뵉�곳이=坪�상한=叩�터진=叩�새로=쩜�흔적뿐이거늘=陋痼�짜며=罐타�기름으로=琯藥눗�함을=些� 못하였도다>(6절).
하나님이 지금 앗수르의 산헤립에게 침략당한 후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유다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하시며 백성들에게 호소하고 계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그들이 여전히 상처를 싸매주고 기름으로 부드럽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치료와 처방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지금 거의 패닉 상태입니다. 적들이 농작물을 다 약탈해가고 논밭에 불을 질러 곡식의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와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고 다 상하고 터지고 맞은 흔적뿐임에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강퍅했고 체념과 절망 속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삶으로, 온 몸으로 가던 악한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유다 사회의 핵심부를 찾아가 나라 전체의 회개와 순종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처가 몹시 깊고 아프십니까? 몸도 마음도 영혼도 성한 곳이 없으십니까? 진심으로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발라 부드럽게 함을 받고 싶으십니까? 통렬한 회개를 통해 거역을 일삼아 온 그간의 삶을 돌이키십시오. 그 길 외에는 방도가 없습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