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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상징 CVN-65 엔터프라이즈/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1. 16. 20:41

입력 : 2013.01.16 10:35

CVN-65 엔터프라이즈의 퇴역식이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미국 국민들이 이 항공모함에 대해 갖는 자부심을 알 수 있다.

2012년 12월 1일, 미 동부 대서양 연안의 해군 기지인 노포크(Norfolk)에서 한 군함의 퇴역 행사가 벌어졌다. 20세기 이후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도 수 백 척의 군함을 거느린 미 해군에게 군함의 퇴역은 어쩌면 흔한 일상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행사는 수많은 관련자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고 그 소식은 전 세계로 널리 타전되었다.


 

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 전개였던 2012년 10월 23일 당시의 항해 모습과 상공을 비행하는 함재기들

행사의 주인공이 무려 51년간 현역으로 활동하였고 실전에도 수 없이 투입되어 설령 밀리터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그 동안 살면서 뉴스 등을 통해 적어도 한번 정도는 들어 보았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Big-E라는 애칭으로 많이 알려진 최초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CVN-65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이었다. 한마디로 현대 해군사에 수많은 흔적을 남긴 상징적인 항공모함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슈퍼캐리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다. 다만 통상적으로 CV-59 포레스탈 이후 등장한 만재배수량 8만 톤, 갑판 길이 300미터 이상의 거대 항공모함을 슈퍼캐리어라고 통칭하고 현재까지 미국만이 운용하고 있다. 1963년 포레스탈에서 C-130의 운용 실험이 벌어졌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항공모함에서 이착함에 성공한 최대 규모의 비행체로 기록되었다.

수퍼캐리어 시대의 도래


 

제2차 대전 동안 엄청난 공업 생산력을 앞세워 24척의 에섹스(Essex) 급 항공모함을 비롯하여 무려 100척이 넘는 경량의 호위 항공모함을,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 만들어 전선에 투입하였던 미국은 항공모함의 효용성을 그 누구보다 많이 실감하였던 나라다. 결국 이러한 엄청난 물량 공세에 힘입어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동시에 싸움을 벌여 승리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감히 남이 쫓아오지 못할 만큼 엄청난 전력을 구축하였음에도 미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전시에 급하게 만든 기존 항공모함들은 운용 과정에서 여러 결점들이 나타났고 더불어 새로운 적대국으로 떠오른 소련과 팽팽히 대립하며 냉전이 개시되자 새로운 개념의 항공모함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항공모함이 이른바 최초의 슈퍼캐리어(Super Carrier)인 CV-59 포레스탈(Forrestal)이다.


 

1955년에 취역한 포레스탈은 갑판 길이가 300미터가 넘고 만재 배수량도 기존 에섹스 급의 2배가 넘는 규모인데, 아직까지도 미국을 제외하고 이 정도 크기의 항공모함을 운용하는 나라가 없을 정도다. 4척의 동급 항공모함을 만든 미국은 쉬지 않고 1956년부터 이를 좀 더 개량한 새로운 항공모함들의 제작에 착수하였는데 이것이 키티호크(Kitty Hawk)급 항공모함이다.


 

1964년 세계 최초의 핵추진 전투함 선단을 이룬 엔터프라이즈, 순양함 롱비치(CVAN-65), 구축함 베인브리지(DLGN-25)의 모습이다. 하지만 모두 엄청난 건조비에 놀라 각각 한 척씩만 진수되는 운명이 되었다. 엔터프라이즈 호 갑판에 E=mc2이라는 방정식이 눈에 띈다.

획기적인 시도


 

바로 이때 뉴포트뉴스(Newport News) 조선소에서 건조하던 한 척이 사상 최초로 핵 추진으로 제작되었다. 2009년 CV-63 키티호크가 퇴역한 이후 미국이 보유한 모든 항공모함들이 핵 추진이고 프랑스의 중형(中型) 항공모함인 드골(Charles de Gaulle)도 사용할 만큼 이제는 낯선 동력 방식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시도였다. 항공모함의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 시킬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태평양 전쟁 초기 일본의 주력 항공모함이었던 카가. 갑판을 넓게 확보하고자 연돌을 측면으로 빼내었다. 핵 추진은 이러한 여러 제약으로부터 항공모함을 해방시켰다.

예를 들어 항공모함의 특징 중 하나가 갑판인데, 넓을수록 함재기를 운용하는데 효율적이다. 그런데 재래식 동력함은 연돌(煙突)을 외부로 빼내야 하므로 갑판은 물론 갑판 밑의 시설 설치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그래서 구 일본해군의 항공모함인 카가(加賀)는 연돌을 측면으로 빼내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기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핵 추진은 이러한 제한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이는 여러 장점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거대한 항공모함은 엄청난 연료를 소모하므로 연료 저장고가 크지만 원거리 작전에 나가면 이마저도 부족하여 거대한 보급함이 함께 따라다니며 연료를 지속적으로 보급하여 주어야 한다. 하지만 핵 추진은 이론적으로 재보급 없이 무한정 항해가 가능하므로 이런 제약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이렇게 확보된 공간을 무기고나 항공기용 유류 저장 시설로 이용하면 작전 효율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엔터프라이즈는 미 해군의 상징과 같은 함명으로 계속 승계 사용되었다. 특히 7번째 엔터프라이즈였던 CV-7은 불침의 항공모함으로 명성을 떨쳤다. (산타쿠르즈 해전 당시 일본의 집요한 공격을 견뎌내는 모습)

미 해군의 최초의 자부심인 이름


 

새로운 항공모함에는 8기의 A2W 원자로가 탑재되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280,000마력의 출력은 현재까지도 가장 강력한 함정용 동력일 만큼 어마어마하다. 1975년 취역한 후속 항공모함인 CVN-68 니미츠(Nimitz)의 등장으로 이후 사상 최대의 군함이라는 타이틀에서는 내려왔지만 전장 342미터는 현재까지 가장 길이가 긴 군함으로 기록되고 있다. 개장을 하며 교체되었지만 특징적인 외관이 인상적인 최초의 위상배열레이더인 SCANFAR를 장착하였다.


 

이처럼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새로운 항공모함은 1961년 11월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취역하였고 이를 키티호크 급과 분리하여 특별히 엔터프라이즈 급이라 한다. 그런데 CVN-65(취역 당시에는 CVAN-65)가 8번 째였을 만큼 ‘엔터프라이즈’는 미 해군에게 상당히 상징적인 함명이다. 1775년 독립전쟁 당시 영국으로부터 노획한 70톤짜리 소형 범선을 시작으로 해서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이 붙은 미 해군의 군함들은 그 동안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 중에서도 7번째 엔터프라이즈였던 CV-6은 미드웨이, 산타쿠르즈 해전을 비롯한 수 차례의 대규모 전투에 참전하고 종전 시까지 미 해군 역사상 최고의 전과를 올린 항공모함이었다. 따라서 CVN-65가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승계하였다는 것 자체가 한마디로 미 해군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 만큼 이 새로운 항공모함에 대한 미국과 군부의 열망은 대단하였다.


 

흔히 Big-E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린 엔터프라이즈의 항진

건조비에 대한 딜레마


 

그러나 엔터프라이즈는 더 이상 다른 형제 함들의 등장을 이끌지 못하였다. 핵 추진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이 추가되었지만 베이스가 되었던 키티호크 급보다 2배 이상의 무지막지한 건조비가 투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미국이었지만 추가함 제작을 포기하고 이후 2척의 항공모함을 예전의 재래식 동력함으로 만들도록 하였을 정도로 엔터프라이즈의 제작비가 너무 비쌌다.


 

이후 미국의 항공모함 정책이 다시 핵 추진으로 선회한 사실로 알 수 있듯이 운용 측면에서 핵 추진 방식의 효과는 컸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기존의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가의 건조비가 타당한 것인지, 차라리 같은 가격으로 여러 척의 재래식 동력함을 운용하는 것이 이득인지 자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것은 엔터프라이즈가 이전에 가본 적이 없던 길을 새롭게 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2차 대전 후 발생한 거의 모든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다 보니 핵 추진 항공모함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회는 곧바로 찾아왔다. 취역 이듬해인 1962년 10월 발생한 쿠바 위기 당시에 엔터프라이즈는 기존 항공모함보다 많은 함재기를 탑재하고 일주일간 무 보급으로 작전을 펼쳐 핵 추진 항공모함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던 것이다.


 

1969년 사고 당시의 모습이다. 피해가 컸지만 불침의 항모답게 즉각 화재를 진압하였다.

엄청난 흔적


 

1962년 8월 3일 최초 전개(Deployment)에 들어간 엔터프라이즈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실전에도 여러 차례 투입되었고 한반도에 위기 상황이 발생 시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1969년 1월에는 갑판에 주기 된 함재기에서 오작동으로 로켓이 발사되면서 다수의 인명 피해를 동반한 엄청난 화재 사고를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불침의 상징이 된 이름처럼 엔터프라이즈는 이러한 여러 차례의 실전 투입과 위기들을 극복하고 현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앞으로 갱신될지 모르겠지만 엔터프라이즈가 현역으로 활동한 51년은 미 해군 역사상 최장의 기록이다. 당국을 경악시켰을 만큼 건조비가 비쌌지만 그 만큼 가동 효율이 좋았던 것이었다. 이처럼 태평양, 대서양, 지중해를 가리지 않고 전 지구에 흔적을 남긴 엔터프라이즈는 2012년 11월 4일, 27번째 전개 임무를 종료하고 퇴역에 들어갔다. 원래 2014년 예정이었지만 어느덧 선체가 노후 되어 유지비용이 커지다 보니 단행된 조기 퇴역이었다.


 

새롭게 건조될 새로운 CVN-80 엔터프라이즈의 조감도

다시 태어날 엔터프라이즈


 

하지만 엔터프라이즈보다 나중에 건조되었던 CV-66 아메리카(America)나 CV-67 케네디(John F. Kennedy)가 먼저 퇴역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Big-E의 장수는 그야말로 노장의 투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족적을 남긴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미 해군이 쉽게 포기할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하여 새로 건조 될 CVN-80의 함명으로 계승이 확정되었다. 비록 선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엔터프라이즈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제원
배수량 93,000톤(만재) / 길이 342m / 폭 78m / 속력 33노트(시속62km) / 승조원 5,800 명 / 함재기 F/A-18E/F 등 60대 이상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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