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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
예수님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라고 요구한 사실을 아셨고, 로마 제국이 가장 끔찍하고 추하게 자신을 짓밟을 거라는 사실도 아셨다. 그런데 이것을 아시면서도, 침착한 용기로 맞서셨다. 변명하거나 자신의 명예를 지키거나 자기 목숨을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셨다. 그것이 거룩한 온유함의 힘이다. -도널드 맥컬로우의 [세상과 다른 마음] 중에서-
온유함은 자신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실천하는 방법은 온유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찾아올지라도 그 자리를 피하지 않는 것이 온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유함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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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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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함 |
가슴 아픈 것에도 울지 못하는 가슴이 되진 않았을까..? 진정한 사랑은 아픈 것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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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원명 영상촬영 및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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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 - 욥 17:6-10 |
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리라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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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절망이 친구들에게서 다시 하나님께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백성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셨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원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그랬던 그가 이제 새삼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장 많이 범한 죄악도 바로 원망이었습니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9-30).
왜 내 얼굴에 침을 뱉는가?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6절). 하나님은 때로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게도 하시고,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케도 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시 66:10-12).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라>(애 3:33)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비록 그렇게 <근심하게 하시나 곧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애 33:32)을 믿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죄에 빠지지 않는 비결입니다.
왜 내 지체가 그림자 같은가?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7절). 욥은 근심과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모욕감 때문에 눈이 다 어두워지고 몸은 더욱 쇠약해져서 마치 그림자 같다고 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누구나 그림자와 같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 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지는 알지 못하나이다>(시 39:5-7). 그림자 같은 인생, 따라서 헛된 신기루를 잡지 말고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며 주님만을 의지해야 허무에 빠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욥처럼 병들어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마음까지 절망에 빠져 모든 희망의 끈을 놓으면 그림자 같고 안개 같은 인생을 실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 사람은 허무주의입니다. 믿는 자들은 실존에 대한 냉정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더욱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기대와 감사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해야 합니다.
왜 내 마음이 분을 내는가?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8절). 세상은 늘 믿는 자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불의하고 악하며 매사에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부정한 자들이 더 잘 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면 손해를 보고 믿음으로 살면 남에게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마음 상해하며 시험에 들어 괴로워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고한 구조악을 형성하고 있고, 우리도 다 구조악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직간접으로 구조악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 또한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구조 앞에서 개인이란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찾아 그 나라와 그 민족을 구하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한 분 주님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즉 <나는 이 성을 멸하고 싶지 않다. 공의를 행하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진노를 멈추리라.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도와 다오!>하며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부디 세상으로 인해 분을 품기보다 나 하나라도 정의롭게 살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는 이 시대의 참된 의인이 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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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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