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2.14 22:40
-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이는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한 역사적인 통계다. 하지만 다시 5년 뒤에 어떤 통계가 나올지 누구도 모른다. '인구와의 전쟁'이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세계 초유의 저출산국이 된 것은 자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정부 정책의 실패가 낳은 뼈아픈 '인재(人災)'였다.
1983년 7월 30일 한국 인구가 4000만명이 되는 아기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도 이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구 폭탄'이 가져올 미래를 걱정했다. 당시 인구통계를 담당하던 경제기획원은 우리 인구가 2000년에 5000만명을 넘고, 2050년에는 6000만명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좁은 땅에 인구가 너무 많아져서 모두가 못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산아제한 정책을 한층 더 밀어붙였다. 자녀 셋을 낳으면 의료보험 혜택은 물론 유급휴가도 주지 않기로 했다. 급기야 서울역 등에 시시각각 늘어나는 인구 수를 표시하는 인구 경고 시계탑이 세워졌고, 극장에는 콘돔 자판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대실책이었다. 오직 코앞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만 걱정했지, 부부가 자녀를 둘도 안 낳을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았다. 일할 사람, 세금 낼 사람이 적어질 미래 사회에 대해선 까맣게 몰랐다. 미래를 읽는 눈이 그만큼 부족했던 것이다.
관료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20여년이 더 지난 뒤였다. 정부는 2000년대 후반에야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출산율이 약간 올라갈 기미를 보이면서 저출산 대책마저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출산율이 올라가 봐야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저출산의 주범이었던 경제기획원의 후신인 기획재정부는 아직도 자신들의 과오를 모르고 있다. 저출산에는 특효약이 없다. 그래서 백약(百藥)을 동원해서라도 물줄기를 돌려야 한다. 그런데도 보육시설 등의 예산은 찔끔찔끔 늘려주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의 6%밖에 안 된다.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은 대도시·고학력·중산층이다. 그런데 보육비 지원은 저소득층으로 한정해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 저소득층 지원사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인구를 줄이기는 쉬워도 늘리기는 어렵다. 다행히 뒤늦게 청와대에선 3~4살 어린이 모두에게 보육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위소득 70%에만 주는 지금보다 연간 3000억원이 더 들 뿐이다. 그런데도 그 돈이 무섭다고 팽개쳐왔다. 늙은 한국인가, 젊은 한국인가. 지금은 한국의 미래를 선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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