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03 23:29 | 수정 : 2012.01.04 00:42
- 강인선 국제부장
요즘 뉴스의 주인공들은 27세 언저리가 많다. 북한 김정은(1984년생)은 지난해 말 아버지 김정일이 급사하고 27세에 국가 최고지도자가 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일의 최대유산으로 '핵 보유'를 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바로 그 핵에 대한 권한을 김정은이 갖게 된 건 '최연소 기록'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은 35세가 돼야 출마가 가능하고, 주요 핵보유국에서 30세 이하가 이런 권한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당분간 이 어이없는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총선까지 이끌 비상대책위원 중 최연소는 새해 27세가 된 이준석(1985년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다. 10·26 재·보선 때 중앙선관위 등에 디도스 공격을 했던 전 한나라당 의원 비서도 27세였다. 몇년 전 표절기사로 뉴욕타임스의 신뢰를 밑바닥부터 흔들어놨던 기자 블레어도 27세였다. 뉴욕타임스가 회사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며 파격적으로 임명한 문화·레저 담당 편집장도 27세였다. 이전까지는 50대 후반이 담당하던 자리에 '소통과 변화'를 위해 20대 후반을 앉힌 것이었다. 27세는 이처럼 새로운 걸 만들기도 하고, 있는 걸 망치기도 하는 나이다.
27세는 무서운 나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1984년생)는 28세다. 페이스북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이용자가 늘어나 이젠 약 8억명에 달한다. 페이스북은 이미 저커버그를 포함해 세 명의 억만장자를 탄생시켰다. 지난해 사망한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도 27세 때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후 42년간 철권통치했다.
도대체 27세란 어떤 나이인가. 중동 민주화 시위를 이끈 청년 중에도 27세가 있었고,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며 1%의 탐욕을 비판한 젊은이 중에도 27세는 있었다. 사실 20대 후반의 다수는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불투명해진 미래 때문에 불안한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다.
전문가들은 27세를 아직 뇌(腦)가 덜 여문 나이로 본다. 미국 신경과학자 샘 왕은 "20대의 뇌는 여전히 발달 중"이라면서, "지금의 김정은과 5년·10년 후의 김정은은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한 발달심리학자는 기술 분야, 특히 IT업계는 젊은 리더가 성공할 가능성이 큰 영역이라고 말한다. 기술·스포츠·음악·수학 같은 분야는 대부분의 정보가 '액면가'이고, 중첩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20대도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27세에게 정부나 대기업을 이끌게 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큰 조직을 경영하는 데 필수적인 인간과 세상사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능력은 시간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업계의 젊은 천재들이 창업한 회사를 크게 성공시킨 후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27세에겐 나름의 힘이 있다. '대지'의 작가 펄벅은 "젊을 때는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신중해지기 어렵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무모하게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때로 그것을 달성한다"고 말했다.
지금 뉴스의 전면에 나선 27세들에게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면 그 자리엔 50대나 60대가 가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김정은에게 그 과감한 도전이란 아버지 김정일은 하지 못했던 개혁·개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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