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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2. 1. 27. 21:02

 

[김대중 칼럼]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

  • 김대중 고문

     

     

    입력 : 2012.01.25 23:02

    돈 준 사람은 풀려나고 돈 받은 사람만 징역사는 '법기술자들'의 이상한 게임, 법이 고장나면 나라 흔들리기에 법 전문가들을 대접해왔는데 '짜고치는 고스톱' 돼버린 法治

    김대중 고문
    상대방 후보사퇴자에게 2억원을 주고도 풀려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보며 느낀 것은 우리 재판에서는 무조건 "몰랐다"고 우기면 '알았다'는 것을 달리 입증하지 못하는 한 풀려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곽씨는 풀려난 뒤 "2심에서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기고만장했다니 이제는 '몰랐다' 수준이 아니라 "그게 무슨 죄냐?"며 대드는 형국이다. 한 가지 더 배운 것은 무슨 '거래'를 하는 경우라도 절대 본인은 나서지 말고 심복 같은 하수인이나 중간인을 내세울 것과 돈을 주더라도 일이 성사된 후에, 그것도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 주면 별 탈이 없겠구나 하는 것이다.

    곽노현 케이스는 '공직 금품 매수' 행위에 대한 재판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돈 준 사람은 버젓이 풀려나고 돈 받은 사람만 징역살게 됐다는 점, 매수행위 자체는 단죄되지 않고 부수적인 사안이 되고 말았다는 점, 그리고 재판 전체가 아주 형식논리에 치우친 '전문가들끼리의 게임'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점들이 분통 터지는 것이었다. 판결한 사람, 기소한 사람, 피고인이었던 사람, 그리고 변호사들이 모두 법을 전공한 '법 기술자'들이었으니까 하는 소리다.

    그렇다면 '돈봉투'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도 별 탈은 없을 것인가? 그 역시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하고 있으니 달리 돈을 주라고 지시하거나 그 정황을 알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그를 법적으로 단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법이 그나마 공평(?)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곽노현 측의 '돈'과 박희태 측의 '돈'은 그 성격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박 의장 쪽 돈은 상대방의 지지를 구체적으로 담보하는 대가로 지불한 돈이 아닌 반면, 곽씨 측 돈은 상대방의 사퇴를 전제로 한 구체적 거래의 성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 의장 측의 돈이 사전(事前)이고, 곽씨의 돈이 사후(事後)인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의장 측 돈은 지지 안 해줘도 그만이지만 곽씨 측 돈은 사퇴가 없으면 보답도 없다는 점에서도 질이 다르다.

    박 의장도 국회의장직을 사퇴하느냐는 정치적 문제는 법적인 책임과 별개의 것이다. 만일 박 의장이 "나는 몰랐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끝내 버틴다면 검찰 조사 결과 디도스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확인됐음에도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한나라당을 떠난 최구식 의원만 '바보'가 될 뿐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교롭게도 법(法)을 공부하고 법을 다루거나 법과 관련이 있다. 법을 만드는 사람, 법을 집행하는 사람, 법을 판단하는 사람이 그들이다. 즉 국회의원, 검찰·경찰, 판사, 고위공직자들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면서 말썽의 불씨가 되고 있다. '돈봉투' 사건의 국회의장과 여야 고위층, '가카'를 조롱하며 낄낄대는 판사들, 돈 준 교육자는 풀어주고 돈 받은 교수는 징역 때리는 판사, 그리고 비리에 연루되고도 풀려나 곧바로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 교육감도 법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뿐 아니다. 한나라당 비대위원 자리에 있으면서 '누구 나가라' '누구는 안된다'며 회오리판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도 그렇다. 하긴 요즘 세상은 대리운전자, 초보운전자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말이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또 형태를 달리했어도 명색이 '나라'라고 하는 곳엔 반드시 법이란 것이 있어왔다. 그것은 곧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한 규칙이고 질서이자 약속이며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다. 법이 고장나면 나라가 흔들린다. 나라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법을 만들고 지키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버팀목으로서 권력자의 대접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 특권층(?)이 권력에 취해버렸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정치자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돈이 없으면 국회의원이 되기 어렵다. 오죽하면 국회의원을 정치자금에 관한 한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정몽준 의원 빼고는 제 돈으로 정치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사실일 것이다. 그 말은 결국 '남의 돈'으로 정치한다는 말이다. 세금은 '국민 돈'이고, 후원금은 '남의 돈'이며, 정치자금은 '기업 돈'이다. 정치판에 낀 사람 치고 '돈봉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법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법으로 판단하지 않고 개인 성향과 취향으로 튀는 재판을 하려 든다. 교육감 선거도 '돈봉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상이 다 그런데 '걸린 사람만 재수없다'. 우리나라의 법 현실은 진실과 아무 관계가 없다. 사회질서를 지키는 법치의 관점에서는 법 관련자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요즘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가 화제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피의자가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라고 말한다. 곽노현 재판관은 좌파의 '영웅'이 되고, 정봉주 구속은 좌파의 '화살받이'가 되는 요지경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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