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은 1980년대 중국을 개혁·개방하면서 박정희의 경제개발 모델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이 22일 경북 구미 호텔 금오산에서 한·중 국제학술세미나를 열고 박정희와 덩샤오핑의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한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룩한 비약적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경제성장에 주춧돌을 놓은 덩샤오핑의 리더십을 비교·조명한 것이다. 세미나에는 한국과 중국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석해 주제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황병태 전 주중대사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박정희와 덩샤오핑 두 지도자는 리더십에서 공통점이 너무 많다”며 “특히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개발 정책이 그렇다”고 말했다. 황 전 대사는 “중국 부임 초기 덩샤오핑의 아들 덩푸팡(鄧樸方·등박방)이 자주 찾아와 한국의 경제개발을 많이 물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두 지도자는 20세기 후반 아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지도자”라며 “박정희 재조명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양국 학자들은 “두 지도자는 위기에서 경제를 일으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희는 식민 통치와 전쟁을 거쳐 폐허가 됐지만 일찌감치 공업화로 경제 기적의 발판을 만들었다. 덩샤오핑은 1960~70년대 수천만 명이 굶어죽은 집단농장 인민공사의 실패를 보면서 과감하게 개혁·개방 정책에 나서 대국굴기(大國堀起)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같은 개방 정책으로 50년 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됐고 중국은 30년 만에 미국과 함께 G2 국가로 올라섰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정치에서 결정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덩샤오핑은 경제는 개방하면서도 공산당 체제를 지켰고 박정희는 민주복지국가 건설이란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중산층을 키웠다.
이날 행사는 지난 5월 덩샤오핑의 고향인 중국 쓰촨(四川)성 광안시와 자매결연한 구미시(시장 남유진)가 주최하고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원장 최외출)이 주관했다.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인바오윈(尹保云) 교수는 “중국에선 2000년대 이후 경제발전과 정치적 관점에서 박정희를 많이 연구한다”며 “덩샤오핑은 한국의 수출공업화와 새마을운동 등 농촌 정책을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인 교수는 1992년 ‘박정희의 한국 현대화’로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의 발전’ 등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 연구도 활발하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리더십의 긍정적인 부분을, 민간에서는 흑묘백묘론 등 리더십의 방향성을 문제 삼는 연구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인 교수는 “한국의 일부 학자들이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자들은 신흥국가가 뒤따라야 할 모델은 한국과 중국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은 너무 큰 나라여서 적당한 모델은 한국으로 꼽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위기는 지금부터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선진국을 열심히 따라가면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따라갈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영남대 최외출 박정희리더십연구원장은 “박정희와 덩샤오핑의 리더십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문제의 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미=송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