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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잊혀 진 기갑부대의 명장 [ 8 ]

鶴山 徐 仁 2010. 11. 30. 18:18

august 의 軍史世界

 

잊혀 진 기갑부대의 명장 [ 8 ]

 

 

 

스스로 포기 한 기회

 

독소전 초기의 소련군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의 대명사였는데 독일은 이런 틈을 타서 신속히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같은 전략적 목표물을 점령하여야 했습니다.  소련과 핀란드간의 겨울전쟁(Winter War)에서 확연히 들어난 것처럼 1937년에 있었던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인하여 소련군은 변변한 지휘관이 없는 한마디로 껍데기만 거대한 군대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대규모의 소련군 포로는 독소전 초기의 일상이었습니다 ]

 

약간 옆으로 빠져 1936~1937년 사이에 있었던 스탈린의 대숙청(Great Purge) 당시에 추산으로 500만 명이 처형되고 2,000만 명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던 공포는 사실 역사적 미스터리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피의 시기는 권력 획득기에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미 스탈린은 1920년대 계급투쟁에서 승리하였고 1930년대는 권력을 이미 공고히 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대숙청 기간에 무려 500만의 소련인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중공의 모택동도 집권 말기에 문화혁명이라는 광란의 시대를 펼쳐 대륙을 미치게 만들었던 것처럼, 편집증에 빠진 희대의 독재자들은 피를 보아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어서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행동을 벌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왜 인류사를 보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이런 저주받은 또라이들이 자주 등장하는지 의문스러울 뿐입니다.

 

[ 대숙청은 인류사의 커다란 불행이었습니다 ]

 

어쨌든 당시 소련은 혁명초기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소련을 구한 투하제프스키(Mikhail N. Tukhachevskii)원수 외 수많은 고위급 장성들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그 규모가 어느 정도냐면 대부분의 사단장급 장성들이 숙청되고 그 자리를 당성이 강한 중대장이나 대대장급 지휘관들이 몇 단계를 건너뛰어 메었을 정도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숙청당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투하제프스키 ]

 

이와 같이 소프트웨어적으로 철저히 붕괴된 소련군이 독소전 초기에 독일에게 일방적으로 터진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지휘력도 붕괴되고 전술도 부재한 상태로 독일군의 기습으로 키예프에 고립된 100만의 소련군은 사실 쪽수만 많았을 뿐이지 전투력은 보잘 것이 없는 이미 포로상태의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 키예프에 집결한 소련군의 전투력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

 

그런데 천천히 먹어도 되는 눈앞의 먹잇감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여 독일은 주력을 우회시키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큰 실수는 모스크바로 향하던 구데리안의 제2기갑군을 90도 꺾어서 무려 1,500Km나 남부로 돌린 것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상황으로 본다면 이미 초전의 충격으로 수세에 몰린 소련을 계속 몰아붙여 모스크바 같은 전략적 목표물을 탈취하여야 했습니다.

 

[ 제2기갑군이 모스크바 공략을 중단하고 키예프로 남하합니다 ]

 

독일의 이러한 우회는 그만큼 소련에게는 한숨을 돌릴 여유를 주었고 독일에게는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스크바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사상최악의 겨울을 맞이하여 독일의 진격은 멈추고 소강상태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고립된 키예프는 루마니아군 같은 추축국군이나 2선급 부대로 봉쇄하여 천천히 말려버리고 주력은 진격을 계속하여 했는데 독일은 실기(失期)를 한 것이었습니다.

 

최초 침공 계획대로 주력인 구데리안의 제2기갑군은 중부집단군의 중핵으로 계속하여 모스크바로 직선으로 향하고 클라이스트의 제1기갑군은 남부 러시아의 요충지 하르코프(Kharkov)와 로스토프(Rostov)를 점령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100만의 먹잇감을 눈앞에서 보게 된 히틀러는 이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고 결국 키예프의 얻은 전술적 대승은 전략적 과오가 되었습니다.

[ 독일군은 대승을 하였지만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

 

* 이전의 여러 글에서도 피력한바 같이 구데리안이 직진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에 august도 동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부집단군이 직진하여 모스크바를 조기에 점령하였어도 과연 독일이 독소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항전의지와 잠재력은 독일의 예상을 한참 벗어났을 만큼 컸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