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광일 부국장 겸 국제부장
4월 들어 태국에서도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시위대에 발포가 있었다. 과거에 태국 시위를 보면서 "그네들은 노란셔츠, 빨간셔츠로 나뉘어 참 낭만적으로 시위를 즐긴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정부 청사나 공항을 점거할 때도 대규모 군중들이 흡사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그런 나라에서 이번엔 신원 미상의 '검은 셔츠'가 등장해서 중화기를 쏘아댔고, 경찰과 시위대의 쌍방 발포로 방콕 거리에 유혈이 낭자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부흥에 총력 매진을 해도 중앙아시아 최빈국의 궁핍을 벗을까 말까 한 키르기스스탄에서 시위진압경찰은 총을 쐈고 100명 가까운 비슈케크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주에는 또 폴란드 카친스키 대통령과 군 수뇌부들이 탄 여객기 한 대가 러시아 공항에서 안개 속에 추락했다. 90년 전 '카틴 숲 학살사건'을 추념(追念)하기 위해 가던 길이었다. 비행기의 탑승객 전원은 몰사했고, 그들은 말 없는 유해가 되어 바르샤바로 돌아왔다. 모두 97명이었다. 아이슬란드 화산의 검은 화산재는 유럽 대륙을 가려버렸다.
나의 불감증은 치유가 안 됐다. 게다가 잘 잊는다. 나는 우리도 전쟁 중이라는 것을 깜빡한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서해(西海)는 어장(漁場)이자 전장(戰場)인데도 꽃게 다리를 찢어먹으며 언제 한번 그쪽에 놀러 갈 생각만 하고 통발어선에 대해 알은체만 하고 있었다. 적으로부터 피격을 당해 '아군 전사(戰死) 46명'이라는 전황 발표를 볼 때까지 깜빡 잊고 살았다.
명색이 국제부 데스크인 나는 후방인 서울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 앉아 1심 무죄판결이 난 전직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후일담을 들으며, 그리고 올 들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지구촌 참사들을 거론하며 또 깜빡 잊는다. 우리도 전쟁 중이라는 것을. 우리 국군을 수중 폭탄으로 공격 살해한 적(敵)의 정체가 구체적인 물증과 함께 백일하에 드러나는 날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레드와인에 닭을 삶은 전통적인 프랑스 요리 '코크 오 뱅'에 포크를 찌르면서 떠들었다. 어떻게 하긴! 첫째 유엔 안보리에 회부한다, 둘째 국제적인 비난과 결의를 이끌어낸다, 셋째 구체적인 실력행사로서 금융거래 봉쇄를 강화한다, 넷째 80년대 아웅산 테러 때처럼 적진 깊숙이 행글라이더 요원 30여명을 투입해 적장의 목을 베려고 했다는 '벌초계획'을 다시 말하는 자들이 있겠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등등…. 옛날처럼 공설운동장에서 규탄대회라도 열까 하며 실없는 소리도 했다.
나는 천안함에 대해 공격 명령을 내린 자는 평화통일을 이룬 후에도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각오 같은 것은 잊고 있었다. 15년 동안 추적 끝에 아르헨티나까지 쫓아가 독일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잡아온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천안함을 공격한 자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그들의 정보국 휘장에 새겨 있다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