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학교
닉 데이비스 지음|이병곤 옮김|우리교육|312쪽|1만3000원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이 학교는 한마디로 공교육 실패 사례의 종합선물세트다. 아이들이 치고 박는 일은 예사다. 교내에서 마약을 사고 팔지 않으면 다행이다. 학생이 난동을 부리면 교사는 급히 삐삐를 친다. 그러면 ‘말썽꾸러기 전담 교사’가 부리나케 달려와서 문제의 인물을 안정실(통제 안 되는 학생들을 따로 수용하는 특별교실)로 ‘압송’한다. 하루에 이런 호출이 40~50통씩이다. 이 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전국 평균을 한참 밑돈다.
저자 데이비스는 공교육 위기의 핵심 원인을 ‘빈곤’에서 찾는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부유한 부모를 둔 아이들보다 학교 성적이 훨씬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가령 앞서 예로 든 애비데일 그레인지 종합중등학교의 경우 1960년대까지는 어엿한 지역 명문이었다. 그러나 학군이 조정되면서 빈곤층 거주 지역이 포함되게 됐다. 부유한 백인 학부모들은 가난한 이민자 자녀들과 자기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걸 꺼렸다. 그들은 자녀를 교외의 중산층 거주 지역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켰다.
- ▲ 영국의 명문 사립 해로 학교 학생들. 영국에서 해로 학교 같은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전체의 7%에 불과하지만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사립학교 출신이다. /조선일보 DB
상처가 곪아가는 와중에 ‘정치적인 소금’을 확 뿌린 것이 영국 보수당 정부의 교육개혁이었고 데이비스는 주장한다. 보수당 교육 개혁의 골자는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고, 교육 예산 배정에 시장 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못사는 동네에 있는 학교는 갈수록 학생 수와 예산이 줄고, 잘사는 동네에 있는 학교는 갈수록 학생 수와 예산이 불어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데이비스는 “아버지 수입이 다른 아버지들의 두 배인 아이는 수학 시험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평균 5점을 더 맞는다”는 영국 재무부 보고서를 인용하며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육부와 교육기준청은 실패한 학교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데 전념했고 학교 실패는 전적으로 무능한 교사와 학교 행정가들 때문이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51쪽).
데이비스는 네덜란드에서 대안을 찾는다. 네덜란드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장래 희망에 따라 교육과정을 세세하게 나눈다. 중학교 교과 과정만 네 가지일 정도다. 대신 단 한번의 평가로 아이들이 ‘낙인’ 찍히는 일이 없도록 여러 과정 사이의 문을 열어둔다. 대학 진학 과정보다 직업 과정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충분히 배정해서 대학에 가지 않는 아이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주고 자존심을 세워준다(269쪽).
1999~2000년 가디언지에 연재된 심층 기획을 묶은 책이지만, 오늘 여기서 우리가 읽기에도 충분히 흥미롭고 도발적이다. 그만큼 생생한 현장감과 간명한 문장이 빛난다. 한국 교육 개혁의 방향을 잡는 데는 이런 현장 리포트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