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北)도 내놔야"… 정부, 무작정 주는 '햇볕 패러다임' 바꿨다
-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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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北)조문단 바로 안 만나주고 외국사절단 틀에 넣은 것도 대북(對北)정책 기조 확인한 셈
북한 특사조문단이 1박2일이던 서울 체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한 끝에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과정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23일 "패러다임 시프트(전환)"란 표현을 썼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대북 접근 방식이 적용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설명이었다.안보부서 당국자는 "과거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앞세워 국제관계의 '룰(규칙)'은 뒤로 한 채 북한이 대화에만 나오는 것에 감지덕지하곤 했다"며 "앞으로 그런 남북관계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남북관계는 민족 내부 문제인 동시에 국제관계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과거 정부는 '선(先) 민족, 후(後) 국제관계'라는 기조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려 했다"(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지적이다. 반면 현 정부는 "이제는 균형을 잡아야 할 때"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한 고위당국자가 "남북관계도 (민족 내부 문제란) 특수한 관계의 틀을 벗어나서 국제적인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2차 핵실험까지 강행한 북한을 과거처럼 유화적으로 대하지 않고,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북한 특사단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이 대통령이 "핵을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라면 하겠다"고 응답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 ▲ 돌아가는 北조문단 그는 평양에서 김정일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23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평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고려항공 특별기에 오르고 있다./연합뉴스
특히 청와대가 북한 조문단을 특별 대우하지 않고, 외국 조문단을 접견하는 과정에서 만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당초 이날 외국 조문단 접견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총리실은 22일 오후 3시45분쯤 갑자기 "총리의 해외 조문단 접견 일정이 취소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정부 소식통은 "이때는 청와대가 외국 조문단의 접견 틀 속에서 북한 조문단을 만나기로 결정한 시점"이라며 "남북관계에서도 특수성과 보편성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했다. 북한 조문단은 오전 9시 일본·중국·미국 조문단에 앞서 맨 처음으로 이 대통령을 예방했다. 한 당국자는 "오늘(23일)이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만 아니었더라면 북한 조문단을 이틀쯤 기다리게 하고 싶었다"는 말도 했다.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평양에서 김정일을 면담하기 위해 방북 일정을 5차례나 연장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모두 8차례 북한 인사가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기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와 반대로 2003년 1월 대통령 친서를 가지고 방북했던 임동원 당시 특사는 김정일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정부의 '패러다임 전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달라진 남한 정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김기남 비서와 악수하는 이명박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