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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사형수였던 장군 [ 1 ]

鶴山 徐 仁 2009. 7. 6. 13:24

august 의 軍史世界

 

사형수였던 장군 [ 1 ]

 

 

 

전승 기념행사의 지휘관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소련은 인류사 최대의 전쟁이었던 독소전에서 마침내 승리를 하게 되었고 이러한 영광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선전하고 기념하기 위해 약 두 달이 지난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의 중심부인 붉은 광장에서 사상최대의 군사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지금도 회자되는 그 유명한 모스크바 전승 기념행사 ( Moscow Victory Parade 1945 ) 입니다.

 

[ 1945년 당시 (左) 와 2005년 승전 60주년 행사에 묘사된 모습 ]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정권의 최고지도부가 광장근처의 레닌묘 위에 마련된 연단에 자리를 잡고 나서 성 바실리 성당의 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키자, 광장의 양끝에서 백마와 흑마를 탄 두 명의 장군들이 달려와 행사장중심에서 만난 후 연단을 향해 퍼레이드의 개시를 알림으로써 웅장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행사장 연단 기록화 ]

 

이들 장군들은 행사참가 부대들을 총 지휘하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백마를 탄 사람은 독일점령군 사령관이었던 주코프 원수였고, 흑마를 탄 또 다른 지휘관은 폴란드에 주둔한 북부전선군 사령관인 로코소프스키 ( Konstantin Konstantinovich Rokossovskii 1896 ~ 1968 ) 원수였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이끈 소련의 장성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군들로 이런 중요 행사의 지휘관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 주코프 (左) 와 로코소프스키 ]

 

그런데 이 행사를 지휘한 한축인 로코소프스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비록 커다란 의미는 없어진 상태였지만 당시 엄연한 사형수신분이었습니다.  그가 수많은 인민들과 세계인들 앞에서 충성의 경례를 받친 대상인 연단 위의 스탈린은 전쟁 전인 1937년 대숙청 시기에 그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사형을 언도하도록 만든  주역이자 개인적인 원수였습니다.

 

[ 당시 로코소프스키는 미결수 신분이었습니다 ]

 

거기에다가 그는 소련의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지만 순수 러시아사람이 아닌 폴란드계였는데  전후 소련은 물론 나찌의 지배를 벗어나 새로 독립한 폴란드의 역사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마치 롤러코스트처럼 극과극의 굴곡 된 삶을 살아온 로코소프스키는 인생사 자체가 흥미로운 구석이 상당히 많습니다.

 

[ 콘스탄틴 콘스타노비치 로코소프스키 ]

 

그의 출생에 관련한 기록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고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출생했다는 주장도 있고, 러시아 벨리키예루키 ( Velikiye Luki ) 에서 태어나 바르샤바로 이주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1896년 당시에 폴란드라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었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바르샤바는 제정러시아의 영토였습니다.

 

[ 1914년 이전에 폴란드라는 나라는 없습니다 ]

 

로코소프스키家는 원래 폴란드의 귀족가문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아버지는 철도관련 이주 노동자였고 러시아인 어머니는 교사였던 보통의 평범한 집안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양친부모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 로코소프스키는 14세에 고아가 되었고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하여야 했습니다.

 

[ 19세기말 러시아 공장노동자들의 모습 ]

 

직물 공장과 채석장등에서 일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그는 이때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여 수감이 되기도 하는 등 정치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의 이러한 성향은 이후 발생한 러시아 대혁명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여 볼셰비키에 가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