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지키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를 이뤄낸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사진 위 삿대질하는 인물이 정태근 의원. 아래 권영진 의원 4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장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이 盧武鉉 前 대통령 조문객 숫자가 과장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일부 의원이 격렬히 항의한 것이다. 宋소장 발언은 친지(親知) 한 분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 관찰을 인용한 것으로서 흥미롭다. 같은 사람이 4시간 동안 5번이나 조문을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宋소장은 『봉하마을에 하루 20만 명이 왔다고 하는데 계산을 해보면 버스로는 5000대가 와야 한다는 것』이라며 20만 명이라는 수치가 부정확하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宋소장 발언에 대한 의원들 반응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초선인 권영진·정태근 의원은 『북핵에 대해 얘기하라』, 『주제에 어긋나는 것 말고 본론을 얘기하라』며 삿대질했다. 유승민·정옥임 의원 등 10여 명은 아예 강연장을 박차고 나갔다.
한나라당은 宋소장의 4일 의혹제기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겁먹고 짓눌려 있었다.
정태근, 권영진 의원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이다. 1964년생인 鄭의원은 2005년 ~ 2006년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1962년생인 權의원은 2006년 7월~ 2007년 역시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정태근 의원을 기사로 다룬 기억이 난다. 그는 대선 기간 중 중앙선대위 유세수행단장을 지냈었다. 鄭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서 대학시절 「삼민투(三民鬪)」 활동을 벌이다 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복역했다.
鄭의원은 출소 후 親北단체인 통일연대 소속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를 거쳐 99년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운영위원,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같은 해 1월24일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열린우리당 김성곤 최고위원을 이사장으로 하여 99년 『로버트 김 석방을 위한 전국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이후 이 단체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단체로 변질(?)됐다. 이 단체는 2006년 7월29일 일본과 미국이 「카스라-테프트협정」을 맺은 지 101년이 되는 날을 맞아 소위 민족단체들과 함께 소위 『日本제국주의와 美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6·15선언의 기본정신을 확고히 고수·지지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의 민족적 공조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鄭의원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386들을 대거 영입할 때 원희룡(元喜龍)·고진화(高鎭和)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2002년 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맡아 당시 이명박(李明博) 후보를 도왔고, 2005년 9월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돼 「이명박(李明博) 사람」이 됐다.
이념(理念)은 감정과 경험과 지식의 총합이다. 한나라당의 이념은 현재 대한민국의 애국(愛國)세력과 거리가 멀다. 굳은살이 박힌 한나라당은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좌익깽판세력과 빅브라더 金正日뿐이다.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지키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를 이뤄낸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반역(叛逆)좌파만큼이나 惡한 자들이 무능(無能)한 집권세력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구한말 이조(李朝)만큼이나 썩고 멸망 전 티우정권 만큼이나 허약하다. 죽지않기위해서라도 살 길을 찾아야한다. 북한의 동포들이 지금도 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