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장군의 이름을 받들어 [ 끝 ]
그 이름으로 다시 반복된 비극
베저강 훈련 ( Operation Weserubung ) 으로 이름 붙여진 독일의 덴마크-노르웨이 침공전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와 같았습니다. 사실 노르웨이에 대한 독일의 침공을 영국과 프랑스도 사전에 어느 정도 예견하고는 있었지만 이를 저지할 준비까지는 아직 완료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연합군이 허둥대는 틈을 노려 해군이 약한 독일은 바다를 건너 노르웨이로 전격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 노르웨이 침공을 위해 항구에 대기 중인 독일군 ]
강력한 공군을 보유하였던 독일은 침략과 동시에 신속히 제공권을 확보하였고 동시에 노르웨이의 비행장을 점령하는 작전을 시행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독일의 또 하나 정예부대였던 팔슈름야거 Fallschirmjager 가 사상 최초로 동원되어 성공적인 강습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뒤에 있은 벨기에, 네덜란드 침공전이나 크레타전투 ( 관련글 참조 )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노르웨이침공전은 공수부대의 효용성이 입증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 팔슈름야거가 최초로 실전에 동원됩니다 ]
공군력에서 절대열세를 보인 노르웨이는 차례차례 요지가 독일군의 수중에 접수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소수의 공수부대가 거점을 오래 동안 확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승리는 해군에 의해 실려 온 증원 상륙군이 선도부대로부터 거점을 인수인계 받고 예상되는 반격을 완전히 평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어야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 노르웨이 점령 후 해안포 진지에 주둔한 독일군 ]
기습의 효과를 노려 상륙군을 싣고 일거에 대규모로 출동한 나찌해군은 공군의 선전덕분에 연합군의 간섭 전 노르웨이 인근 연해에 모습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나찌해군이 영국이나 프랑스해군보다는 절대열세였지만 그래도 노르웨이해군 정도는 충분히 압도할만한 전력이었습니다. 사실 노르웨이는 육해공 어느 분야에서도 독일을 혼자 맞상대 할 수는 없었습니다.
[ 오슬로를 점령한 독일군 그런데 이곳에 상륙하기까지 사연이 많았습니다 ]
발트해를 순식간에 건너 유유자적하게 오슬로 연안에 다다른 블뤼허전단은 노르웨이 특유의 피요르드 Fijord 해안선의 깊은 협곡 안으로 진입합니다. 전술적으로 볼 때 깎아지른 듯한 협곡 안으로 함정이 진입하는 행위는 양측 돌출부에서 방어를 펼치는 상대의 공격에 직격으로 노출되는 위험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륙군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독일은 어쩔 수없이 이런 방법을 선택하였고 노르웨이의 반격도 예상되지 않았습니다.
[ 사방이 막힌 피요르드 안으로 공격함정이 진입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전술입니다 ]
그런데 독일 침공군이 보무도 당당히 협곡에 진입하였을 때 선두에 섰던 경순양함 엠덴이 노르웨이가 설치한 기뢰에 부딪혀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상륙작전이 지연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독일이 당황하고 있을 때 해안가 절벽위에서 블뤼허전단을 향하여 불벼락이 날라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일군이 협곡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할 바로 그 순간 피요르드 협곡내측에 배치되어 있던 노르웨이의 해안포대가 블뤼허를 향해 불을 뿜었던 것입니다.
[ 오스카보리 요새의 280mm 해안포 ]
독일이 사전에 전력 외로 분류하여 놓았을 만큼 무려 47년이나 지나 구닥다리로 취급되던 오스카보리 Oscarsborg 요새의 280mm 해안포가 화염을 토해내었습니다. 벼랑위에서 육안으로도 충분히 관측이 가능한 불과 1.8Km 떨어진 협곡 안에 갇힌 블뤼허를 향해 날아간 포탄이 하나하나 선체에 작렬하였습니다. 새벽 5시 21분에 시작한 노르웨이군의 역습에 침공전단의 기함인 블뤼허의 갑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합니다.
[ 구닥다리 해안포에 격침당하여 바닥을 하늘에 보여 준 블뤼허 ]
그리고 동시에 요새로부터 발사된 두발의 어뢰가 정확히 블뤼허의 옆구리를 강타하였고 취역한지 불과 반 년만에 블뤼허는 침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7시 23분 블뤼허는 바닥을 하늘로 보이면서 830명의 장병과 함께 가라앉았고 그 피해와 망신은 20여 년전 도거뱅크에서 보여준 선임 블뤼허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블뤼허의 굴욕으로 오슬로 점령은 차질을 빚게 되었고 시간을 얻은 노르웨이 정권 수뇌부는 국외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 비참한 최후를 맞은 장갑순양함 블뤼허 (上) 과 중순양함 블뤼허 ]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아무래도 독일해군에게 있어 블뤼허는 궁합이 맞지 않은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1차 대전 때도 그렇고 제2차 대전 때도 독일해군의 전투함 중 제일 먼저 배 밑바닥을 하늘로 보여주었던 것이 블뤼허였는데 그것도 건조되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신예함들이었기에 독일의 망신은 대단하였습니다. 프로이센의 명장 블뤼허는 무덤에서 이렇게 외칠지 모르겠습니다. " 제발 내 이름 함부로 사용하지 말란 말이야. 너무 쪽팔려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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