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個人觀

우리 사회의 분열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 가?

鶴山 徐 仁 2009. 5. 21. 21:08

 

현대 사회는 분열과 화합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온 것은 단연 사실이라고 긍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근간 우리 사회의 분열 현상은 그 도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국제적으로 전세계가 경제적인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는 걸 국민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회 각계각층의 분열 현상은 조금도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과연 그 끝이 어디까지 가야할 것인 가?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김대중 정부이래로 골이 깊어져만 가고 있는 국가정체성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국가 이미지에 항상 단골 메뉴로 세계에다 내놓고 먹칠을 하고 있는 정치와 노사문제의 낙후성은 끝없이 이어져 가는 것만 같다.

오늘날 세계가 한결 같이 경제적 위기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이렇게 우리 안방에서는 한가롭게 원시적 정치 싸움판을 벌리고, 노동자들의 폭력성 시위가 끊이지 않고서야 어찌 어려운 난국의 상황을 제대로 넘길 수가 있을 까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급기야는 국가 경쟁력에 대한 세계적 평가결과도 보면 아시아권에서마져도 우리나라의 경쟁대상국들에 한참 밀려나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고서도 안일하게 미래에 대한 밝은 청사진만을 그리고 있을 수 있겠는가 싶다. 

좌향적 편향 성향의 지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이라는 걸 내놓은 이래로 우리 정부의 실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맛을 들여서 10년이 넘도록 우리 정부를 길들여온 북한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노골적으로 감추었던 본색을 서서히 드려내면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을 압박하고, 우롱하며, 농간하기 시작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내놓으면서, 국방백서에서까지 북한을 종래의 주적이라는 개념에서 제외하고, 삭제해버리는 등, 도대체 휴전선에서 총뿌리를 맞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안방에서 세계 국가들을 초청하여 월드컵 축구경기를 펼치고 있는데, 서해상에서는 아군의 경비정을 격친하는 망동을 벌리는데도, 이처럼 이해하지 못할 정책들을 펴면서, 실리는 북한에다가 고스란히 선사하고, 겨우 우리가 챙기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지금 이 시점에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과연 누구 좋아라고 한 짓인가 말이다.

우리가 준 돈으로 핵을 만들고, 미사일을 개량 발전시켰다고 단언은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김정일 독재자 일당들에게 삼짓돈을 제공한 것만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일이라는 독재자의 비위를 맞춰주고, 얻은 댓가가 무엇이였던가를 이제는 다시 한 번 국민들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을 같다는 말이다.

지금도 일부 덜 떨어진 무리들은 안팎으로 시끄러운 마당에 정신을 제대로 못차리고, 아직도 이기주의에 몰입하여 국가와 국민의 전체 이익은 안중에도 없다고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종국에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밖에 인식할 수가 없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뭉친다고 하더라도, 부존 하나없이 인적자원을 가지고, 수출에만 의존하여 생존을 유지하는 우리로서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국제환경 속에서 1950년대식의 정치꾼들이 아직도 개판을 치고 있는 가 하면,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폭력과 파괴가 난무하는 시위문화가 아직도 백주대로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니, 이런 나라가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오히려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사회계층은 계층별로 질시와 갈등의 뿌리가 날이 갈수록 점점 깊어지고, 그 골도 더욱 더 깊어만 가는 것 같다. 어불성설이라고 치부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구 상에 현재 존재하고 어느 국가에서든지 빈부의 격차는 있게 마련이고, 사회의 계층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부를 많이 축적한 자가 세금을 많이 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재화를 다시 사회로 환원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연할 터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기회를 주는 것마져도 막으려 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인천송도 국제학교가 당국에서 처음 설정한 외국인 학생과 내국인 학생의 비율을 그대로 고수하다가는 9월 개교마져 불투명하므로 내국인 학생의 입학 비율을 잠정적으로 30%로 상향조정하여 개교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니 어느 교육단체에서는 이를 지적하여 이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닐 수 있는 부유층의 자녀들만이 입학이 가능할 것이므로 귀족학교화 하게 될 폐단을 낳을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한다고 하였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사람들이 비싼 돈을 내고, 특정한 학교에 다니는 게 그렇게 못마땅한 것인지, 그게 뭐 그리 나쁜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학만 보더라도 좋은 대학은 등록금이 그렇지 못한 대학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터이다.

물론, 장학제도가 발전되어 있긴 하지만, 미국의 소위 아이비 리그라고 통칭하는 동부에 위치한 미국의 우수한 사립대들의 등록금은 거의가 3만 달라가 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민주화의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의 대학들도 빈부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혹시 옛날부터, '이웃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가끔 품기도 한다.

논리를 비약해 본다면, 좋은 학교 그렇지 못한 학교, 이렇게만 비유하지 말고, 좋은 차, 그렇지 못한 차, 고급 아파트, 서민 아파트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아무도 그건 다른 문제라고 할 것은 뻔하다. 차도 비싼 차는 만들지도 말고 타지도 말아야 하며, 아파트도 고급 아파트는 짓지도 말고 서민 아파트만 지어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도 이제는 포용력을 좀 가지고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물론,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여, 이념의 모순을 부추기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무리는 '적을 이롭게 하는 무리' 즉, 간첩이라고 정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을 폐기하지도 않은 채 슬그머니 거의 사문화 되어진 보안법은 법조계를 아니 우리 사회 전체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정말 제대로된 민주주의 국가를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법치주의의 근본이 바로 서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어진다면 풀리지 않을 것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부는 큰 사건, 즉, 대단위 불법폭력시위가 있을 때마다 늘 엄정하게 대처 하겠다고 하는 엄포를 놓고서는 그 결과를 보면 솜방망이로 때리는 시늉만으로 그친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선진국가들의 법집행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 지 모르겠다. 

예전에 비한다면, 지금은 우리 사회도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시대는 지났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또한, 돈만 가지고는 제대로 풀기가 어려워져간다고 하는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는 하더라도, 아직도 법보다는 권력이나 인맥이 앞선다는 말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는 이념적 갈등과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하여 사회의 여론몰이를 통해 법의 정당한 심판을 오도하고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무리들을 조속히 색출하여 단호하게 이를 척결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우리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요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보편적 민주국가의 체제에서 3권분립에 의한 법의 잣대를 가장 으뜸으로 판단해야 할 사법부가 흔들리기 시작 했으니, 이미 저질의 수준으로 인해 오래 전에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입법부에 이어 오합지졸의 양상으로 점철되고 있는 듯한 행정부를 두루 영합하여 보노라면, 속된 말로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어째 주변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딱 격에 맞을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보면, 환단고기의 환국시대로부터 신시(배달국)에 이어온 1 만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찬란한 민족이기에 국민이 단합만 한다면, 지금도 얼마전 서울시의 몇 개 구민들이 구의원의 부당한 세비 증액분을 법원에 고소하여, 환수조치처분 판결을 법원으로부터 받아내듯이,우리 사회의 곳곳에 박혀있는 썩은 무리들을 반드시 척결해낼 수도 있고, 갖 가지 어려운 난국의 숙제들을 한 가지씩 매듭을 풀어나갈 수 있는 저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모든 국민들이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대응하여, 정당한 정의의 힘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 계속해서 방치한다면 그 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회의 분열은 망국의 지름 길이 될 것이다.

그 결과의 자명한 사실은 패망한 월남의 역사를 보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