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감수의 글 ( 진주만 1941 )
다음의 글은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가 출간한 '진주만 1941' 을 감수하면서 썼던 서문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책 소개
제목 진주만 1941 ( 세계의 전쟁 시리즈 14편 )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전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계기가 되었다. 역사상 이와 같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기습작전은 다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전의 전개과정은 당대의 전략을 초월하였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이전까지 바다를 지배하던 거함거포주의를 수장시키고 항공모함이 바다의 제왕으로 등장하게 되었음을 증명한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의 의의는 단지 군사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20세기에 있어 아니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 1941년은 가장 참혹한 시기로 규정 할 수 있다. 그해 6월 22일 유럽에서는 사상 최대의 그리고 최악의 전쟁인 독소전이 벌어졌고 12월 7일에는 일본의 진주만기습으로 지구반대편에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지구의 반 정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 것이었는데 역사상 이정도로 전쟁 공간이 크고 격렬하였던 경우는 없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른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종전시점으로 보았을 때 추축국들로 규정된 세력은 이미 1930년대 이전부터 침략전쟁을 벌여왔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한 배를 탄 것은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의 전쟁은 1894년 청일전쟁부터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고 북아프리카에 대한 이탈리아의 침략도 이미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독일의 인근지역에 대한 도발은 제1차 대전의 연장선상에 놓고 보아야 맞다. 때문에 훗날 추축국이라 불리는 이들 국가들의 개별적인 침략은 그리 연관성이 없었다. 이와 같이 처음부터 완전히 생사를 함께하는 같은 편으로 보기 힘들었던 이들이 바로 1941년을 기점으로 하나로 똘똘 뭉쳐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1941년 12월 7일에 있었던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편이 확실히 갈리는 분기점이 되었다. 설령 일본의 도발이 있었다하더라도 그것이 유럽의 전쟁에 미국이 뛰어들 수 있는 명분 이 되었는지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형식상 중립을 지켰던 미국이 진주만 공습이후 영국 편에 붙어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다. 더구나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선발 자본주의국가들이 오히려 히틀러보다 더 혐오하던 스탈린의 소련과 자연스럽게 같은 편에 서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조차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일본은 잠자는 공룡의 꼬리를 밟았던 셈이었고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 세계사에 등장하여 극동지역을 재패하며 그나마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그동안 영광스런 고립주의를 주창하던 미국이 세계로 나가 슈퍼파워로 성장하는 극적인 동기가 되었고 같은 시기 독일의 침략을 받은 소련도 전후에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그래서 크다.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던 혼돈의 시대를 마감하고 확실하게 양편으로 나누어 무한대결을 벌이도록 규정지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편을 갈라 싸운 전쟁은 1945년 모두 막을 내리고 그때 만들어진 세계체제는 1991년 소련의 붕괴시점까지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의 마지막 흔적을 지구상에서 아직까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 남들이 벌여놓고 찢어 놓은 역사에 피동적으로 끌려 다닌 우리가 업보를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단지 서글플 뿐이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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