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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일본을 다루는 법

鶴山 徐 仁 2008. 8. 5.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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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일본을 다루는 법
 

  • 지난 몇주간 한국이 독도 영유권 문제에 매몰된 사이 러시아도 일본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기술(記述)했던 일본의 교과서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가 홋카이도 동북쪽에 위치한 쿠릴열도(일본명은 북방 4개섬)를 '러시아가 불법 점유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표기했기 때문이다.

    쿠릴열도는 1905년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차지해오다 2차대전에서 패한 후 러시아로 편입된 곳이다. 역사적으로, 성격적으로 우리 독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독도가 한국의 실효 지배 영토인 것처럼 쿠릴열도 역시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땅이다. 일본이 독도나 쿠릴열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점도 같다.

    일본측의 조치가 나온 뒤 흔할 법한 모스크바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항의 시위나 욱일승천기 화형식은 없었다.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을 질타하는 러시아 각계의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해 유감"이라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할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러시아가 세계 1위의 영토 대국이라서 그런 것일까? 물론 아니다. 러시아의 일반국민도 알 만한 사람은 일본의 속셈을 다 알고 있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고 꾸준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대응 논리를 갖추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영토인데, 흥분해서 '세계 만방에 쿠릴열도가 분쟁지역임을 스스로 과시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게임이든 외교든 '흥분하는 쪽이 진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쿠릴열도 영유권 문제에서는 일본이 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이 역사 왜곡을 하지 않았다면 벌써 50년 전에 쿠릴열도의 절반은 일본 땅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56년 당시 소련과 일본은 공동 성명을 통해 하보마이·시코탄·에토로후·구나시리 등 네 개 섬 가운데 소련이 하보마이와 시코탄 등 두 곳을 일본에 넘기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패망한 일본이 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의 개정,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섬의 반환 주장 등을 통해 군사 대국화와 고토(故土) 회복의 야욕을 드러내자 러시아는 당시 공동 성명 합의를 철회해 버렸다.

    일본도 '흥분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격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몇년 전 외교통상부에 출입할 때의 일. 일본의 몇몇 언론사가 러시아 정부의 입국 비자를 받고 쿠릴열도를 취재했다. 그러자 일본 외무성은 "러시아 비자를 받아 북방 4개 섬을 방문하면 이 섬의 관할권이 러시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언론사에 재발 방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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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승수 총리가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던 7월 29일 러시아의 한 외교관은 익명으로 "총리가 자국 영토인 독도를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지만 시점이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러시아에 있어 일본의 쿠릴열도 소동은 우리 독도만큼이나 연례 행사다. 교과서의 기술 내용 왜곡은 물론이고, 2월 7일을 북방 4개 섬의 날로 선포하는 등의 행동도 비슷하다. 블라디미르 푸틴(Putin) 정부가 들어선 이후 8년간 러시아 고위 관리들의 쿠릴열도 방문은 두세 차례에 불과했다. 2005년 7월과 2007년 6월에 각각 국방장관과 외무장관이 방문했다. 논란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커다란 양국간 이슈가 없을 때 쿠릴열도를 찾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왜곡이 여전한 일본을 상대하는 러시아의 국익(國益) 외교의 단면이다.
                                                                                                                  - 권경복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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