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 남(南)총선·한미회담 앞두고 교란작전?
공세적 이명박 정부에 공세로 대응
안팎으로 신뢰도 흠집낸 '자해행위'
안용현 기자 / 최유식 기자 / 이성훈 기자
● 개성공단 남한 당국자 왜 쫓아냈나
북한이 27일 개성공단 남북 교류협력협의사무소에 상주하던 남측 당국자 11명을 쫓아냄으로써 북한과의 합의나 거래가 얼마나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북한으로선 대내외 신뢰도에 스스로 흠집을 낸 '자해행위'이기도 하다.
남북이 지난 2004년 1월 '개성공단·금강산지구 출입 및 체류 합의서'에서 "북은 (남측) 인원이 법질서를 위반했을 경우, 남측으로 추방한다"고 약속했던 것도 한순간에 무시됐다.
◆북한의 의도
북한은 작년 대선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물론 취임 소식도 한 줄 보도하지 않았다. '이명박' 이름을 거론하며 비난한 적도 없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관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유엔 회의 등에서 북한의 인권 개선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북핵 문제와 대북 지원을 계속 연계시키자 이번에 그 불만을 행동으로 표출했다는 분석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자신들에게 공세적 태도를 취해 온 남한 새 정부에 되받아치겠다는 시위를 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로서도 부담이 된다"며 "북이 이런 점을 노렸을 수도 있다"고 했다.
고비를 맞고 있는 북핵 신고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북이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핵 문제와 관련해) 주변국에 심리적 압박을 주려는 것 같다"고 했다.
북한이 행동에 나선 27일이 남측의 4·9 총선 선거운동 개시일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박사는 "총선 국면에서 남측 반응을 떠보고, 총선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게 힘을 보태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남북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드는 신호탄이라는 분석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일시적 '몽니'라는 견해가 엇갈린다.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남측 당국자를 '추방'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신호인 것은 분명하다. 반면 이들이 개성공단 가동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에선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4월 중순에서 말까지가 남북관계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용현 교수는 "핵 문제가 진전될 경우 북은 미국과 통하면서 동시에 남측에도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핵 문제가 꼬이면 북은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버티기' 작전으로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은 매년 1~2월이면 남한에 쌀과 비료를 요청했지만 올해는 전혀 말이 없다. 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4월 중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결과와 4월 25일 인민군 창설 기념일을 지켜봐야 한다"며 "그때까지 북한이 만족할 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극단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
◆우리 정부 대응
청와대와 통일부는 이날 갑작스러운 북한의 조치에 황당해하면서 진의를 파악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이 대통령은 아침에 김하중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긴급히 보고를 받느라 법제처 업무보고에 15분쯤 늦었다. 김 장관은 공식 대외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간부들과 대책을 협의했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이번 사건 때문에 (북에) 당근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급할 게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 당장은 괜찮지만 갈등 커질까 우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우리 중소기업과 개성공단 사업자인 현대아산은 북측이 남측 상주 당국자들을 쫓아낸 것과 관련해 "공단 사업 자체에는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북 당국 간 갈등이 더 확대돼 대북사업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했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67개 기업이 입주해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며, 180여개 기업이 공장을 짓고 있다. 의류업체 신원의 황우승 개성법인장은 "북측 근로자들은 현재 이런 사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며 "출퇴근과 잔업 등 모든 업무가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이임동 부장은 "남북경협사무소는 주로 새 사업을 계획하는 기업에 상담해 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기존 업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업체의 한 관계자는 "3통(通) 문제 해결 등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대표인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새 정부가 남북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온 진통이라고 생각한다"며 "장기적으로 개성공단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사업자인 현대아산도 이날 개성시내 관광과 금강산 관광 등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이날 관광에 나선 남측 관광객은 개성시내 500명, 금강산 700명 등 모두 1200여명이었다. 또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조업과 공장 건설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개성공단 사업 확대 여부를 둘러싸고 당국 간에 발생한 문제인 만큼 현재 대북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갈등이 계속 확대된다면 대북사업에 어려움이 생기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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