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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두 얼굴

鶴山 徐 仁 2008. 3.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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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두 얼굴

 


뉴욕 필하모닉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평양에는 서울의 1970~80년대를 연상시키는 가게들이 많았다. '과일남새 상점' '칠성문 미용실' '짜장면집' '종로국수집' '텔레비죤 수리' '신발수리' 간판이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렸다. 도로는 반듯했고, 건물들은 낡고 칠이 많이 벗겨지긴 했지만 그래도 깔끔한 편이었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소박하게 보였다. 인민대학습당 근처의 인도에서는 솜바지와 솜외투를 두툼하게 입은 40대 부부가 자전거 뒤에 쌀부대를 실은 채 말다툼을 하고, 그 옆에 가방을 멘 초등학생 2명이 장난을 치며 걸어갔다. 뉴욕 필 단원들은 '동토(凍土)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이 신기한 듯 버스 차창에 코를 박았다. 보도진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북한은 외국인들의 동선(動線)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고려 호텔 정문에는 30대 여자 청소부가 녹색 스커트의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물걸레질을 했다. 호텔과 공연장, 식당에는 붉은색, 옥색, 흰색, 노란색의 멋진 꽃무늬 한복을 차려 입은 여성 안내인들이 친절하고 다정한 말투로 '평양의 아메리카인'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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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필 평양공연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지만 동선을 조금만 벗어나 멀리 바라보면 사정은 달랐다. 낡은 솜바지와 외투를 푹 눌러쓴 사람들의 얼굴은 검고 바싹 말랐다. 넓은 도로는 텅텅 비어 있고, 허가받고 운행된다는 택시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교차로의 신호등은 전력 부족으로 불이 아예 꺼져 있고, 교통순경이 대신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한다.
 

평양을 떠나는 비행기가 순안공항을 날아 오르자 저 아래에 흙먼지 펄펄 나는 도로와 폐허 직전의 주택단지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틀 전 인민문화궁전의 환영만찬에 등장한 '룡성맥주' '들쭉술' '인삼술' 등 성찬과, 만수대 예술극장의 화려한 옥류금, 농악, 물동이춤에 대한 추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비행기가 서해를 거쳐 인천 공항에 접근하자 지상에 빨간, 파란 지붕이 나타난다. 고층 빌딩과 잘 정돈된 도로, 줄잇는 차량들…. 남한의 항공사진은 잿빛 지붕투성이의 북한과 너무나 달랐다. 30대 미국 사진기자가 "여기도 '코리아'가 맞냐"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평양에서처럼 또다시 셔터를 눌러댄다.


이번 방북단 가운데 가장 마음 고생이 심한 사람들은 분단된 조국의 참혹한 현실을 체험한 뉴욕 필의 한국계 단원들인 것 같았다. 뉴욕필 부악장인 김미경씨는 "아리랑을 연주할 때에 눈물이 났다"고 동포애를 표시하면서도, "(평양의) 다음 세대에는 더 (경제)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덧붙였다.


남북한은 왜 이렇게 큰 격차가 벌어졌을까. 아시아 전문가인 미국 방송사의 B 기자는 "지도층이 미래를 향한 비전을 갖고 개방을 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평양 주민들은 "우리가 못사는 것은 미국이 경제봉쇄를 하기 때문"이라고 '외세탓'을 굳게 믿고 있었다.


뉴욕 필의 음악은 얼었던 평양 시민들의 마음을 상당히 녹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우호적인 분위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예술이 아니라 정치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될 것이 분명하다.


뉴욕 필이 평양을 떠나는 날 '로동신문' 톱기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교체된 쿠바 지도부에 축전을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의 분위기가 바뀌어 세계 각국의 축전을 받게 될 날은 언제일까.

                                                     
김기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