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명과 암
최근 나라 밖에서 잇따라 들려온 파양(罷養·입양아 양육 포기)과 입양아 살해 소식이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홍콩 주재 네덜란드 외교관인 푸테라이(Poeteray)씨 부부는 서울에 근무하던 2000년 1월 대구의 한 보육원에서 4개월 된 제이드(Jade)양을 입양했다. 이들 부부는 2004년 7월 홍콩으로 근무지를 옮겼고, 그동안 불임 상태였던 아내가 이후 자녀 2명을 출산하자 2006년 제이드양을 홍콩 복지당국에 인계하며 양육을 포기했다.
한국 부모에 이어 양부모에게도 버려진 ‘국제 미아’ 제이드양 사건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푸테라이씨는 “입양이 처음부터 잘못됐다. 아내가 파양 이후 끔직한 후유증에 시달려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부부가 제이드양을 당국에 인계한 뒤에 한 차례도 접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양심도 없는 냉혹하고 야비한 사람들”이라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네덜란드의 한 일간지는 “외교관 부부가 제이드양을 ‘집안 쓰레기’처럼 내던져 버렸다”면서 격렬히 비난했다. 현재 한국 국적인 제이드양은 네덜란드 시민권도 받지 못했고, 홍콩 거주민 자격도 아니어서 체류 자격이 모호한 상태다.
현지 보호기관은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영어와 광둥어를 할 수 있는 제이드양이 홍콩의 한인 가정에 입양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한인회 등은 제이드양을 입양하겠다는 신청이 여러 건 들어왔다고 밝혔다. 홍콩 당국은 이와 별도로 현지 한인 교민 일부와 입양 상담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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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외교관 부부의 파양 소식을 다룬 텔레그라프지 보도.
앞서 지난 9월 4일에는 미국에서 양어머니가 한국 입양아를 심하게 흔들어 뇌손상으로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인디애나주 해밀턴카운티 검찰은 장혜민(당시 13개월)양을 심하게 흔들어 숨지게 한 혐의로 양어머니 레베카 카이리(29)씨를 살인, 폭력에 의한 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아이의 사망에 의혹이 있다는 병원 측 제보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고, 부검 결과 ‘흔들린 아이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에 의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세 이하의 아이들이 울거나 보챌 때 심하게 흔들어서 생기는 이 증후군은 목 근육과 뇌 사이의 혈관이 덜 발달된 아이들에게 뇌출혈과 망막출혈을 일으켜 치명적이다. 카이리씨는 6개월 전 기독교 입양단체를 통해 장양을 입양했으며, 정확한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올 한 해 나라 안에서는 입양과 관련한 훈훈한 소식이 잇따랐다. 개그맨 엄용수(54)씨는 지난 5월 23일 오후 여의도 KBS 중앙홀에서 열린 막내딸 현아(26)씨의 결혼식장에서 진한 눈물을 흘렸다. 20년 전 입양한 여섯 살 딸 아이가 어엿하게 성장해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엄씨의 세 자녀 중 둘은 ‘가슴으로 낳은 아이’다. 친자식처럼 키워준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하염없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신부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시울도 붉게 젖어들었다.
인천 부평경찰서 정영섭(52) 교통안전계장은 중증장애아를 입양해 17년 동안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인천 중구 항동의 한 성당 앞에 버려진 아기를 입양한 때가 1990년 3월. 반 년 뒤 두 다리가 뒤틀리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병명은 뇌성마비 장애 1급에 해당하는 소뇌위축증. 말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아이지만 정 계장 가족은 지극한 사랑과 희생으로 ‘천사’를 돌보고 있다.
지난 10월 생면부지의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한쪽 신장을 내 준 윤정희(42)씨의 선행은 1남3녀 네 아이가 모두 입양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빛났다. 몇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었지만 “굳이 너의 아이만 고집하지 말라”는 선배 목회자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윤씨는 말했다.
지난 11월 27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는 한국인 입양아 출신 여성인 홀리 맥기니스(35)씨가 쓴 ‘한국의 아이들’이란 기고문이 실렸다. 맥기니스씨는 “개인적으로 입양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며 “입양에 대한 논쟁은 국제 입양의 존폐 여부가 아니라 아이들이 충분히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선택을 극대화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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