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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은 초접전 승리의 짐(영남·50대 이상·보수언론의 반노 정서)과 개혁 진영내 비주류(영남)로 정권을 열었다.
정권 초 파워 집단은 노대통령은 386 비서진과 시민사회, 개혁·분배 중심의 학자가 축을 이루고, 이 당선자는 475(50년대 출생해 70년대 대학을 나온 40대 후반~50대 초반) 그룹과 실용·성장·친미파 학자들이 핵을 짜고 있다. 두 사람이 처한 정치·외교·역사적 출발선이 달랐다는 뜻이다.
정부와 당을 보는 시각차는 크다. 노대통령은 ‘당·청 분리’를 못박고, 정무장관직도 없앴다. 인수위부터 임채정 위원장과 이병완 기획·조정분과 간사를 빼면, 모두 후보시절 교류한 대학교수·자문단 출신으로 메웠다.
이 당선자는 “당과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인수위엔 핵심 측근들(정두언·박형준 등)을 전진 배치했다. 당내 이재오 의원과 함께 친위집단이 당·정·청의 가교역으로 주목 받는다.
당·청 관계에서 노대통령은 ‘충돌하며 답을 찾는 원칙형’으로, 이 당선자는 ‘소리 없이 풀어가는 타협형’ 색깔로 모아진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두 사람 모두 탈(脫)여의도 시각”이라며 “다만 노대통령은 낡은 정치질서의 단절과 극복에, 이 당선자는 기존 질서와 타협하며 친정체제·보수질서를 강화하는 쪽에 방점이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오히려 이 당선자의 임기 초는 물밑 조율사(최형우·김덕룡·강삼재 등)가 활약한 문민정부와 가깝다는 쪽이다. “‘후단협’에 시달리며 정치불신이 컸던 노대통령과 당의 대선 도움이 컸고 박근혜라는 경쟁 축이 살아있는 이 당선자의 차이일 수 있다”(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분석이다.
정치 일정과 긴장이 다른 것도 당·청간 코드 변화를 읽을 변수다. 총선은 정치적 분기점으로 주목된다. 노대통령은 처음부터 급류를 탔다. 대선 3일 뒤에 당 쇄신파 23명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 성명서를 낸 게 신호탄이다.
정당 개혁은 줄곧 분당의 씨앗이 됐다. 측근들이 관여된 대선자금 수사도 “구시대의 막내가 되겠다”며 정면돌파했다. 탄핵을 당하며 16개월의 여유가 있던 총선까지 격하게 승부한 셈이다.
반면 이 당선자는 내년 2월 취임까지 ‘완류와 안전운행’ 키를 쥐는 자세다. ‘친기업·성장형 경제와 작은정부’의 보수적 화두만 키우고 있다. 종부세처럼 민감한 쟁점은 답을 유예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총선 공천도 임기후인 2월 말 이후로 한껏 늦추기로 했다. 이 당선자의 정치적 승부수가 공천 물갈이나, 내년 4월 총선후 당 전당대회 때 나올 것이란 시각이 많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공천권·당권 충돌, 보수진영내 이회창 전 총재와의 경쟁 부담이 깔려 있는 셈이다.
임기 초의 외교·안보 긴장도 노대통령은 한·미축에, 이 당선자는 남북간에 형성되고 있다. 노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북한에 특사를 보냈고, 미국을 다녀온 정대철 특사는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게 단적이다.
이 당선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연장에 적극적이지만 북한 쪽과는 긴장 기류다. 이 당선자의 실리외교 노선은 역대 대통령들처럼 첫 미국 방문 때 종합적 색깔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방미 시점부터 총선 전일지, 후일지 관심이다.
〈 경향신문 이기수기자 @kyun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