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변호사
2년 전이었던가. 여느 날처럼 이혼 사건의 조정기일에 출석하여 ‘이혼 후 누가 아이를 양육할 것인가’에 관해 협의를 하던 중이었다. 아이 아빠는 아내의 이혼 청구를 괘씸하게 여긴 탓인지 ‘아이를 양육할 생각도 없고, 양육비를 줄 생각도 없다’며 버텼고, 엄마는 엄마대로 ‘남편의 경제적 지원이 없는 한 아이를 양육하지 않겠다’고 맞서 조정은 결렬될 수밖에 없었다. 흥분 상태의 남녀는 순식간에 조정실을 떠나 버렸고, 엄마를 따라 조정실에 출석했다가 일시 고아가 되어 우는 아이의 보호자가 된 필자는 그날 오후 내내 아이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하루 평균 300쌍이 이혼하고, 이혼 당시 자녀가 있는 가정이 90%에 육박하며, 그 중 20세 미만 자녀를 두고 있는 가정도 70.3%나 될 정도인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혼율 급증은 우리 가정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고, 청소년 가출 및 범죄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같은 문제에 직면한 다른 선진국들은 이혼율의 증가로 인한 이혼 가정의 미성년 자녀 보호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래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례로 프랑스의 경우 당장 양육비를 필요로 하는 이혼 가정의 자녀에게 우선 국가가 양육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양육비 지급의무자에게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하는 이른바 선급(先給)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부모의 일방에게 일정한 절차를 거쳐 급여에서 양육비를 공제하는 급여공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혼 가정 자녀의 양육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2001년 5월경 이혼 가정의 자녀 양육 실태에 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협의이혼의 경우 어머니가 양육자로 정해진 경우가 68.3%였고, 아버지로 정해진 경우가 30.7%였으며, 재판상 이혼의 경우에도 이 비율은 각각 61.1%와 27.8%로 나타나 이혼시 어머니가 양육자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혼 후 아버지가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는 비율은 2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나 이혼 가정의 자녀들은 대다수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정서적 불안과 물질적 궁핍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혼 가정의 자녀 양육 문제는 이혼 부부의 책임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현행법은 양육비를 연체한 경우 의무이행명령이나 감치명령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이혼한 상대방이 양육비 지급을 악의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전제되는 선급제도라든가 급여공제제도 등의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변화하는 사회여건상 이혼 및 이혼 가정의 자녀가 늘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이혼을 줄이기 위한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이혼 가정의 자녀 양육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일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저마다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그럴싸한 공약을 내걸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지 않았던가. 굵직한 대형국책사업을 실시하겠다거나 주택공급을 몇 % 늘리겠다는 공약도 의미 있겠지만, 국가의 근간이 되는 가정을 보호하고 우리 사회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분위기와 제도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려는 차별화된 전략이 승부수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01/20071101012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