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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의 ‘잃어버린 세월’

鶴山 徐 仁 2007. 11. 2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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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아빠의 ‘잃어버린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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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캐나다를 함께 여행했던 한 가족의 안부가 궁금할 때가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가족의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는 기러기 아빠가 가족들을 데려가려고 와서 설득이 잘 안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었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장(家長)은 가족들 눈치만 살피고 다녔다. 지방에서 조그만 사업을 한다는 그는 그다지 여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현지생활에 잘 적응하고 만족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기러기 아빠는 여행이 끝날 무렵 마지막으로 설득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가족들의 반응은 단호하게 ‘No’였다. 옆 테이블에서 그들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나는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 기러기 아빠의 허탈하고 처량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그와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학비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는 이유로 캐나나 호주 뉴질랜드 등에 가족을 보낸 기러기 아빠들이 최근 이들 지역의 환율상승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는 뉴스를 접하니 이들 가족 생각이 더 난다. 조기유학생의 추세를 볼 때, 우리 사회에는 매년 적어도 1만명 이상의 기러기 아빠들이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의 일시적 해체’에서 ‘초국적 가족’이라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보는 관점이 다양하며, 명칭 역시 기러기 아빠, 독수리 아빠, 펭귄 아빠, 참새 아빠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은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꿈이다. 그런데 그들이 꿈꾸는 자녀의 미래는 그렇게 장밋빛일까? 이는 적어도 1세대 혹은 초기의 기러기 아빠들에게서는 사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러기 가족과 조기유학의 문제는 학벌주의에 기초한 치열한 입시경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파악될 수 있다. 즉 그것은 입시경쟁에서 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거나 입시경쟁을 우회해 가는 전략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조기유학은 영어를 배우기 위한 것이든 대학입학 특별전형을 위한 것이든 간에 그것이 상대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기유학의 이점은 희소성의 원리에서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기유학생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조기유학은 더 이상 비교우위가 아니라 일종의 트렌드가 되고 만다. 그러면 조기유학의 효과는 약화될 것이며, 새로운 형태의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기러기 아빠의 꿈은 어떻게 될까?

    이처럼 조기유학에 따른 국내 입시경쟁에서의 효과 약화로 인해 유학 후 국내로 회귀하지 않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로 회귀하지 않는 조기유학생의 미래는 어떠할까? 그들에게는 현지에서 대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오거나 유학한 국가에 남아서 생활하는 선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쉽지 않다. 필자가 연구년을 보내면서 느낀 점은 미국 교포사회에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과거보다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관심은 자녀의 미래설계와 관련되어 있다. 즉 이민자로서 미국사회에서 주류집단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하거나 한국에 가서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민자들도 그러할진대 유학생의 경우는 어떠할까? 우리는 2개 국어 구사능력의 이점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문득 기러기 아빠의 넋두리가 생각난다. 천년 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뭣 때문에 처자식과 생이별하고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주말이면 공항이라도 가야 아이들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가끔 공항에 나간다는 어느 기러기 아빠…. 그들에게 그러한 희생의 대가는 찾아올까? 세월이 흐른 후에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까?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맹목적인 선택이나 유행이 아니라 냉철한 판단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너무도 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이두휴·전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