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조찬현 기자]
섬달천을 처음 찾은 건 2005년 10월 5일 오후 무렵이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달천의 들녘에는 황금물결의 벼이삭과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가을 바닷가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섬달천의 원래 이름은 달천도(達川島)다. 전남 여수시 소라면에 속한 섬으로 지금은 소라면 복산리와 제방으로 연결되어 육지화 되었다. 주민은 대부분 농·어업과 굴양식을 하며 고구마를 많이 재배한다.
섬달천의 면적은 0.95㎢이다. 원래는 섬이었으나 1982년 연륙교가 놓여 육지와 연결됐다. 사면이 바다며 둥근 달처럼 생겼다 하여 도월천이라 부르다가 달천도로 바뀌었다. 1640년경 전남 영암에서 거주하던 김삼례가 가족을 데리고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번번이 허탕치고 돌아와도 또다시 찾아가는 섬달천
하루의 일과를 끝낸 어부들이 배위에서 갓 잡아 올린 전어를 썰어 건네준 전어의 참맛을 아직껏 잊을 수가 없다. 난생 처음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전어 맛은. 노을을 배경 삼아 출렁이는 배 위에서 먹었던 전어 회에 소주 한 잔 맛은 그 어디에도 견줄 곳이 없었다. 입 안 가득 번져오던 차지고 오묘한 풍미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 문득 그리우면 노을진 섬달천에 간다. 번번이 허탕치고 돌아오는 섬달천에 그리움을 찾으러간다. 노을을 만나려고 갔다. 하지만 언제나 원하는 노을의 모습은 기어코 나타나지 않았다. 어선 한 척이 갑작스레 붉으락푸르락 거리는 내 마음처럼 쏜살 같이 내달린다.
방파제에 부딪혀 시퍼렇게 멍이 든 바다가 어둠에 잠긴다. 가라앉아 바다에 잠긴 해가 안간힘을 다해 노을빛을 발산한다. 어부가 바삐 집으로 돌아가는 밤바다에 산과 들이, 온 세상이 다 잠긴다. 고기도 안 잡힌다는 지랄 같은 동남풍이 분다. 어부들은 오늘도 다 허탕을 쳤다.
어둠과 함께 섬달천의 파도는 거친 춤사위를 펼치고 가장자리에는 갯바위가 목소리를 높여 아우성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정녕 노을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하나. 손이 너무 시려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파도소리는 거칠어만 간다. 그 기세에 놀란 탓일까. 해는 얼굴을 감추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꿩 대신 닭이라고, 첫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노을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저 바다에 묻어두고 첫눈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났다. 여자만 섬에서 출발한 배 한 척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할머니 한 분이 마늘과 야채 각종 농산물과 양념류를 잔뜩 싣고 와서 자식 같은 사내에게 건넨다. 젊은 사내는 말없이 승용차에 짐을 싣고 있다. 할머니는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을 한 뒤에 "아가! 인제 올라 가거라" 배웅을 한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야호~! 첫눈이다. 2005년의 첫눈은 섬달천에서 만났다. 행운이다. 정말 한없이 기쁘고 너무너무 좋았다. 섬달천의 노을은 끝내 보이지 않고 바닷가 가로등 아래에는 성긴 눈만이 간간이 흩날린다.
하얀색 분홍색, 찔레꽃 동산
섬달천에 바람이 분다. 겨울바람 속에 숨어 찾아온 성급한 봄바람이 살포시 분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둥근달을 닮은 섬 섬달천, 한겨울인데도 이곳에서는 벌써 봄기운이 느껴진다. 바람에 너울대며 끝없이 갯가로 밀려드는 물결, 갯벌은 서서히 바닷물에 잠긴다.
달천 길가에는 해마다 하얀 찔레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산자락에는 연분홍 찔레꽃이 연분홍빛으로 예쁘게 피어난다. 수없이 올망졸망 매달린 꽃봉오리는 분홍빛을 띠고 있다. 하얀 찔레꽃과 분홍찔레꽃이 한데 어울려 무더기로 피어난다.
보리밭 풍경으로 유명한 보리밭 길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그곳은 찔레꽃 동산이다.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무더기 꽃동산을 이루고 있다. 달천 산자락에도 하얀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하얀색과 분홍색의 찔레꽃이 다섯 개의 꽃잎을 다소곳이 소담스럽게 피어 올린다. 꽃술이 앙증맞고 예쁘다. 연두색 암술을 가운데 두고 무수히 많은 수술이 삥 둘러싸고 있다. 향기가 강하다. 그 향기로 꿀벌을 유인한다. 강한 향기에 이끌려 찾아든 꿀벌이 꽃 속에 파묻혀 꿀을 따고 있다. 찔레꽃은 한순간에 다 피지 않고 차례차례 오랜 동안 꽃을 피운다.
달천의 보리밭길이다. 밭에는 튼실한 양파가 알뿌리를 반쯤 드러내놓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완두콩이 자리하고 그 옆에는 상추와 마늘이 나란히 있다. 고추가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밭을 다 차지하고 있다. 근처 나무에는 참새 떼가 새까맣다. 재잘대며 보리밭 주변을 날아다닌다.
길가에는 수많은 봄꽃들이 피고 진다. 고추밭 고랑을 친다고 할머니가 산도꾸(괭이와 비슷한 농기구)를 들고 지팡이 삼아 간다. 한 할머니는 운동 삼아 나왔다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긴 대나무를 짚고 간다. 논가 개울에는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을 친다. 할머니 세 분이서 올챙이 노래 합창을 하며 지나간다.
마을 대소사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할머니 네 분이 갯벌을 지나간다. 양식장으로 가는 길은 굴 껍데기와 조개껍데기가 수북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굴과 조개껍질은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할머니! 뭐 캐세요?"
"바지락 캐요."
할머니는 부지런히 갯벌을 파헤친다. 호미로 갯벌을 긁어낼 때마다 바지락이 나온다. 제법 씨알이 굵직하다. 섬달천 마을에 홀로 사는 95살 먹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마을 할머니 네 분이 함께 바지락을 캐러 왔다고 말한다.
"아이고… 갈 때 되면 가고. 올 때 되면 오고…."
"아이고 사람 하나 죽은께 이렇게 복잡하네. 날 때도 복잡하고, 갈 때도 복잡하고 한번 태어나면 한번 가는 것인데…."
슬하에 자식도 없이 돌아가신 할머니가 불쌍하다며 바지락을 캐던 할머니들은 슬픔을 삭이며 서로 읊조리고 있다.
달천 갯마을의 해질 무렵
해질 무렵이면 달천이 그립다. 문득 섬달천도 보고 싶다. 해질 무렵에 그곳에 가면 아름다운 색감으로 피어오르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 속에서 살짝 얼굴을 내민 해를 행여 놓칠세라 한걸음에 달천으로 달려가곤 한다. 해는 먹구름 뒤에 숨어들어 모습을 감춘다.
갯마을 달천 민가의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둠이 내려오는데도 산밭에서 밭을 매는 아낙은 마음이 바쁜지 손놀림이 점점 빨라진다. 마을 집집마다에는 편안함이 안개처럼 스며있다.
갯벌에는 물줄기가 실핏줄을 이루고 있다. 물이 빠진 산기슭과 섬은 짧은 치마를 두른 듯 무릎까지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놓고 있다. 어선은 평화롭게 바다 한가운데 그리움으로 떠있다.
갯벌에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게가 살아 움직인다. 수없이 많은 똘짱게와 바다 생물들의 '따다다다~ 따다다다~' 하는 알 수 없는 외침이 들린다. 말없는 바다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려는 걸까? 물결은 '쿨럭~ 쿨럭~' 헛기침을 해대며 갯바위를 흔들어 깨운다.
산밭에선 오곡이 익어가고
"서숙을 다 사진 찍내야~."
길 가던 할머니가 툭 한마디 내뱉고 지나간다. '서숙'은 전라도 사투리다. 표준어는 조(粟· Italian millet)다. 동북아시아가 원산지인 조는 구황작물로 강아지풀이 그 원형이다. 조는 5곡의 하나로 산간지대에서 많이 재배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달천 초입의 언덕길을 다정하게 올라간다.
"어디 가세요?"
"여기 밭에 약 치러 가요."
함께 일하러 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노을빛 보다 더 아름답다.
섬달천의 다리를 건너면 섬달천 마을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곁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마을 뒷산에 오르면 풍광이 수려하다. 콩밭에는 할머니가 풀을 매고 있다. 산밭의 밭둑에는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햇볕에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많이도 열렸다.
"호박 찍을라면 여기 보씨요. 이렇게 많아, 꽉 찼어."
'귀뚤귀뚤 귀뚜르~ 귀뚜르~' 산밭에서 귀뚜라미가 합창을 한다. 산밭 귀퉁이에는 하얀 부추 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부추는 건위, 정장, 화상에 약재로 사용하며 줄기는 먹는다.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갯벌에서는 "따닥~ 따닥~" 칠게와 꽃게, 고둥 같은 바다생물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갯벌 위를 게걸음치던 꽃게는 걸음을 멈추고 양 집게발로 부지런히 먹이를 먹고 있다. 건너 궁항마을과 육달천에는 옅은 해무가 뒤덮고 있다.
섬달천 마을 어촌계는 공동양식장에서 어촌계원이 함께 모여 공동 작업을 한다. 추석을 쇠기 위하여 꼬막을 채취하는 날이다. 어촌계원 42명이 다 모였다. 이번 작업은 3일이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21kg씩 3망을, 셋째 날에는 21kg 두 망을 각자 할당 받았다.
선홍빛 그리움으로 지는 노을
섬달천의 노을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항상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귀를 스치는 갯바람이 제법 차갑다. 방파제를 오가는 파도는 해넘이에 수다를 떤다.
섬달천 방파제에 서면 누구나 노을빛이 된다. 선홍빛 그리움이 된다. 순간의 황홀경에 마음마저 물들어간다. 마음이 붉게 타들어 간다. 항상 보는 노을이지만 난 오늘도 노을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세상은 별천지다. 해가 넘어간 산봉우리는 황금빛 세상이 열리고 있다. 말을 잊고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마른 풀잎 너머로 해가 진다. 발밑에서 파도가 세차게 거슬러 올라온다.
연인이 갯바위에 걸터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노을빛을 가득 담아 마신다. 해 저문 바닷가에 낚시하는 강태공이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호젓한 섬달천의 바닷가, 민박집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조찬현 기자
▲ 하얀 찔레꽃 |
ⓒ2007 조찬현 |
섬달천의 원래 이름은 달천도(達川島)다. 전남 여수시 소라면에 속한 섬으로 지금은 소라면 복산리와 제방으로 연결되어 육지화 되었다. 주민은 대부분 농·어업과 굴양식을 하며 고구마를 많이 재배한다.
섬달천의 면적은 0.95㎢이다. 원래는 섬이었으나 1982년 연륙교가 놓여 육지와 연결됐다. 사면이 바다며 둥근 달처럼 생겼다 하여 도월천이라 부르다가 달천도로 바뀌었다. 1640년경 전남 영암에서 거주하던 김삼례가 가족을 데리고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번번이 허탕치고 돌아와도 또다시 찾아가는 섬달천
▲ 해저무는 섬달천 풍경 |
ⓒ2007 조찬현 |
누군가 문득 그리우면 노을진 섬달천에 간다. 번번이 허탕치고 돌아오는 섬달천에 그리움을 찾으러간다. 노을을 만나려고 갔다. 하지만 언제나 원하는 노을의 모습은 기어코 나타나지 않았다. 어선 한 척이 갑작스레 붉으락푸르락 거리는 내 마음처럼 쏜살 같이 내달린다.
▲ 섬달천의 노을 |
ⓒ2007 조찬현 |
어둠과 함께 섬달천의 파도는 거친 춤사위를 펼치고 가장자리에는 갯바위가 목소리를 높여 아우성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정녕 노을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하나. 손이 너무 시려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파도소리는 거칠어만 간다. 그 기세에 놀란 탓일까. 해는 얼굴을 감추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꿩 대신 닭이라고, 첫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노을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저 바다에 묻어두고 첫눈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났다. 여자만 섬에서 출발한 배 한 척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할머니 한 분이 마늘과 야채 각종 농산물과 양념류를 잔뜩 싣고 와서 자식 같은 사내에게 건넨다. 젊은 사내는 말없이 승용차에 짐을 싣고 있다. 할머니는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을 한 뒤에 "아가! 인제 올라 가거라" 배웅을 한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야호~! 첫눈이다. 2005년의 첫눈은 섬달천에서 만났다. 행운이다. 정말 한없이 기쁘고 너무너무 좋았다. 섬달천의 노을은 끝내 보이지 않고 바닷가 가로등 아래에는 성긴 눈만이 간간이 흩날린다.
하얀색 분홍색, 찔레꽃 동산
▲ 연분홍 찔레꽃 |
ⓒ2007 조찬현 |
달천 길가에는 해마다 하얀 찔레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산자락에는 연분홍 찔레꽃이 연분홍빛으로 예쁘게 피어난다. 수없이 올망졸망 매달린 꽃봉오리는 분홍빛을 띠고 있다. 하얀 찔레꽃과 분홍찔레꽃이 한데 어울려 무더기로 피어난다.
보리밭 풍경으로 유명한 보리밭 길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그곳은 찔레꽃 동산이다.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무더기 꽃동산을 이루고 있다. 달천 산자락에도 하얀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하얀색과 분홍색의 찔레꽃이 다섯 개의 꽃잎을 다소곳이 소담스럽게 피어 올린다. 꽃술이 앙증맞고 예쁘다. 연두색 암술을 가운데 두고 무수히 많은 수술이 삥 둘러싸고 있다. 향기가 강하다. 그 향기로 꿀벌을 유인한다. 강한 향기에 이끌려 찾아든 꿀벌이 꽃 속에 파묻혀 꿀을 따고 있다. 찔레꽃은 한순간에 다 피지 않고 차례차례 오랜 동안 꽃을 피운다.
▲ 달천 보리밭길 |
ⓒ2007 조찬현 |
▲ 달천 풍경 |
ⓒ2007 조찬현 |
길가에는 수많은 봄꽃들이 피고 진다. 고추밭 고랑을 친다고 할머니가 산도꾸(괭이와 비슷한 농기구)를 들고 지팡이 삼아 간다. 한 할머니는 운동 삼아 나왔다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긴 대나무를 짚고 간다. 논가 개울에는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을 친다. 할머니 세 분이서 올챙이 노래 합창을 하며 지나간다.
마을 대소사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할머니 네 분이 갯벌을 지나간다. 양식장으로 가는 길은 굴 껍데기와 조개껍데기가 수북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굴과 조개껍질은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할머니! 뭐 캐세요?"
"바지락 캐요."
할머니는 부지런히 갯벌을 파헤친다. 호미로 갯벌을 긁어낼 때마다 바지락이 나온다. 제법 씨알이 굵직하다. 섬달천 마을에 홀로 사는 95살 먹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마을 할머니 네 분이 함께 바지락을 캐러 왔다고 말한다.
"아이고… 갈 때 되면 가고. 올 때 되면 오고…."
"아이고 사람 하나 죽은께 이렇게 복잡하네. 날 때도 복잡하고, 갈 때도 복잡하고 한번 태어나면 한번 가는 것인데…."
슬하에 자식도 없이 돌아가신 할머니가 불쌍하다며 바지락을 캐던 할머니들은 슬픔을 삭이며 서로 읊조리고 있다.
달천 갯마을의 해질 무렵
해질 무렵이면 달천이 그립다. 문득 섬달천도 보고 싶다. 해질 무렵에 그곳에 가면 아름다운 색감으로 피어오르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 속에서 살짝 얼굴을 내민 해를 행여 놓칠세라 한걸음에 달천으로 달려가곤 한다. 해는 먹구름 뒤에 숨어들어 모습을 감춘다.
갯마을 달천 민가의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둠이 내려오는데도 산밭에서 밭을 매는 아낙은 마음이 바쁜지 손놀림이 점점 빨라진다. 마을 집집마다에는 편안함이 안개처럼 스며있다.
갯벌에는 물줄기가 실핏줄을 이루고 있다. 물이 빠진 산기슭과 섬은 짧은 치마를 두른 듯 무릎까지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놓고 있다. 어선은 평화롭게 바다 한가운데 그리움으로 떠있다.
갯벌에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게가 살아 움직인다. 수없이 많은 똘짱게와 바다 생물들의 '따다다다~ 따다다다~' 하는 알 수 없는 외침이 들린다. 말없는 바다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려는 걸까? 물결은 '쿨럭~ 쿨럭~' 헛기침을 해대며 갯바위를 흔들어 깨운다.
▲ 달천의 서숙(조)밭 |
ⓒ2007 조찬현 |
길 가던 할머니가 툭 한마디 내뱉고 지나간다. '서숙'은 전라도 사투리다. 표준어는 조(粟· Italian millet)다. 동북아시아가 원산지인 조는 구황작물로 강아지풀이 그 원형이다. 조는 5곡의 하나로 산간지대에서 많이 재배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달천 초입의 언덕길을 다정하게 올라간다.
"어디 가세요?"
"여기 밭에 약 치러 가요."
함께 일하러 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노을빛 보다 더 아름답다.
섬달천의 다리를 건너면 섬달천 마을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곁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마을 뒷산에 오르면 풍광이 수려하다. 콩밭에는 할머니가 풀을 매고 있다. 산밭의 밭둑에는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햇볕에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많이도 열렸다.
"호박 찍을라면 여기 보씨요. 이렇게 많아, 꽉 찼어."
▲ 어미소의 사랑 |
ⓒ2007 조찬현 |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갯벌에서는 "따닥~ 따닥~" 칠게와 꽃게, 고둥 같은 바다생물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갯벌 위를 게걸음치던 꽃게는 걸음을 멈추고 양 집게발로 부지런히 먹이를 먹고 있다. 건너 궁항마을과 육달천에는 옅은 해무가 뒤덮고 있다.
▲ 부부가 밀고 당기고... 뻘배 |
ⓒ2007 조찬현 |
선홍빛 그리움으로 지는 노을
섬달천의 노을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항상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귀를 스치는 갯바람이 제법 차갑다. 방파제를 오가는 파도는 해넘이에 수다를 떤다.
섬달천 방파제에 서면 누구나 노을빛이 된다. 선홍빛 그리움이 된다. 순간의 황홀경에 마음마저 물들어간다. 마음이 붉게 타들어 간다. 항상 보는 노을이지만 난 오늘도 노을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세상은 별천지다. 해가 넘어간 산봉우리는 황금빛 세상이 열리고 있다. 말을 잊고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마른 풀잎 너머로 해가 진다. 발밑에서 파도가 세차게 거슬러 올라온다.
연인이 갯바위에 걸터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노을빛을 가득 담아 마신다. 해 저문 바닷가에 낚시하는 강태공이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호젓한 섬달천의 바닷가, 민박집에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조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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