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매년 기능경연 휩쓸어… 귀금속 기업들 “꼭 보내달라” 애원
‘학교기업’ 시범 지정돼 월급도 받아
- 한 학생이 집게로 은색 고리를 집어 든다. 토치(가스용접기)의 시뻘건 불길에 고리를 살짝 녹인 후 다이아몬드 모양의 틀에 붙이기를 다섯 시간째. “펜던트(목걸이) 완성이오!” 박경득(17·3년)군이 들어 올린 손에 은색 나비 모양의 목걸이가 반짝거린다.
10일 밤늦게까지 불을 밝힌 이곳은 인천 한진고등학교 귀금속공예 실습실.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금은(金銀) 세공 특성화고’다. 11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지방기능경연대회와 6월 귀금속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느라 학생들이 늦게까지 남아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한 학년이 120명인 이 학교는 매년 지방기능경연대회를 휩쓰는 ‘기능 명문’이다. 작년에도 4명이 출전해 금, 은, 동, 장려상까지 석권(席卷)했다. 1999년 특성화고로 지정된 한진고는 귀금속 정밀주조, 칠보(七寶: 금·은 등에 유약을 발라 무늬를 만드는 공예), 보석감정 등의 수업을 통해 ‘보석 전문가’를 키운다.
이 학교는 1986년 산업디자인과, 미용과, 귀금속공예과가 있는 한진실업고등학교로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귀금속공예과 외의 다른 과는 취업과 대학 진학률이 평범했다. 노광훈 교장은 “차별화하는 것이 학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해 특성화고 지정을 신청했다”며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철저히 실습 중심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성인과 겨뤄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 ▲금은세공 특성화고인 인천 한진고는 온 학교가 수공예 귀금속으로 번쩍인다. 10일 학생들이 직접 만든 왕관, 목걸이, 반지, 브로치 제품을 바라보고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덕분에 8년째 취업을 원하는 학생이 졸업 전 100% 취업에 성공했다. 기업들은 이런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해 몸이 달았다. “올해는 적어도 학생 3명은 꼭 줘야 한다”는 기업들의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 젬코 쥬얼리, 젬스코리아, 해든주얼리, 성광골드, 비아트, PJ주얼리 등 국내의 굵직한 귀금속 기업엔 모두 ‘한진고’ 출신이 포진해 있다. 교무부장 권영환 교사는 “채용하고 싶다는 기업은 늘고 있지만 매년 취업보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숫자가 늘고 있어 몸값은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귀금속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3년 전부터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찾아오고 있고, 입학 평균 성적도 올라가고 있다. 서울에서 통학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경쟁력은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온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대학교 수업이 디자인 위주로 운영되는 반면, 한진고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귀금속 공예의 기초인 세공 분야부터 착실히 배운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는 “따로 가르칠 게 없다”는 말이 나오고, 대학으로부터는 “학생이 아니라 조교 수준”이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교사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방학 때도 귀금속 업체와 대학을 돌아다니며 최근 경향을 배운다. 교사들은 기존 교과서를 학생들이 지겨워하자 아예 자체 교과서를 개발했다. 교사들이 만든 귀금속 공예 커리큘럼과 교과서는 이제 대학에서도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한진고 학생들은 4대 보험을 적용받는 어엿한 직장인이기도 하다. 작년 인천시교육청 선정 ‘학교기업 시범학교’로 지정돼 1년간 ‘사업’을 꾸렸고, 한 해 동안 400만원의 흑자를 냈다. 핸드폰 고리부터 페이퍼 나이프, 브로치, 인주함 같은 상품을 5000~3만원대에 팔았다. 학교 기업을 이끌고 있는 김한수 교사는 “다른 학교나 기업에서 축제와 행사 때 쓸 기념품 제작 의뢰가 많이 들어왔는데 한번 물건을 본 업체나 학교는 꼭 다시 주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수익금 중 200만원은 사업에 참여한 학생 20여명의 월급으로, 나머지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올해는 좀 더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목걸이, 팔찌, 귀걸이에도 도전해볼 겁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어야지요.” 2년차 ‘한진 사원’들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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