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45. 遍照와 辛旽

鶴山 徐 仁 2007. 4. 5. 21:52
팔만대장경 불우하던 자가 권세를 잡으면 굶주렸던 자가 음식을 만난 듯 탐욕해지는 수가 많다. 신돈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임금의 총애를 받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늘어나자 마침내 신돈은 물욕과 권세욕과 음욕(淫慾)을 한없이 탐하게 되었다. 특히 심한 것은 체면도 모르고 청탁도 가리지 않는 음욕이었다. 신승이라고 모여드는 부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겁탈했다고 하는데 실은 그런 것쯤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신돈이 기현(奇顯)이란 자의 집엘 들렸다. 마침 나라의 실권을 한손에 쥐고 조정의 크고 작은 일을 신돈의 마음대로 요리하기 시작한 때라 기현은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차리고 어여쁜 계집들을 시중들게 해서 극진히 대접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였다.
 
기현의 처가 나와 인사를 했다. 그것을 보자 신돈은 당장 눈치가 달라졌다. 굉장한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살결이 희고 몸매가  오동통한 것이 호색한 신돈의 구미를 돋우었다.
 
신돈은 안절부절을 못했다. 공연히 곁눈으로 기현의 처를 훑어보는가 하면 술을 권해 보기도 하고 저편에서 술을 따라 주면 슬며시 손목도 만져보고…. 기현은 약삭 빠른 인간이었다.  신돈의 뜻을 짐작 못할 리가 없었다.
 
'저 친구가 우리 마누라에게 단단히 마음이 있는 모양이군.'
 
다른 남자 같으면 이런 눈치를 챘을 때 분노와 굴욕감으로 두 주먹이 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기현은 달랐다.
 
'정말 우리 마누라에게 마음이 있으시다면 그야말로 호박이 구른 셈이지. 저분의 마음만 잡으면 얼마쯤이라도 입신출세(立身出世)할 수 있을 테니까.'
 
기현은 자기 아내를 몰래 불러내어 뭐라고 속삭였다. 아내는 생긋 웃고 신돈이 있는 방으로 혼자 들어갔다.
 
기현의 아내는 신돈의 곁에 바싹 다가 앉아서 색정(色情)이 자르르 흐르는 추파를 던지고는 술병을 들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폭 안길 기세였다. 강제라도 어떻게 건드려 보려고 잔뜩 마음이 동해 있던 신돈은 여자 쪽에서 먼저 그런 기세를 보이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한손으로 술병을 든 계집의 손을 덥석 쥐고 한손으로는 가는 허리를 감싸 잡았다. 여자는 그저 인사치례로 잠간 몸을 꼬더니 이내 신돈의 품에 안겨 버렸다. 아까 기현이 아내에게 속삭인 것은 물론 신돈의 말을 들으라고 한 것이었으며 남편 못지 않게 권세를 좋아하는 아내는 두말 없이 그 말을 따랐던 것이다.
 
기현의 아내가 신돈에게 몸을 맡긴 후부터 이 내외는 마치 신돈의 종처럼 시중을 들었으며 신돈 역시 이들을 자기 심복으로 극진히 돌보아 주었다. 

정권을 잡은 후 신돈의 위세는 나날이 강성해졌다. 그가 죽이고 싶은 자라면 지위를 막론하고 죽어야 했고 그가 살리고 싶은 자라면 어떤 죄를 졌더라도 용서 받았다.
 
신돈은 그런 권세를 염치불구하고 음욕을 만족시키는데 이용했다. 그리고 기현을 비롯한 심복들이 그런 시중을 잘 들었다.
 
"거 아무개 처가 천하일색이라는군요."
 
이렇게 심복하나가 귀띔해 준다. 그러면 신돈은 눈이 거슴츠레해져 가지고 "그래? 그럼 그놈을 잡아 가두도록 해라." 이렇게 명하는 것이었다.
 
가엾은 것은 어여쁜 아내를 둔 사대부(士大夫)들이었다. 그들은 하찮은 허물을 트집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남편을 옥에 가두고 나면 기현 등 신돈의 심복은 사람들을 그 집에 보낸다.
 
"댁의 주인 어른이 나라에 죄를 져서 옥에 갇혔소."
 
심부름을 간 자가 이렇게 말하면 그 집 가족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린다.
 
"무슨 죄를 졌기에 옥에 갇혔습니까요?"
 
"어떻게 구출해 낼 길이 없는지요?"
 
가족들은 심부름 간 자에게 매달리듯 묻는 것이다.
 
"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네녜! 무슨 길이 있으시다구요? 풀려 나올 길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요."
 
가족들이 애걸하게끔 되면 그제야 심부름 간 자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즉 잡혀간 자의 부인이 직접 신돈의 집을 찾아가서 애원해  보면 풀려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신돈이 음탕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 그런 신돈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이 위태롭다는 것도 듣기는 했다. 그렇지만 남편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으므로 어여쁜 아내들은  종의 부축을 받아 말을 타고 신돈의 집으로 향한다.
 
마침내 신돈의 집에 당도해서 대문을 들어서면 그 집 하인은 말과 마부를 어디론지 쫓아 버린다.  이때 벌써 불안이 검은 구름처럼 가슴속에 피어오르지만 꾹 참고 중문(中門)을 들어서면 거기까지 따라온 종들은 어디론지 쫓겨가고 아내는 신돈의 여종들에게 인도되어 안으로 들어간다.
 
신돈은 홀로 서당(書堂)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의 곁에는 이미 금침이 마련되어 있다.
 
여인은 그 금침을 보자 새파랗게 질리고 사지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지만 억지로 힘을 내어 모기만한 소리로 간청한다.
 
"저의 남편이 무슨 죄를 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너그러우신 덕으로 용서해 주시면 그 은혜 어떠한 일로든지 갚겠습니다."
 
이렇게 애걸하는 여인의 몸매를 신돈은 뱀과 같은 눈을로 구석구석 훑어 본다.
 
"어떠한 일이든지 하겠단 말이지?"
 
마침내 신돈의 말이 떨어진다. 여인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오돌오돌 떨기만 한다.
 
신돈은 여인의 손목을 잡아 깔아놓은 자리로 끌고 간다. 이때 계집이 순순히 응하고, 데리고  놀아보아 신돈의 마음에 들면 며칠 더 머무르게 하고 실컷 농락한 다음 그 남편과 더불어 석방해 준다. 그러나 여자가  녹록히 말을 듣지 않거나 말을 들어도 신돈의 색정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 남편은 벌을 받거나 혹 귀양을 가거나 혹 죽음을 당한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유부녀들은 남편이 옥에 갇혔다는 기별만 들으면 무엇보다도 먼저 곱게 화장을 하고 가장 값비싼 옷을 입고 향기 높은  술과 기름진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신돈의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신돈의 행패가 날로 심해져도 그의 비위만 맞추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조정에 가득했지만 그중에 뜻있는 사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신돈을 멀리 할 것을 왕에게 간했다.
 
이인복(李仁復)은 이렇게 간했다.
 
"신돈은 사람의 탈을 썼으나 사람이 아니옵니다. 훗일 반드시  큰 화를 초래할 것이온즉 일찍이 물리치심이 가한 줄로 아뢰오."
 
또 역대 공신 이제현(李齊賢)같은 이도 말했다.
 
"그 사람의 골법(骨法)을 보니 예로부터 흉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의 골법과 흡사하옵니다.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인즉 멀리 하시오."
 
그러나 왕은 듣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신돈이 자기를 멀리 하라고 진언한 사람들을 미워한 나머지 각각 벌을 주라고 청하자 그 청을 따라 이인복을 파직시켰으며, 그밖의 신하들은 혹은 좌천하고 혹은 귀양 보냈다. 
 
이렇게 되니 대신 이하 모든 신하들은 신돈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신돈의 위세가 아무리 높아져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 젊은이는 정언(正言)으로 있던 이존오(李存吾)였다.
 
존오는 경주 사람으로 풍채가 단정하고 과묵하면서도 가슴속에는 불같은 정렬을 품은 젊은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오직 학문에만 힘쓰다가 공민왕 구년에 등제하여 수원의 서기(書記)가 되었으며, 다시 사한(史翰)에 선보(選補)되었다. 비록 나이는 젊지만 서로 사귀는 사람들은 모두 당대의 학자들이었으니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정도전(鄭道傳), 김구용(金九容), 김제안(金齊顔) 등은 모두 그의 친우였다.
 
그 후 감찰규정(監察糾正)에 승진했다가 공민왕 십오년에 정언(正言)이 되었다.
 
그는 신돈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는데도 조신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여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을 통탄한 나머지 죽을 각오를 하고 상소문을 써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 상소문이 어떠한 내용인지도 모르고 대언(代言) 권중화(權仲和)를 시켜 읽게 했다.
 
《삼가 아뢰옵나이다. 방약무도한 신돈은 항상 말에 올라 궁궐을 드나드오며, 황공하옵께도 전하(殿下)와 더불어 한자리에 앉아 꺼릴 줄 모르오며, 그 집에 비록 재상(宰相)이 찾아가더라도 저는 높은 자리에 버티어 앉아 재상으로 하여금 뜰 아래서 절하게 하는 형편이옵니다. 전하께서는 밝히 살피시와 이 나라  시직을 위하여 이같은 요물을 속히 물리치시기 엎드려 바라오며…》
 
권중화가 여기까지 읽자 왕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크게 노했다. 당장에 상소문을 불에 태운 다음 소리소리 질렀다.
 
"간사한 소인이 나라의 기둥되는 인재를 모함하다니 고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로다! 그놈을 당장에 잡아들여라!"
 
옳은 말을 해서 임금을 깨우치려던 이존오는 오히려 임금의 노여움을 사고 궁궐로 끌려갔다. 임금은 이존오가 상소한 것을 엄하게 책했다. 이존오는 임금이 말하는 동안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임금의 말이 일단 끝나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때 신돈이 임금과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존오는 눈을 부라리고 신돈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늙은 중이 감히 상감과 자리를 같이 하다니 어찌 이다지도 무례할 수 있을까!"

이존오의 호통소리는 신돈의 귀에는 뇌성벽력(雷聲霹靂)과도 같았다. 신돈은 저도 모르게 허둥지둥 아랫자리로 내려앉았다. 이 광경을 보자 왕은 더욱 노했다. 즉시 이존오를 옥에 가두고 죽이려 했으나 그때 밀직으로 있던 이색(李穡) 등의 만류로 목숨만은 살려주고 파직해 버렸다.
 
그 후 이존오는 공주(公州)로 내려가서 숨어 살았지만 신돈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는 것을 보고 원통한 나머지 홧병이 들어 눕게 되었다. 공민왕 이십년, 병세가 위독하여 언제 숨을 거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좌우 사람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소리높이 외쳤다.
 
"신돈이 아직도 세도를 부리고 있는가?"
 
좌우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니까 다시 자리에 고쳐 누우며 말했다고 한다.
 
"신돈이 망하지 않는 한 이존오도 죽을 수는 없도다!"
 
그리고 며칠을 더 버티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는데 과연 그로부터 석달 후 신돈도 주살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그때까지만해도 왕은 신돈에게 완전히 현혹되어 있었다. 신돈이 음탕한 짓을 하는 것도,  임금을 능가하게 권력을 쓰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신돈은 기가 막히게 임금을 잘 속여 넘긴 셈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신돈이 자기 집에 심복들을 모아 놓고 술과 고기를 먹으며 음담패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한참 흥이 나서 계집타령들을 하고 있는데 문지기가 황급히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상감께서 행차하셨습니다."

신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상감은 내가 고결한 중으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자리를 보여선 안 되지…"
 
약삭빠른 기현등이 급히 사람을 시켜 술과 고기는 치우게 하고 신돈은 대문까지 뛰어나가 왕을 맞아들였다.
 
왕이 신돈의 방에 들어와 보니 상에는 과일 한 두 그릇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돈과 그 심복들은 조금 전까지의 음담패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 사람의 도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역시 신승이란 말을 들을 만큼 딴 사람과 다르구먼. 상에는 겨우 과일 두 그릇, 하는 이야기는 모두 청담(淸談)이라…"

멋도 모르는 왕은 도리어 이렇게 칭찬해 마지 않았다.
 
신돈의 위세는 나날이 강성해 갔지만, 한편,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을 보자 그는 슬며시 겁이 났다. 누가 자기 행패를 낱낱이 알리고 임금이 그것을 믿게 되기만 하는 날에는 부귀영화는 일조의 거품처럼 꺼지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신돈은 곰곰 궁리한 끝에 계교를 생각했다.
 
하루는 왕이 신돈을 불러 나라일을 의논했다. 다른 때 같으면  장광설을 늘어놓을 신돈인데 이날따라 말이 없었다. 
 
"어쩐 일이요? 오늘은 통 말이 없으니…"
 
그제야 신돈은 겨우 입을 열었다.
 
"말씀 드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전하께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많이 들으시는 모양이던데요."
 
그러자 왕은 펄쩍 뛰었다.
 
"내가 언제 선사의 말을 젖혀 놓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었단 말이요!"
 
"그래도 소문은 그렇게 들리던데요."
 
"그건 다 선사를 시기하는 자들이 낸 헛소문에 불과하지."
 
신돈은 속으로 왕이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차츰 빠져드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거짓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지금은 헛소문이라고 하시지만 장차 모함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하만 믿어오던 이 늙은이의 신세는 어찌될 것인지…"

마침내 흐느끼기까지 했다.
 
"그럴 리가 없다니까 그러는군. 정 못 믿겠다면 내 천지신명께 맹세하지."
 
그러고는 왕은 손수 세서를 써 주는 것이었다.
 
그제야 신돈은 겨우 웃음을 띠우고 임금의 자문에 응했다.
 
임금의 맹세까지 받은 신돈은 더욱 더 꺼릴 것이 없어졌다. 이제는 공공연히 첩을 거느리고 자식까지 둘이나 낳았다. 그리고 한편 기현, 최사원(崔思遠), 이춘부(李春富), 김란(金蘭) 등과 작당하여 날로 세력을 뻗히니 그 위세가 임금을 누를 지경이 되었다.
 
이쯤 되고 보니 아무리 그를 믿던 공민왕도 차차 불안스러워졌다.
 
ㅡ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는지 모른다.ㅡ

공민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신돈을 차츰 꺼리게 되었다. 워낙 눈치 빠른 신돈이 임금이 꺼려하는 눈치를 못챌 리가 없었다. 그는 심복들을 모아 놓고 은밀히 의논해 보았다.
 
"왕이 나를 꺼리기 시작했으니 장차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람이란 한 번 꺼리기 시작하면 날이 갈수록 멀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그래서 마침내는 그 사람을 제거하게 되지요."
 
"나를 제거한다?"
 
신돈의 두 눈에 요기(妖氣)가 가득 어렸다.
 
"안 될 말이지! 나를 제거하려면 이쪽에서 선수를 써야지."
 
분명히 역모(逆謀)를 하겠단 말이었다. 그들은 은밀히 일을 꾸미고 진행시켰다.
 
그런데 이때 신돈의 집 문객(門客)으로 이인(李靭)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역모를 의논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비록 신돈의 집 문객이로 있을망정 그들처럼 오장까지 썩지는 않았으므로 그의 양심이 그를 충동했다. 그는 신돈 일당이 역모한다는 글을 써서 한밤중에 재상 김속명(金續命)의 집 담 너머로 던졌다. 그래도 후환이 두려워 그날 밤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김속명은 그 투서를 곧 왕에게 바쳤다. 그렇지 않아도 신돈을 의심하고 꺼려하기 시작한 왕이 가만둘리 없었다. 곧 군졸들로 하여금 신돈 일당을 잡아 들이게 하고 혹독히 고문했다.  그러니까 기현, 최사원 등 심복들은 모두 제 죄를 자백했는데 홀로 신돈만을 끝까지 버티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전에 전하께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소승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맹세한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오늘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의 어른으로서 어찌 취하실 길이라 하겠습니까?"
 
그러자 공민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내가 맹세를 어겼다고 따지지만 그보다 네가 먼저 맹세를  어긴 것은 생각 못하느냐? 듣거라! 너는 일찍이 말하기를 부녀자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설법을 해서 부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지, 결코 음탕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했었지? 그런데 어떠냐? 지금 너는 두 자식까지 낳지 않았느냐? 이것이 맹세를 어긴 게 아니고 무엇이냐? 너는 또 성중에 갑옷 만드는 곳을 일곱 곳이나 설치했다고 하니 이것이 생사를 같이 하자고 맹세한 임금을 배반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리하여 왕은 마침내 그토록 믿어오던 신돈을 죽였으니 그때가 바로 공민왕 이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