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24. 靑年將軍 慶大升

鶴山 徐 仁 2007. 3. 10. 17:23
팔만대장경정중부 일파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자 간사한 소인들은 그 밑에 기어들어가 아첨하기를 일삼았지만 무관이라도 기개 있는 사람들은 몹시 분개하고 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한 무관들 중에 경대승(慶大升)이란 장군이 있었다. 경대승은 청주 사람으로 중서시랑평장사 진(珍)의 아들이다. 이런 명문의 자제일 뿐 아니라 용력이 남달리 뛰어나서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집안 일 같은 것은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이 열다섯에 교위(校尉)에 임명되고 다시 장군으로 승진 되었다. 
 
그의 부친 진은 원래 물욕이 많고 지극히 인색해서 자기 권세를 믿고 남의 재물이나 전답을 빼앗는 일이 많았다. 대승은 항상 그것을 못마땅히 여기다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 재물들을 모두 국고에 바치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청렴결백한 그의 심지에 탄복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청렴한데다가 성미가 몹시 괄괄한 대승은 당장에라도 군사를 일으키고 싶었으나 그때 군부의 실권은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이 한손에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송유인이 차츰 부하들의 신망을 잃고 군부에 틈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젊은 무관들은 견룡(牽龍)으로 있는 허승(許升)이란 장수의 휘하로 모여들게 되었다. 허승은 원래 경대승를 존경하는 심복이었다. 
 
명종 九년 대승은 은밀히 허승을 불렀다.
 
"아무래도 일을 일으켜야 하겠네."
 
"그렇구 말구요.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세. 궁중에서 대장경회(大藏經會)가 있는데 그것이 끝나는 날 밤은 숙야(宿夜)하는 장졸들이 곤해서 깊이 잠들 걸세. 그틈을 타서 자네는 이렇게 하게."
 
"어떻게 말입니까?"
 
"자네는 우선 정중부의 아들 균이란 놈을 때려죽이게. 그러면 나는 직접 사생(死生)을 맹세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의화문(義和門)밖에 숨어 있을 테니 균이란 놈을 죽이고 나거든 휘파람을 불게. 그것을 신호로 궁중에 뛰어 들어가겠네."
 
마침내 그날이 왔다. 
 
밤도 사경이 되어서 허승은 궁중으로 잠입하여 정균을 때려 죽였다. 그리고는 밤하늘 높이 휘파람을 불었다.
 
"됐다! 정균이 놈을 죽인 모양이다. 모두 담을 뛰어 넘어라."
 
소리치고 경대승이 먼저 궁궐 담을 뛰어넘으니 부하들도 그 뒤를 따랐다. 경대승 일당이 궁중에서 숙야하던 장졸들을 닥치는 대로 참살하자 궁중은 일시에 소란해졌다.
 
이에 잠이 깬 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대승이 침전 밖에 이르러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께 아뢰오. 신 등의 거사는 정중부 등의 행패를 없이 하고 사직을 지키는데 있사오니 조금도 놀라지 마시기 바라오."
 
이 말을 듣자 왕은 침전 밖으로 나와 손수 술을 따라 경대승에게 주며 그 공을 치하했다.
 
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원래 정중부의 힘으로 등극한 몸이었다. 그러므로 정중부에게는 크게 은혜를 입은 셈이지만 그 일당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자 은근히 미워하던 차이기 때문에 경대승의 거사를 이렇게 반가와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경대승의 거사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렇게 일을 일으켰고, 그 일이 성공할 공산이 많으므로 환심을 사기 위해서 술까지 따라 주었는지도 모른다.
 
경대승은 다시 왕에게 간청해서 왕을 호위하던 금군을 빌려 정중부와 송유인 등의 집을 급습하고 모조리 잡아 죽였다. 
 
그러니 정중부는 결국 무력으로 일어났다가 무력으로 멸망한 셈이다. 
 
그러나 무신들 중에는 경대승의 거사 역시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정시중은 원래 우리 무관을 멸시하고 학대하던 문관들을 소탕하고 우리 무관들이 햇빛을 보게 했으니 말하자면 우리에겐 큰 은인인데, 대승이 이제 그 분을 죽였으니 제 목숨인들 편할 줄 아느냐?"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경대승은 원래 대담한 청년 장군이었지만 한 번 권세를 쥐고 보니 지난날의 성격은 많이 약해지고 자기 생명과 지위를 보존하기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중부의 잔당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 집안에 장사 백수십 명을 모아놓고 항상 신변을 호위하게 했다. 이것을 가리켜 그 당시 사람들은 도방(都房)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경대승은 정권을 잡자 관기를 숙청하는데 힘을 기울였으며 아무리 자기에게 아첨하는 자라도 학식과 용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면 관직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심복이라도 방자한 행동을 하는 자는 가차 없이 엄벌에 처했다. 그러기에 지난번 거사 때 큰 공을 세운 허승의 목까지도 벤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정중부의 잔당과 일부 무관들에 대한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그에게 신경쇠약 같은 질병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밤만 되면 혹시 자기를 해치려는 자가 잠입하지나 않나 하고 제대로 잠도 못 자는 형편이었는데 어느날 밤 문득 졸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뜻밖에도 정중부가 칼을 들고 머리맡에 서있지 않은가?
 
"이놈, 대승아. 네 놈이 나를 죽였으니 내 이제 그 원수를 갚아야겠다!"
 
정중부는 이렇게 소리치더니 큰 칼을 내리친다. 경대승은 그만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다.
 
정중부가 머리맡에 나타난 것은 한낱 꿈이었다. 그러나 신경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경대승은 이미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꿈을 꾸고 실신한 그는 그 후 며칠을 더 앓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 겨우 삼십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