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21. 王妃의 妙計

鶴山 徐 仁 2007. 3. 10. 17:07
팔만대장경마음 약하고 겁많은 왕은 거사에 실패하자 만사를 체념하게 되었다.
 
'이 이상 왕위에 앉아서 버티다간 장차 목숨조차 보존하기 어려울 게다. 차라리 자겸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설마 죽이기까지는 않겠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 뜻을 자겸에게 전해 보았다.
 
"왕위를 내게 물려 주시겠다구?"
 
그 말을 들은 자겸은 마음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지만 그렇다고 당장 받아들이다면 뜻있는 신하들이 들고 일어날 염려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리며 망설이고 있는데 이 일을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애를 태운 사람은 중서시랑 평장사 이수(李壽)란 중신이었다.
 
이수는 평장사 이예(李預)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많은 촉망을 받았다. 
 
일찌기 외조부되는 시중 최유선(崔惟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애는 장차 큰 인물이 될 테니 잘 기르도록 하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말과 같이 과연 성장함을 따라 역학등제(力學登第)하여 서경유수, 병부시랑, 공부상서 등을 거쳐 인종 때에 이르러서는 중서시랑 평장사가 된 것이다.
 
지난번 왕이 거사하기 전에 김인존과 함께 이수에게도 문의를 한 일이 있었는데 이수 역시 그 일을 만류했다.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일을 저질러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수는 답답하고 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자겸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느날 왕은 이자겸, 이수 등 여러 신하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다시 왕위를 물려 줄 뜻을 비쳤다. 그러니 이자겸이 염치불구하고 그 뜻을 받아들인다면 이 나라의 사직은 마침내 왕씨의 손에서 이씨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게 된다.
 
이때 이수는 재빠르게 이자겸의 곁으로 다가 가더니 그 손을 잡고 이렇게 선수를 써서 말했다.
 
"공은 원래 충성이 지극하신 분이니 상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 받아들이시진 않으실 거요, 그렇지 않소?"
 
그리고는 이자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되니 이자겸도 뻔뻔스럽게 왕의 뜻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를 말씀이요? 아직 연강역부하신 상감이 계신데 늙은 신하의 몸으로 감히 그런 무엄한 일을 생각조차 할 수 있겠소?"
 
그런 다음 왕의 앞에 부복하여 억지로 눈물을 짜내어 아뢰었다.
 
"폐하! 그런 말씀 아예 마시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정사에 힘쓰시기만 바라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자겸의 야망은 자라가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 만일 왕당파가 다시 결속해서  일을 일으킨다면 언제 어떻게 될는지 불안스럽기도 했다.
 
'왕이 살이 있는데 왕위를 물려받는다면 말썽도 일어나겠지만 만일 왕이 죽어버린다면 일은 제물에 익어버릴 게 아닌가?'
 
이자겸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자, 이번에는 왕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계획을 꾸몄다. 이자겸은 일찍이 자기 세력을 부식하기 위해서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인종의 비로 만들었는데 넷째 딸은 나이도 어려 왕과 걸맞을 뿐만 아니라 원래 성품이 다정해서 비록 이모이지만 어느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왕을 죽이자면 그 애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왕도 그 애 말은 어느 정도 믿으니까.'
 
이자겸은 은밀히 떡 속에 독약을 넣고 넷째 딸에게 주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이 떡은 상감을 위해서 특별히 만든 것이니까 다른 사람은  손대지 말고 상감께만 바치도록 해라"
 
그리고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것이 오히려 비의 의심을 샀다.
 
'아버님은 원래 상감을 해치려고까지 생각하는 분인데 무슨 정성이 뻗쳐서 상감께 떡을 만들어 바칠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혹시 이 떡 속에 해로운 약이라도 넣었다면?'
 
왕비는 등골이 오싹해 졌다. 비록 정략결혼이긴 하지만 왕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비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왕의 목숨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떡이 해로운 것인지 어쩐지 시험해 봐야겠다.'
 
마침 뜰 아래 새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비는 떡 한 개를 던져 보았다. 새들은 그 떡을 쪼아먹더니 이내 전신을 떨며 죽어갔다. 떡 속에 독약을 넣은 것이 분명했다. 비는 즉시 그 떡을 땅 속 깊이 묻어 버렸다. 
 
그리고 빈 그릇을 가지고 왕의 거처로 들어갔다가 도로 나왔다. 
 
얼마 후 비가 나오자 자겸은 다급하게 물어보았다.
 
"상감께 그 떡을 드렸느냐?"
 
"그럼요."
 
비는 잔인무도한 부친의 얼굴을 쏘아보며 대답했다.
 
"그래 상감께서 그 떡을 드시더냐?"
 
"아니요."
 
"드시지 않았단 말이냐?"
 
"먼저 냄새를 맡아 보시더니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시면서 창밖에 던져 버리시던데요."
 
"뭣이라? 창밖에 던져 버렸다고라고라…?"
 
자겸은 독한 눈초리로 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설마 네가 무슨 수작을 한 건 아니겠지?"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까짓 떡쯤 상감께서 잡수시지 않았다고 그리 야단하실 건 없으시지 않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 떡을 꼭 잡수시게 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날카롭게 반문하는 딸의 말에 자겸은 오히려 뜨끔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요년이 아무래도 이 애비보다 왕을 더 생각하는 모양인데…'
 
자겸은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이번에는 국을 끓여서 그 속에 독약을 탄 다음 다시 딸에게  들려 보냈다. 
 
그러나 지난 일도 있고 하므로 이번에는 먼발치로 따라가면서 감시하고 있었다. 비는 그 국도 의심스러웠지만 자겸이 감시하고 있으니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고…?'
 
생각하다가 좋은 꾀를 생각해냈다.
 
왕의 앞에까지 국그릇을 가지고 들어가다가 일부러 비틀거리며 국을 엎질러 버렸다. 이렇게 해서 비는 두 번이나 왕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니 자겸은 왕을 독살할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의심만 더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자겸이 왕실의 무기를 자기 사제로 옮겨 가려고 한다는 보고를 한 신하가 있었다.
 
그는 바로 군시소감(軍器少監)으로 있는 최사전(崔思全)이었다. 최서전은 탐진(耽津)사람으로 처음에 내의(內醫)로 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군기소감이 된 사람인데 눈치 빠르고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모사였다.
 
"무기를 제 집으로 날라가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놈이 인제 난을 일으켜 짐을 죽이려 하는구나. 어찌하면 좋겠는고?"
 
왕은 최사전의 소매를 잡고 애걸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최사전은 눈을 깜박깜박하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폐하, 자겸을 물리치시려면 단 한가지 방법이 있사옵니다."
 
왕은 귀가 번쩍 띄었다.
 
"그 방법이란 어떤 것인고?"
 
"자겸이 갖은 행패를 다 하는 것도 오직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척준경과 결탁한 때문이옵니다. 하오니, 만약 준경을 이자겸과 떼어 놓고 폐하의 편으로 속하게 한다면 이자겸의 세력을 꺾기란 아주 쉬운 줄로 아옵니다."
 
"그렇지만 준경은 자겸의 심복일 뿐 아니라 서로 혼사를 맺은 인척이기도 하고 또 준경의 아우 준신과 아들 순은 지난번 거사 때 관병의 손에 피살되었으니 어찌 우리 편이 될 것을 응낙하겠소?"
 
왕이 이렇게 말하자 사전은 "폐하, 과히 심려 맙시오. 신이 한 번 준경을 설복해 보겠사옵니다." 그리고는 곧 준경의 집으로 향했다.
 
준경은 사전이 왕의 편인 줄을 모르는 터이므로 선선히 자기 방으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자리를 정하자마자 사전은 뜻하지 않은 말을 한다.
 
"장군, 오늘은 장군께 신하로서 옳고 그름을 말씀 드리러 왔소."
 
준경은 원래 무식한 자이므로 선비를 대하면 되도록 자기 무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입을 열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므로 잠자코 사전이 하는 말만 듣고 있었다.
 
"우리 신하된 자는 태조대왕을 비롯해서 열성(列聖)의 신령이 하늘에서 굽어보심을 알아야 하오. 그러하거늘 요즈음 이자겸은 불측한 생각을 먹고 무엄한 흉계를 꾸미는 모양이니 어찌 하늘이 벌을 내리지 않으시겠소?"
 
단순한 준경은 차츰 사전의 변설에 말려 들어갔다.
 
"이자겸 뿐만이 아니요. 이자겸과 한패가 되어 역모를 하는 사람도 죄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또 이자겸은 원래 신의가 없는 자이니 일이 성사되는 날에는 저 자신의 부귀영화만 생각했지 동지들에게 보답할 줄은 전혀 모를 거요. 그렇지 않소 장군?"
 
최사전은 일단 말을 끊고 준경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준경은 역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많이 동한 모양이었다. 준경의 마음이 동한 데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었다. 그보다 얼마 전에 자겸과 준경의 하인들이 서로 다투다가 준경의 하인이 자겸의 아들에게 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성미가 괄괄한 준경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자겸에게 항의를 했다. 그러나 자겸의 가족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배짱을 부렸다.
 
'자겸이 권세를 유지하는 것은 나 때문인데 이제 세력을 잡았다고 저렇게 배짱을 부리니 정말 괘씸한 걸!' 이렇게 원망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사전의 말을 듣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상감께서도 장군의 충성심을 항상 믿고 칭찬하고 계시오. 다만 장군이 자겸과 손을 끊지 못하시는 것은 지난날의 정의를 생각하시는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시오. 그러니 이제 곧 역적과 손을 끊고 진충보국하시면 나라의 큰 공신이 될 뿐 아니라 후세까지도 높은 이름이 길이 남을 거요."
 
준경의 마음은 마침내 완전히 돌았다.
 
"공의 말씀은 하나 하나 다 지당하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어떤 일이요?"
 
이렇게 물어보았다.
 
"장군이 하실 일은 먼저 상감의 신변을 보호하시는 일이요. 우선 군졸을 인솔하고 입궐하시오. 한시라도 지체하면 자겸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으니 말이요."
 
이에 준경은 자기 집에 머물러 있던 이십 명 가량의 부하를 거느리고 연경궁으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도중에서 자기 심복이 거느리는 백수십 명의 군졸을 만나 합세하여 궁중으로 들어갔다.
 
준경은 군졸들을 둘로 나누어 한패는 군기감으로 가서 무기를 지키게 하고, 한패는 자기가 직접 지휘하여 연경궁에 있는 왕을 호위하고 군기감으로 모셔왔다.
 
이렇게 되니 군부의 무신들은 원래 준경의 편이라 군졸들을 거느리고 뒤를 이어 군기감으로 모여들었다. 자겸의 주위에는 쓸 만한 무인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폐하, 이제는 오직 자겸을 처단하시는 일만 남아 있사옵니다. 어찌 하시겠사옵니까?"
 
준경의 말에 왕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자겸의 소행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짐의 외조부가 아니요? 목숨만은 살려서 멀리 귀양이나 보내야지."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어 자겸을 불렀다. 
 
그렇듯 집요하게 권세를 탐내던 자겸이었지만 이제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서 떨어져 가고 나니 더 버틸 기력이 없었으므로 만사를 단념하고 소복으로 입궐해서 마침내 멀리 영광(靈光)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자겸의 도당과 일가친척도 모조리 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자겸 자신도 귀양 간 영광 땅에서 죽고 말았으니 이로써 자겸 일당은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