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忠州) 사람 유긍달(劉兢達)의 딸 유씨부인(劉氏夫人), 동족인 왕제공(王悌恭)의 딸 명복궁부인(明福宮夫人), 김부의 백부가 되는 김억렴(金億廉)의 딸 김씨부인(金氏夫人), 박영규(朴英規)의 딸 동사원부인(東山院夫人), 공신 유금필(庾劒弼)의 딸 동양원부인(東陽院夫人), 왕규(王規)의 딸 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왕유(王柔)의 딸 예화부인(禮和夫人), 강기주(康起珠)의 딸 신주원부인(信州院夫人) 등등 스물두명의 부인을 두었다.
이중에는 본시 여색을 좋아하는 왕건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알궈들인 부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각 방면으로 영향력이 강한 중신(重臣)들의 딸이었으며 결국 그들과 혈연을 맺어 배반하는 일을 방지하자는 점이 더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 많은 후비들 중에서 가장 애절한 일화를 남긴 것은 김행파(金行波)의 딸이었던 대서원부인(大西院夫人)과 소서원부인(小西院夫人) 형제이다.
행파는 동주(洞州)사람이다. 동주는 서흥군(瑞興郡)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황해도 중앙에서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행파는 원래 활을 잘 쏘기로 이름난 무인이었는데 그 무술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을 뿐아니라 성품이 강직하고 식견이 넓어 태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하여 태조는 그에게 김(金)이라는 성을 하사하기까지 했다. 태조는 원래 서경(西京)을 중요시하여 가끔 그리로 행차하였으며 그 근처 산야에서 사냥하기를 즐겼다.
그날도 태조는 몇몇 장졸을 거느리고 온 종일 산야를 달리다가 어느덧 동주땅에 이르렀다. 그날따라 짐승은 별로 잡지 못하고 날은 저물어 왕은 몹시 피로를 느끼었다. 그러나 첩첩산중이라 가까운 곳에 인가조차 보이지 않아 난처한 터였는데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한무인이 산등성이를 내려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일꼬? 내가 데리고 온 자는 아닌 것 같은데…"
왕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 무인을 바라보니 등에는 십여 마리의 산새를 꿰어 지고 말 안장에는 큰 범을 줄에 묶어 질질 끌고 있었다.
그 무인은 왕의 일행 앞을 무심코 지나치려 한다. 그러자 왕의 종자 한사람이 소리 높이 꾸짖었다.
"네 어떠한 자이기에 지존하신 어른 앞을 함부로 지나가려 드느냐?"
그리고는 활시울에 살을 당겨 쏘았다. 보통사람 같으면 그 화살에 가슴이 꿰어 거꾸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인은 가슴에 날아온 화살을 공중에서 잡아버렸다. 그리고는 말에서 내려 어 태조 앞에 꿇어 엎드렸다.
"대왕폐하의 행차이신 줄도 모르고 죽을 죄를 졌사옵니다."
원래 너그러운 왕은 그의 무례를 탓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범상치 않은 지금의 솜씨와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 인품에 오히려 마음이 끌린 모양이었다.
"이러한 산골에 그대와 같은 무인이 묻혀 있다니… 그 범과 새는 그대 혼자 잡은 것인가?"
"그러 하옵니다. 폐하." "굉장한 솜씨로다. 우리 일행 십여 명은 진종일 돌아다녀도 노루 한 마리 잡지 못하였거늘 혼자서 그렇게 많이 잡다니… 그래 이름은 무엇인고?" "행파라고 하옵니다." "내 좋은 사람을 만났도다. 이 고장에 사는가?"
"저 아래 골짜기에 누추한 초옥을 엮고 사옵니다." "그러면 이 근처 지리에는 밝으렷다? 그렇다면 내일이라도 그대를 앞장 세워 이곳에서 다시 사냥을 하겠거니와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어디 묵어 갈 곳은 없을까?"
"이곳은 깊은 산중이오라 신의 집을 제외하고는 인가라곤 별로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그대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는 것이 어떠할고?"
"황공하기 그지없사오나 워낙 누추한 곳이라 대왕께서 묵으실 곳은 못 되옵니다."
행파는 일단 이렇게 말했으나 그렇다고 달리 방법도 없고 하여 결국 왕의 일행을 자기집으로 안내했다. 행파의 집은 어느 은사(隱士)의 거처 같은 초려(草廬)였지만 터도 집도 제법 깨끗했다. 행파가 앞장 서 가서 집 앞에 당도하자 두 처녀가 뛰쳐나왔다. 그 처녀들을 보자 태조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비록 입은 옷은 산골 처녀라 소박했지만 달덩이 같은 용모와 젊은 사슴같이 날씬한 몸매는 후궁의 어느 미녀들보다도 마음을 동하게 했다.
"얘들아, 대왕폐하시다."
행파가 말하자 두 처녀는 공손히 절을 하는데 예의범절도 제법 깍듯했다. "그대 사냥 솜씨도 비범하지만 딸들도 잘 두었는 걸."
태조는 이렇게 말하고 껄껄 웃었다.
그 웃음은 호색한 임금의 뜻을 짐작케 하는 웃음이었다.
그날밤 행파는 두 딸 중, 우선 맏딸을 왕의 침소로 들여보냈다.
첫눈에 마음이 동했던 왕은 처녀의 손목을 잡고 은근히 물어보았다.
"그대는 이런 산골에서 평생을 보내기를 원하는가?"
그 처녀는 몹시 수줍어하는 성격이었던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서울로 올라가서 호강스러운 생활을 할 마음은 없는가?"
왕은 재차 물었다.
"여자의 몸으로 어찌 거친 무명옷에 산짐승의 소리를 벗 삼는 걸 원하겠사옵니까?"
들릴락말락한 음성이었지만 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그대를 왕성으로 데려가리라."
"진정이시옵니까? 대왕폐하."
"진정이구말구, 한 나라의 임금이 어찌 식언을 하겠는고? 그러니 그대는 내 뜻을 물리치지 말라." 그리고는 왕이 처녀를 품에 안으니 처녀는 순한 양처럼 순종할 뿐이었다.
그 이튿날은 행파를 앞세우고 그 근처 산야를 달리며 많은 사냥을 하다가 날이 저물어 왕의 일행은 다시 행파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날밤도 행파가 큰 딸을 왕의 침소로 들여보내려 하니까 왕은 멋적은 웃음을 띠우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대의 큰 딸도 과연 좋은 처녀였지만 작은 딸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리따운 걸."
말하자면 오늘 저녁엔 작은 딸을 들여보내라는 눈치였다. 행파는 왕의 뜻을 좇아 작은 딸을 기꺼이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
딸 하나가 왕의 총애를 받아도 큰 벼슬은 보장된 셈인데 두 딸을 다 바친다면 누구보다도 강한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일이었다.
큰 딸이 탐스러운 연꽃이라면 작은 눈부신 해당화였다.
왕이 품에 안으려 하자 작은 딸은 형처럼 호락호락하게 응하지 않았다.
"대왕폐하, 신첩을 어찌하려 하시옵니까?"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를 하는고? 내 그대가 하도 사랑스럽기에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게 아닌고?" "아름다운 인연이라니요? 산골에 핀 꽃을 한 번 꺾어 보시다가 환궁하실 적엔 길가에 던져 버리시려는 그러한 인연이옵니까?"
따끔한 말이었다.
그런 태도가 이미 오십고개를 바라보는 왕에게는 오히려 사랑스러웠다. 왕건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장차 어찌해야 좋겠는고?"
"왕성으로 데리고 가시어 평생토록 폐하를 모실 수 있게 해주시어야만 순종하겠사옵니다."
"허허허, 그렇지 못한다면?"
"비록 혀를 깨물고 자결하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사옵니다."
말만 떨어지면 한 마디도 거역하는 일 없는 뭇여인들을 대해 온 왕에게는 오히려 가시돋힌 태도가 매혹적이었다.
"암, 데려가고 말고. 내 환궁하는 즉시로 사람을 보내어 데려가도록 하지."
"그러하오나, 신첩 혼자는 싫사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어젯밤엔 저의 형이 폐하를 모시었으니 형도 함께 데려가 주시어야 하옵니다."
"그야 이를 말인가? 데려갈 바에야 둘 다 데려 가도록 하지."
그리하여 왕은 해당화 같은 작은 딸과도 그날 밤을 지내었다.
왕은 행파의 집을 떠날 때 환궁하는 즉시로 두 처녀를 데려갈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날부터 두 처녀는 몸을 단장하고 행실을 삼가며 왕성에서 사람이 오기만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왕에게서는 아무 기별이 없었다.
"언니, 상감께서 어쩐 일이실까?"
성미 급한 아우는 형을 붙들고 짜증을 냈다. 그러면 성미가 유한 형은 쓸쓸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글쎄, 어쩐 일이실까? 우리를 영영 잊어버리시지는 않으셨을 텐데…"
"잊어버리구 뭐구 있수? 처음부터 색다른 산골 계집애한테 잠간 마음이 동했을 뿐, 데려가실 생각은 아예 없으셨을 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철석같이 맹세하신 걸?"
"언니두 참, 남자들의 맹세를 어떻게 믿어?"
투덜거리다가 아우는 홀짝홀짝 울기까지 한다. 그러면 형은 아우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좀도 기다려 보자. 우리 상감님은 그렇게 신의가 없으신 분은 아닐 거야."
그러나 다시 여러 달이 지나도 감감소식이었다. 성미 급한 아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듯 마음이 유하던 형도 왕의 기별을 더 기다랄 수 없었다. "얘, 상감께서 영영 우리를 저버리신 모양이구나?"
"글쎄. 내가 뭐라고 그럽디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지?"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모르겠어."
인적이 드문 산골 외딴 집에서 두 처녀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왕성으로부터 끝내 기별이 없자, 마침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무렵에야 왕은 문뜩 두 자매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급히 행파를 불러 하문하였다.
"내 일찍이 경의 두 딸과 언약한바가 있었으나 국사에 분망하여 아직껏 그 언약을 이행하지 못했거니와 지금 어찌하고 있는고?"
그런즉 행파는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고했다.
"신의 딸들이 대왕의 분부만 고대하다가 마침내 단념하고 중이 되었사옵니다."
이 말에 왕은 크게 놀랐다.
"뭐라고? 그 탐스러운 머리채를 깎고 중이 되었다? 오! 짐이 큰 죄를 지었노라."
왕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이 없다가 힘없이 말했다.
"좌우간 그들을 다시 보고자 하니 속히 불러올리도록 하라."
얼마 후 두 자매가 상경하여 입궐하였다. 꽃같은 나이에 승니의 복장을 하고 나타난 자매를 보자 왕은 가슴이 메었다. "내 그대들에게 진 죄를 갚고자 하거니와 그대들의 소망이 무엇인고? 머리를 기르고 후궁에 있겠다 하면 그렇게 조치할 것이요, 다른 소망이 있다면 무엇이나 들어주마."
그런즉 두 자매는 조용히 눈을 들었다. 거울처럼 맑은 눈이었다. "이미 부처께 바친 몸, 속세에 바랄 것이 무엇이겠사옵니까?" "그럴 법한 말이로다. 그대를 소망대로 하라."
그리고는 서경(西京)에 대소서원(大小西院) 두절을 지어주고, 자매에게 대서원부인, 소서원부인이란 칭호를 내리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부친 행파에게는 벼슬을 차츰 높이어 나중에는 대광(大匡)을 삼았으니 문무관 중의 최고의 관직이었다. |
'歷史. 文化參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 궁중비사] 8. 王規의 亂 (0) | 2007.03.01 |
---|---|
[고려 궁중비사] 7. 訓要十條 (0) | 2007.03.01 |
[프렌치 리포트] [13] 파리 치안 안전지대 아니다 (0) | 2007.03.01 |
[프렌치 리포트] (12) 파리선 개똥을 조심하세요 (0) | 2007.03.01 |
[프렌치 리포트] (11) 경쟁 싫어… 개혁도 싫어 (0) | 2007.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