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2. 사랑은 버드나무 아래에

鶴山 徐 仁 2007. 2. 28. 19:35
팔만대장경궁예가 왕건을 시기하고 미워한다는 사실이 표면화하자 은근히 궁예를 원망하고 왕건을 지지하던 장상(將相)들은 마침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할 움직임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이는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네 사람이었다.
 
홍유는 궁예의 휘하에서는 왕건을 제외하고 가장 인망이 높은 인물이었으며, 배현경은 담력이 과인하여 가히 대사를 주름잡을 수 있는 인물이었고, 신숭겸은 무용이 절륜하여 당대에 으뜸가는 명궁이었다. 또 복지겸은 신숭겸의 동모이부제(同母異父弟)일 뿐만 아니라,  은밀한 일을 탐지해내는데 남다른 재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주동이 되어 있으므로 왕건만 일어선다면 혁명이 성공할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었다.
 
시기는 마침내 무르익었다. 신라 경명왕(景明王) 2년, 한참 무더운 6월 어느날 밤, 홍·배·신·복 네 장상은 왕건의 집을 찾아갔다. 마침 부인 유씨(柳氏)와 더불어 방문을 열어 젖히고 바람을 쏘이고 있던 왕건은 반가이 네 사람을 맞아들였다.
 
"어서들 오시오.  밤이 이슥한데 어쩐 일들이시오?"

그런즉 배현경이 흘금흘금 유씨를 바라보며 "상공께 은밀히 여쭐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만…"하고 말끝을 흐린다.

유씨가 자리를 피해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 눈치를 채고 왕건은 유씨를 향해 말했다.
 
"부인,  손님들이 먼 곳을 오시느라고 목이 마르실 테니 뒷밭에 가서 참외나 좀 따오시구려."
 
부인은 곧 왕건의 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참외를 따러가지는 않고 방문 뒤에 숨어서 안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왕건의 부인 유씨는 보통 여성이 아니었다. 일찍이 왕건이 남정(南征)을 하러 가는 길에 정주(貞州)땅을 지날 때였다. 마침 무더운 여름철이라 갈증이 심하므로 말을 멈추고 우물을 찾고 있었다. 
 
그러자니까 한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가므로 그 뒤를 따라갔다. 물동이를 인 처녀의 뒤를 따라가면 물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유달리 시원스럽게 생긴 처녀의 용모에 호한(好漢)의 춘정(春情)이 동했던 것이다.
 
처녀는 한 버드나무 밑에 이르더니 물동이를 내려놓는다. 바로 그 아래 우물이 있었다. 처녀가 물을 긷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왕건은 불쑥 그 앞에 나타나서 청했다.
 
"대단히 미안하오만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겠소?"

그런즉, 처녀는 늠름한 젊은 장군을 힐끔 쳐다보고는 수줍은 웃음을 띠우며 물 한바가지를 떠서 바치는데 어쩐 까닭인지 그 물에 버들잎 한 잎을 따서 띄운다.
 
왕건은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목이하도 마르므로 후후 불면서 물 한 바가지를 다 마시고 나서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물에 버들잎을 띄어 주었는데 혹시 이 고장의 풍습이 그렇소?"
 
처녀는 한층 더 수줍어하여 귀뿌리까지 붉히면서도 또렷이 대답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뵙기에 장군께선 이런 더위에 먼 곳을 달려오신 모양이므로 급하게 물을 잡수시면 혹시 해로울까 염려되어 일부러 버들잎을 띄운 것이어요."

"옳거니! 버들잎을 띄우면 그것을 불면서 먹기 때문에 급히 먹지 못하게 되겠구먼."
 
왕건은 이렇게 말하며 그 처녀의 고마운 마음씨와 총명함에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처녀의 집은 어디며 부모님은 어떠한 분이시오?"
 
"저의 부친은 유천궁(柳天弓)이라 하오며 저의 집은 바로 저 언덕 아래 있사와요."
 
처녀에게 마음이 끌린 왕건은 그대로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내 먼 길을 오느라고 심히 피로한데 잠시 쉬어 갈 곳은 없겠소?"

처녀는 서슴지 않고 그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집은 비록 초가일망정 그 살림살이가 풍요하며 가히 이 고장의 갑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처녀의 부친(父親) 되는 유천궁도 왕건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날밤 왕건은 그 처녀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이튿날 다시 싸움터로 향했다.

그 후 왕건은 군무에 쫓기는 몸이 되어 좀처럼 처녀를 다시 찾아갈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처녀는 왕건의 정을 굳게 믿고 다시 찾아 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났다.
 
"이러다간 저 애가 처녀로 늙겠어요."
 
"글쎄, 나도 그게 걱정이요. 기약 없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녀의 부모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태운 끝에 마침내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처녀는 펄쩍 뛰었다.
 
"여자란 한 번 인연을 맺은 낭군에게 평생토록 정절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렇지만 그 낭군이 끝내 너를 찾아 주지 않는다면 어쩌겠느냐?"
 
"그렇다면 머리를 깎고 중이 되더라도 정절을 지킬 생각이어요."
 
그래도 부모가 끝내 시집을 보내려는 눈치를 보이자, 처녀는 몰래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이 소문이 왕건의 귀에 들어갔다.
 
"내가 큰 죄를 저질렀구나!"
 
왕건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맞아다가 아내를 삼았으니 그 처녀가 바로 유씨였다.
 
한편 슬기로운 부인이 엿듣는 것도 모르고 네 사람은 마침내 밀담을 시작했다.
 
"오늘 상공을 찾아온 것은 다른 일이 아니외다."
 
담이 큰 배현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찌기 삼한이 분열하고 도적의 무리가 벌떼처럼 일어났을 때 우리 주상이 나라의 태반을 평정하였으므로 그 치하의 백성들도 마음을 놓고 생업에 전념하는가 싶었는데 주상의 거동이 날로 교만방자해져서, 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나중에는 당신의 처자까지 참살하니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말이 적은 홍유가 그 뒤를 이어 말한다.
 
"지금의 나라 형편을 보면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주상을 원망하기 지난날의 걸주(桀紂)보다 더하니 이와 같은 암흑을 거두어 버리고, 광명한 천지를 가져오게 함은 천하의 대의로 아오. 바라건대 공은 은주(殷周)의 예를 따라 궐기하시오."

이 말을 듣자 왕건은 자못 노기조차 띠우며 준절히 거절한다.
 
"내 충의를 위하여 심신을 바치고자 맹세한 몸이요. 주상께서 한때 어지로운 처사 있으시다고 어찌 감히 다른 뜻을 품겠소? 신하된 몸으로서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소."

그러나 네 사람은 왕건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믿었던지 또는 끝내 강권하면 자기네들 뜻을 따를 것이라고 짐작했던지 거듭 권한다.
 
"시기란 만나기는 어려우면서도 잃기는 쉬운 법이외다. 하늘이 내리시는바를 취하지 않는 다면 오히려 허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요. 이제 나라 안 백성들은 폭군의 학정을 견딜 수 없어 새 어른이 나타나기만 고대하고 있소. 또 몇몇 뜻있는 신하들도 폭군의 손에 학살되어 씨가 마르려 하오. 만인의 촉망이 상공에게 쏠리어 있는데 만일 상공께서 끝내 거절하신다면 우리가 멀지 않아 참살될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가련한 백성들이 어떠한 지경에 이를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터이외다."
 
그래도 왕건은 입을 다물고 선뜻 응하러 들지 않는다. 
 
이 밀담을 엿듣고 있던 부인은 왕건이 끝내 망설이는 걸 보자 갑자기 방안에 들어섰다.
 
"상공께서는 무엇을 주저하시어요? 예로부터 옳은 일을 위해서는 악한 자를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 장군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저와 같이 연약하고 무식한 여자라도 용기가 치솟아 분발하고 싶은 마음인데, 대장부로서 어찌 그렇듯 망설이신단 말씀이어요?"
 
그리고는 갑옷을 가져다가 억지로 입히며, "인심이 돌아가는 곳은 천심이 돌아가는 곳입니다. 자, 어서 앞장을 서시어요."
 
이 말을 듣자 왕건도 저으기 마음이 동하는 것 같았으며, 특히 네 사람은 용기백배하였다.  즉시 그 자리에 엎드려 신하의 예를 취한 다음 왕건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가기를 청하니 왕건도 마침내 뜻을 정하고 대문을 나섰다.
 
왕건을 앞세우고 밖에 나간 네 사람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장졸들을 시켜 거리거리를 다니며 이렇게 외치게 했다.
 
"왕공(王公)께서 의기(義旗)를 들고 궐기하셨다!"
 
그리고는 갑사들로 전후좌우를 호위케 하고 왕궁으로 향하니, 백성들은 환성을 지르며 궁중으로 모여 들었다. 창검을 든 자, 활과 화살을 든 자, 심지어 농기구를 무기삼아 든 자가 무려 일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한편 궁중에서 이 소식을 접한 궁예는 대경실색했다. 원래 득세했을 때 포악한 자는 형세가 기울면 남달리 비겁해지는 법이다.
 
"왕건이가 모반을 했다구?"
 
궁예는 허둥지둥 궁중을 뛰어다녔다. 
 
누구보다도 두려워한 왕건이었다. 그에게 만백성의 인망이 쏠리고 있는 이상 그가 궐기한다면 장졸이고 신하들이고 남김없이 자기를 배반하고 왕건의 휘하로 달려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는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궁예는 좌우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러나 이미 궁중의 신하들이나 궁녀들까지도 앞날의 화를 염려하고 앞을 다투어 도망치는 판국이었다. 궁성을 에워싼 장졸들과 백성들의 함성은 시시각각으로 높아만 간다.
 
"도망을 해야겠다.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쳐서 목숨을 보존해야겠다."
 
그리고는 도망할 길을 찾았으나 부축하는 사람하나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대왕, 저를 따르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청궁(淸宮)이라고 하는 궁인이었다. 
 
청궁은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궁예를 산 속 깊이 인도하였다. 그러나 반란군의 추적은 가혹하여 잠잘 곳도 먹을 것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농가에라도 잠시 몸을 의탁하고 싶었지만,  만인이 증오하던 폭군을 달가이 맞아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궁예는 밤이면 바위틈에서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풀뿌리를 뽑아 요기를 했으나 그래도 굶주림을 견딜 수가 없었다. 
 
천신만고 부양(斧壤) 땅 어느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밭에 보리 이삭을 쌓아놓은 곳이 있었다. 궁예는 몰래 그리로 내려가서 보리 한단을 훔치려 했다. 그러다가 그 밭 임자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놈!  어느 도둑놈이 남의 곡식을 훔치러드느냐?"
 
밭 임자는 몽둥이로 궁예를 무수히 구타했다. 
 
처음에는 참고 맞기만 하다가, 아픔과 굴욕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 소리쳤다.
 
"이 천한 놈들아! 내가 누구라고 함부로 매질을 하느냐? 나는 바로 너희들의 임금 궁예다!"
 
"뭐, 궁예라구?"
 
밭 주인과 동네 사람들은 더욱 노하였다.
 
"이놈! 우리를 그토록 못살게 굴었으니 너도 맛 좀 봐야겠다."
 
모두 모여들어 함부로 매질을 하니 궁예는 마침내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그해 육월 병진(丙辰),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하고 국호를 고려(高麗)라 정하고는 연호를 천수(天授)로 개원(改元)하였다.

그리고 유씨를 왕후로 삼는 한편,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 등 유공자를 제일등 공신으로 삼아 벼슬을 높이고 금은기(金銀器)와 능라포백(綾羅布帛) 등의 후한 상을 내리고 공훈을 치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