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7151

[스크랩] [37] 자녀교육에 실패한 사무엘

자녀교육엔 실패한 사무엘 이스라엘 역사상에서 빛나는 역할을 수행했던 사무엘은 예언자 중의 예언자라고 할 수 있다. 예언자는 히브리어로 ‘나비(nabi)’ 혹은 ‘로에(roeh)’라 하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여러 판관들이 등장해 민족을 이끌었다. 그들 대부분은 무사들이었다. 블레셋 민족의 침공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신앙도 큰 위기를 맞는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사무엘은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그에 의해 신앙이 발전하고 이스라엘은 왕국의 탄생을 맛보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교도들과의 싸움에서 점점 허약해져가고 블레셋인들에게 성궤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38] 불행한 최초의 왕 사울

불행한 최초의 왕, 사울 사무엘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이스라엘 최초의 왕을 물색했다. 선택된 인물이 사울이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장사였다.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지파를 내세우고 제비를 뽑았다. 그 결과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다시 베냐민 지파를 놓고 제비를 뽑자 키스의 아들 사울이 왕으로 뽑혔던 것이다.사무엘이 외쳤다.“자, 야훼께서 뽑으신 이를 보아라. 이 나라에는 이만한 인물이 없다.”그러자 온 백성이 “우리 임금 만세!”하고 소리질러 환호했다. 그런데 군중 가운데에는 “어떻게 저 친구가 우리 민족을 구할 수 있겠어!”하며 얕잡아 보고 그를 따르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사울은 반대자들의 멸시를 모른 체하고 침묵을 지키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사울이 왕으로서 ..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25] 아우구스티노 신학

신학자요 사목자였던 ‘은총의 박사’ 동방교회가 희랍의 철학적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교리논쟁에 몰두해 있던 것과 달리 서방교회는 구원론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3세기의 치프리아누스와 떼르뚤리아누스 이후 100여년간 뛰어난 학자를 배출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리스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형이상학적 사색보다는 실천적이고 신자생활에 직접 관계되는 인간 각자의 구원에 대한 윤리실천문제, 자유의지와 죄, 원죄, 은총과 의화 등이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적 경향은 후에 서구의 신학을 특징짓는 요소들이 된다. 서방의 구원론적 논쟁은 4세기에 이르러 엄격한 윤리주의적 이단인 도나투스 이단과 펠라지우스 이단을 불러 일으켰다. 도나투스 이단은 성사의 인효성을 강조해 "그리스도 ..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25] 아우구스티노 신학

신학자요 사목자였던 ‘은총의 박사’ 동방교회가 희랍의 철학적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교리논쟁에 몰두해 있던 것과 달리 서방교회는 구원론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3세기의 치프리아누스와 떼르뚤리아누스 이후 100여년간 뛰어난 학자를 배출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리스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형이상학적 사색보다는 실천적이고 신자생활에 직접 관계되는 인간 각자의 구원에 대한 윤리실천문제, 자유의지와 죄, 원죄, 은총과 의화 등이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적 경향은 후에 서구의 신학을 특징짓는 요소들이 된다. 서방의 구원론적 논쟁은 4세기에 이르러 엄격한 윤리주의적 이단인 도나투스 이단과 펠라지우스 이단을 불러 일으켰다. 도나투스 이단은 성사의 인효성을 강조해 "그리스도 ..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24] 예로니모와 불가따 성서

해마다 여기서 전세계로 방영되는 성탄자정미사가 봉헌되는데 성당에서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면 예로니모 성인의 서재가 있다. 대중이 읽기 쉽게 라틴어로 성서 번역, 원문에 충실하고 정확 “교회 공식 성서” 고전강의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도올 김용옥은 예수님의 탄생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해산일이 임박한 임산부가 나자렛에서 300여리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이동해 아이를 낳은 것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신약학계에서는 이미 친숙한 추론이다. 예수 부활이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신봉했는데 베들레헴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가 아니란 반론이 제기 될 것이 분명하기에 복음사가들은 역사적 신빙성이 없는 호구조사까지 만들어 내면서 ..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23] 삼장서 논쟁과 제2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성당 제2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가 개최됐던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 1453년부터 500년간 이슬람의 모스크로 사용되다 1935년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황제 단성론 옹호…교황과 관계 단절  ‘죽은 세 주교·저술 단죄’ 큰 반발 불러 성좌권위 떨어지고 동·서방 대립 심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성 소피아 대성당이다. 현존하는 성 소피아 대성당은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 지은 것으로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532년 폭도들에 의해 불타버린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 5년 10개월의 공사 끝에 완공했다. 유스티아누스가 537년 축성식을 거행하기 위해 입장하다 감격해 "솔로몬대왕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완공 후 1000여년 동안은 ..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22] 강도회의와 칼체돈공의회

독일의 벨테 신부는 "교의의 역할은 복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알아듣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의는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를 근거로 삼아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말인즉 교리라는 것은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명해 주는 것이지 그 자체가 강조돼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앙교의를 정립한 초대교회의 공의회들을 둘러보면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인한 신앙해석으로 시작된 교의논쟁들이 심심찮게 올바른 예수이해를 위한 대화의 장이 되기보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관철하기 위한 대결의 장이 되고 있음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아전인수식 다툼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계시겠지만 사랑이라는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정당성을 추구하기 위해 여론을 조장하고 권..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21] 네스토리우스 이단과 에페소 공의회

에페소는 바울로 사도가 3차 전도여행시 27개월간이나 머물며 대대적으로 선교했고 사도시대 교회들 중 가장 규모가 컸었던 공동체였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에페소에는 사도 요한과 루가의 무덤, 성모님께서 말년을 보내셨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 성요한성당, 성모성당 등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모께 봉헌된 첫 번째 성당인 에페소의 성모성당은 성모님께서 요한사도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옮겨와 살던 곳으로 431년 제3차 보편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가 열린 곳이다. 그리스도론 논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325년의 니체아 공의회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하여 삼위일체론이 정리되고 난 후 교회의 최대 관심사를 표명한 것이다. 성자..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20]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81년 제1차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개최된 성 이레네 성당. 십자가 형태의 이레네 성당은 4세기 초까지 아프로디테의 신전이었다가 성당으로 개조됐다.     터키의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친 도시이면서 로마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 비잔틴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던 역사적 도시로 1923년까지 1600여년 간 이 나라의 수도였으며 동방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동로마제국을 지배하던 리치니우스를 물리치고 제국을 통일하자 제국의 새로운 수도, 신 로마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귀족과 기득권 층의 끊임없는 음모와 술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지리적으로는 방대한 영토의 제국을 통치하기에는 서쪽으로 치우친 로마를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종교적으로도 제국 ..

Faith - Hymn 2005.08.10

[스크랩] [19] 아리우스 이단과 제1차 니체아공의회

“니체아 신경 채택한 최초의 공의회”  재작년 수천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터키 대지진의 진앙지 '이즈니크' 호수변에 자리잡은 이즈니크는 주민 2만여명의 소읍에 불과하지만 로마·비잔틴 시대에는 꽤 이름난 도시 니체아였다. 로마시대에는 비타니아 속주의 주도였고 십자군 전쟁시에는 4차 십자군에 점령당한 비잔틴 제국의 임시 수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회사 안에서 니체아는 맨 첫번째 공의회가 열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325년에 소집된 제1차 니체아공의회는 모든 공의회 중 최초의 공의회이면서 모든 교의논쟁이 발생할 때마다 니체아신경이 정통성의 기준이 될 정도로 가장 중요한 공의회였다. 니체아공의회는 부활대축일의 날짜를 춘분이후 만월 다음 주일로 확정하고 성직자 생활, 교회구조, 공적 참회, 전례문제 등..

Faith - Hymn 200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