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보에서 퍼옴)
영혼의 휴식을 위하여
그대여 그대는 지난 수 개월 동안도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순탄치 않은 경제 여건 속에서 선전하느라고 애 많이
썼습니다. 복잡다단한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을 잃지 않으며 참 무던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대여 이제는 좀 쉴 때입니다. 그대여 휴가 계획은
잘 세웠겠지요.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휴식에 대한 영성가들의 지혜를 전해 드립니다.
휴식은 참 좋은 것이지요. 휴식을 통해서 육체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 버리고 마음의 스트레스 를 벗어버릴 수 있다면 그 보다
바람직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 이 영혼의 휴식입니다. 항심기도로 유명한 토마스 키팅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휴식 그것은 영혼의 휴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영혼은 육신보다 더 많은 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휴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영혼이 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현대의 영성가 헨리 나웬은 다음과 같이
일러줍니다.
“한적한 곳을 모르는 삶, 즉 고요가 함께하지 않는 삶은 쉽게 파괴된다. 누군가 말하기 훨씬 전에 우리에게 말씀하신 분 누군가가
도우려 하기 전에 우리를 낫게 하신 분 누군가가 자유롭게 풀어주기 훨씬 전에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분 누군가가 사랑하기 오래 전에 우리를
사랑하신 분의 목소리를 우리는 고독 속에서만 들을 수 있다. 바로 이 고독 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소유보다 훨씬 중요하며 우리 노력의 결과를 합한
것보다 더 값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나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인은 휴가기간을 조용히 보내지 못하는 편이지요. 고독보다는 집단을 택하며
고요보다는 요란함을 즐기니 말이에요. 그대여 이번 여름에는 꼭 고독과 고요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예수님께서는 그대 영혼의 휴식을 위하여 그대를
‘외딴 곳으로 부르십니다.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휴식의 장소로 치자면 산이든 바다든 숲이든 흙을 밟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밤하늘 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지요.
그런 곳에서라면 영혼의 휴식을 취하는 동안 하느님의 임장(臨場)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체험을 영성일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늘을 보았는가? 당신은 바다를 보았는가? 태양과 달과 별들을 보았는가? 새들과 물고기들을 보았는가? 풍경과 식물 곤충
크고 작은 모든 생물들을 보았는가? 경탄을 자아내는 인간의 심성 그가 지닌 능력 남녀간의 오묘하고 신비한 이끌림에 공명해 보았는가?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모든 것들 뒤에 계신 그 분을 보라.
그래요 그대가 다시 눈을 씻고 대 자연의 자태를 들여다본다면 그대는 오늘도 삼라만상을 빚고 계신 창조주의 손길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시를 써 보세요. “꽃을 본다 / 꽃의 아름다움을 본다 / 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최민순 신부)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의
이번 휴가가 ‘꽃의 아름다우심을 ’을 발견하는 은총의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영국의 낭만 시인 워즈워드가 무지개에서
노래한 그 기쁨을 만끽하기 바랍니다. “내 마음은 기뻐 춤춘다. 창공에 무지개 걸리는 걸 볼 때.”
차동엽 노베르트 신부 (미래사목 연구소장)
신영옥의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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