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科學. 硏究分野

[권오길의 자연이야기]유전자에 정해진 시간만큼만 산다?

鶴山 徐 仁 2006. 7. 9. 18:42

‘오는 백발 지는 주름/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참 그럴 듯한 우탁(禹倬) 선생이 읊은 늙음을 탄식하는 탄로가(歎老歌)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를 누군들 피할 수 있는가. 그러나 나 남 할 것 없이 영생할 것처럼 떼욕심을 부린다. 문지방만 넘으면 저승인 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말이다. 백 살을 산다고 쳐도 고작 3만6500일을 살고 죽는다. 수즉욕(壽則慾)이라고 오랜 삶은 욕됨이다. 건강하게 살다가 자는 잠에 죽는 것이 백 번 옳다. “죽은 자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을 보여 준다”고 하던데…. 버림과 놓음, 썩힘과 하심(下心)이여! 영구히 늙지 않는 몸(ageless body)에 영원히 지칠 줄 모르는 정신(timeless mind)으로 살 수는 없을까? 늙다리의 넋두리가 길었다.

▲ 유전자칩을 사용해 노화연구를 하는 모습.
노화(老化)를 꼭 꼬집어서 이래서 그렇다고 설명하기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유전자시계 가설(genetic-clock hypothesis)과 마멸가설(wear-and-tear hypothesis)로 설명한다. 먼저 유전자시계 가설(遺傳子時計假說)이다. 말 그대로 노화와 죽음은 유전적으로 정해진 시한이 있다고 믿는다. 유전자(遺傳子·DNA)가 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서 노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무릇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장수집안’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 여기서 ‘집안’이란 바로 ‘유전자’를 뜻하는 것으로, 아무리 건강을 잘 관리해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세포 안에 나름대로 모래시계(hourglass)를 가지고 세포의 분열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다. 태아의 세포를 조직배양했을 때 70여번 세포분열을 하는 데 반해서 70세 노인의 세포를 같은 조건에서 키웠더니 20~30번 분열을 하고 말더란다. 그러니 세포 속에 뭔가 정해진 프로그래밍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초파리나 꼬마 선충류(線蟲類)에서 정상수명보다 2배 이상 오래 사는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변종이 생겨나니, 사람으로 치면 150살을 너끈히 사는 놈이다. 한마디로 유전자가 노화를 결정하고, 사람에서도 그 유전자가 달라서 수명(壽命)은 선천적이라는 것.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죽고 삶이 하늘에 매였음!

다음은 핵산마멸가설(核酸磨滅假說)이다. 세포가 분열하려면 염색체가 늘어나고 그 염색체를 구성하는 DNA가 복제해야 한다. DNA복제(複製)가 여러 번 연이어 일어나면 DNA 가닥의 끝자락(telomere)이 조금씩 마모(닳아빠짐)하면서 줄어들어 나중에는 복제가 멈추고 따라서 세포가 생명력을 잃는다. 이것이 노화요 죽음인 것이다. 이렇게 생명을 담보하고 있는 DNA가 자외선, 방사선, 화학물질들에 노출되어 손상을 입기도 한다.

늙음의 이유가 이것 말고도 여럿 있겠지만, 세포호흡 과정에 생기는 산소유리기(oxygen free-radical)가 세포를 상하게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산소라는 것이 똑 그렇다. 야누스가 두 얼굴을 가졌듯이 말이다. 이런 유리기(遊離基)를 없애주는 항산화 물질(antioxidant)이 과일과 채소에 많다 하여 “오래 살려거든 샐러드를 많이 먹으라”고 한다.

두 주먹 꽉 쥐고 태어나 쫙 펴고 가는 빈손 인생인데, 추잡스럽지 않게 탈 없이 살다가 자는 잠에 고종명(考終命)하고 싶다. 사람들아, 인간 한살이가 턱없이 덧없고 부질없더라! 왜 이러지, 내가 죽을 때가 다 되어가나?


강원대학교 명예교수(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