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든 초를 다툰다. 빠른 것이 미덕이다.
이 때문에 목적 달성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은 직선으로 뻗어가고 있다. 포근한 산천을 품고 달리는 철로도 다를 것 없다. 무조건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이로 인해 기차는 점점 빨라지면서 마침내 시속 300km의 KTX가 출현했고, 100여 년 한반도를 누비던 곡선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여행에서는 다르다.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뭐니뭐니 해도 곡선이다. 그것도 한국 여성의 단아함을 상징하는 버선코와 같은 유려함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의 곡선이다. 국토의 살 속을 구불구불 파고들어 가는 곡선은 직선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정취와 여유를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쪽 또는 저쪽을 돌아봐도 온통 추억이 숨겨져 있다. 곡선이 더욱 좋은 것은 곳곳에 쉼표와 같은 간이역이 있어서다. 간이역은 사전적 의미로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이다. 그만큼 오지이고, 한적한 곳이라는 뜻이다. 오직 기차만이 세상과 연결해 주는 역도 있다. KTX 같은 급행열차로서는 결코 만날 수 없다. 이번 주말은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곡선 여행'의 낭만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떠나자.
■ 추전역(강원 태백)
해발 85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다.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태백시보다 200m나 높다. 싸리밭골에 세운 역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는데 5.16 이후 국토 건설 단원들에 의해 1973년 세워졌다.
제천과 정선을 지나는 태백선 열차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긴 굴인 정암터널(4505m)을 지나면 바로 닿는 곳이다. 이곳에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차례 기차가 정차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눈꽃열차나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접근이 쉽지 않다.
지금은 여객 업무를 차내에서 하는 까닭에 예전 역사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태백시의 관광 자원과 태백선의 역사를 소개하는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한 켠에는 열차 시각표와 운임표가 붙어 이곳이 역이었음을 알려 준다. 주변에는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가 있다. (033)553-8550.
■ 승부역(경북 봉화)
승부리는 역을 품고 있는 마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산골 오지다. 어느 정도냐 하면 30여 가구가 전부로 여인숙도 구멍가게도 없다. 미리 민박을 예약하지 않으면 숙식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래도 규모는 작지만 영동선에서 없어선 안될 역으로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1960년대 이곳에서 근무하던 한 역무원이 역사 옆 바위에 적어 놓은 시구에서 잘 나타난다. '승부역은/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나/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승부역은 또 철도공사가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전국 주요 100개 역 가운데 하나이다. 역에서는 이를 기념해 환상선 눈꽃열차를 소재로 스탬프를 작성, 방문자들에게 기념 날인해 준다. (033)580-4222.
■ 심포리역(강원 삼척)
영동선상 해발 450m로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승용차 접근이 불가능한 역이다. 그래서 이곳 역무원들은 "사람이 그립다"라고 말한다. 아침과 저녁 두 편의 기차가 밖과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통로다.
이곳은 다른 역과 다른 독특한 방식의 철도 운행으로 유명하다. 60여 년 전 건설 당시 아래쪽 흥전역과는 워낙 경사가 심해 증기기관차 운행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지그재그식으로 4km길이의 복선의 레일을 깔아야 했고, 지금도 기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오르고 있다. 또 표고차가 200m에 불과한 위쪽 통리역과는 대형 모터가 끌어올리는 캐이블카와 비슷한 인클라인 방식을 도입했으나 최근에는 8km에 이르는 나선형의 터널로 연결돼 있다. (033)552-7702.
■ 정선선(강원 정선)
증산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조양강을 따라 별어곡 신평 정선 나전역 등 고만고만한 간이역이 줄지어 있어 어디를 가도 정감이 넘친다. 정선에서는 화암약수 화암굴 소금강 등 '정선8경'이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있고, 아우라지역에서는 정선아리랑의 고장인 아우라지를 둘러볼 수 있다. 청량리역(02-962-7788)에서 증산역 간 태백선이 하루 5회,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는 하루 4회 운행한다.
■ 김유정역(강원 춘천)
소설가 김유정(1908~37)의 이름을 빌려 지난해 12월 1일 새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이름을 딴 역이다. 이전까지는 신남역이었는데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촌을 지나면 닿는다.
이름이 바뀐 것은 역 앞 강원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이 바로 김유정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소설 <만무방>을 읽은 사람들은 노름방과 닭싸움을 기억하고, <봄봄>을 읽은 이는 봉필 영감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김유정의 소설은 대부분 고향 마을을 무대로 삼고 있다. 아직도 당시의 풍경을 맛볼 수 있다. 김유정이 세운 '금병의숙'이 있고, 곳곳에 노름방, 산골 나그네의 주막과 물레방아터, 봉필 영감의 집 등이 친절하게 안내돼 있다. (033)261-7780
■ 희방사역(경북 영주)
주말이면 소백산을 오르기 위한 등산객으로 잠깐 붐빌 뿐 평일에는 한산한 곳이다. 하루 네 차례 중앙선 상.하행선이 멈추지만 평소 타고 내리는 이는 겨우 열 명 안팎이다. 역 뒤쪽으로 복원한 죽령 옛길이 있고, 희방사가 있다. 소백산 남쪽 기슭 해발 850m 지점에 터를 잡은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두운조사가 창건했다. 희방사 가는 길에 영남에서 최고의 높이(28m)를 자랑하는 희방폭포도 볼거리다. (054)638-7788.
'대한민국 探訪'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란 융단 깔린 백운산 vs. 분홍 물감 뿌린 비슬산 (0) | 2006.05.20 |
---|---|
가평 수목원의 아름다운 풍경 (0) | 2006.05.20 |
속리산 법주사 (0) | 2006.05.13 |
5월 13일 - 주왕산 (0) | 2006.05.13 |
[전남 보성] 녹차밭 (0) | 2006.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