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유근종 기자]
해마다 봄이면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매화를 감상하는 것은 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고향인 산청 지리산 자락에 유명한 매화가 있다는 것이 내겐 크나 큰
행복이다.
지난 몇 년간 매화가 피는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가 않았는데 올해는 지난 몇 년간의 정성에 대한 화답인지 적절한 시기에 그 유명한 산청삼매를 감상할 수 있었다.
우선 단속사터에 정당매(政堂梅)가 있다. 정당매는 통정공 회백(通亭公 淮伯) 선생과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 형제가 유년시절 지리산 자락 신라고찰 단속사(斷俗寺)에서 공부하던 시절 심은 매화다. 그 후 통정선생께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부터 정당매로 불리면서 6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1982년부터 경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정당매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이다. 평소 좋아하던 사진가의 홈페이지를
들렀는데 매화문화기행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는 나 역시 매화를 좋아하는지라 꼭 한 번 그 발자취를 따르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그 해 봄에 꽃샘추위가 닥쳐 정당매를 만나러 간 날 꽃들은 너무 초라하게 얼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 해로 미뤘는데 그 다음에는 시기를 또 잘 맞추지 못해 또 다음 기회로 미룬 것이 올해다. 이번에는 제대로 정당매의 향기에 취했다.
며칠 전 오전에 시간이 나서 집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단속사터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나섰다. 화창한 봄날이었지만 지난 몇 년간 마음을 열어주지 않던 정당매에 대한 큰 기대 없이 길을 들었는데 단속사터 석탑
앞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순간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와~ 올해는 꽃이 폈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멋진 매화를 보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렸던가?!
이 정당매는 지금은 없어진 단속사의 몰락을 지켜봤을 것이고 임진왜란도 겪었을 것이다. 정당매가 당했을 고행을 생각해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 한 켠이 싸한 느낌이다. 또 시간 나면 오리라 약속하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남사예담촌에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남사 어딘가에 원정공 하즙(河楫) 선생이 심었다는 원정매와 남명 조식(曺植) 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와의 만남은 며칠 뒤로 미루었다.
정당매를 보고 며칠이 지난 일요일 아침 덕산에 갈 일이 있어 오늘은
벼르고 별렀던 남명매와 원정매를 보기로 했다. 덕산이 가까워지면 손에 잡힐 듯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남명 선생은 선생의 시에서 덕산에 터 잡은 이유를 시로 표현했다.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서라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건가?
십리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 남명 조식, 덕산에 터를 잡고서
남명매는 산천재 앞뜰에 은은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 남명
선생이 매화향에 취했을 옛 시절을 상상해 본다.
자리를 옮겨서 들러 잠시 마음이라도 씻고 올 요량으로 덕천서원 앞에
세워져 있는 세심정(洗心停)에서 아이와 함께 덕천강을 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이번에는 원정매를 보기위해 길을 떠났다. 원정매는 32대째 살고 있다는
하영국씨의 분양고가(汾陽古家)에 있다. 고려말의 문신 원정공 하즙(元正公 何楫) 선생이 심었다는 매화이다.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던 터라 그 곳
주민께 여쭸더니 상세히 가르쳐 주셔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그 집 바깥에 <매화집>이라는 푯말까지 써
놓았다.
원정매는 수령이 700여년 되는데 올해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다. 노거수라 이제 꽃을 맺기도 힘들었는지 맺어 있는 꽃망울조차 힘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곁에 심어둔 나무에서 홍매화를 피워내고 있었다.
조만간 원정매가 꽃을 피울텐데 그 때 다시 오리라 다짐해본다. 원정매 앞 시비에 쓰여진 원정공 선생의 영매시(詠梅侍)를 읊어본다.
집 앞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한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 단속사터에 있는 정당매 |
ⓒ2006 유근종 |
지난 몇 년간 매화가 피는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가 않았는데 올해는 지난 몇 년간의 정성에 대한 화답인지 적절한 시기에 그 유명한 산청삼매를 감상할 수 있었다.
우선 단속사터에 정당매(政堂梅)가 있다. 정당매는 통정공 회백(通亭公 淮伯) 선생과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 형제가 유년시절 지리산 자락 신라고찰 단속사(斷俗寺)에서 공부하던 시절 심은 매화다. 그 후 통정선생께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부터 정당매로 불리면서 6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1982년부터 경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희미하게 보이는 정당매 둥치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
ⓒ2006 유근종 |
그런데 하필 그 해 봄에 꽃샘추위가 닥쳐 정당매를 만나러 간 날 꽃들은 너무 초라하게 얼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 해로 미뤘는데 그 다음에는 시기를 또 잘 맞추지 못해 또 다음 기회로 미룬 것이 올해다. 이번에는 제대로 정당매의 향기에 취했다.
▲ 아이도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도 아니다 |
ⓒ2006 유근종 |
이 정당매는 지금은 없어진 단속사의 몰락을 지켜봤을 것이고 임진왜란도 겪었을 것이다. 정당매가 당했을 고행을 생각해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 한 켠이 싸한 느낌이다. 또 시간 나면 오리라 약속하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남사예담촌에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남사 어딘가에 원정공 하즙(河楫) 선생이 심었다는 원정매와 남명 조식(曺植) 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와의 만남은 며칠 뒤로 미루었다.
▲ 남명매와 산천재 |
ⓒ2006 유근종 |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서라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건가?
십리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 남명 조식, 덕산에 터를 잡고서
▲ 짙은 그림자만큼이나 향기 짙은 남명매 |
ⓒ2006 유근종 |
▲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 |
ⓒ2006 유근종 |
▲ 아직 꽃을 피워내지 못한 원정매 |
ⓒ2006 유근종 |
원정매는 수령이 700여년 되는데 올해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다. 노거수라 이제 꽃을 맺기도 힘들었는지 맺어 있는 꽃망울조차 힘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곁에 심어둔 나무에서 홍매화를 피워내고 있었다.
조만간 원정매가 꽃을 피울텐데 그 때 다시 오리라 다짐해본다. 원정매 앞 시비에 쓰여진 원정공 선생의 영매시(詠梅侍)를 읊어본다.
집 앞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한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 원정매의 지척에 있는 600년된 감나무 |
ⓒ2006 유근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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