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 마라나타
신명기 10장 12절 - 13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모든 사람은 요망 사항이라는 요구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요구를 식욕이라고 하고, 남녀가 이성을 그리는 성적인 요구를 성욕이라 말하고, 잠을 자고 싶고, 쉬고 싶고, 놀고 하는 요구 등을 정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무시 할 때에는 몸에 이상이 생기고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육체의 요구를 충족시켜 가면서 살아야만 건강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요구가 지나치어 貪慾이란 잘못된 요구가 나오게 됩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적당하게 먹어야지 맛있고 배고팠다고 많이 먹어 過食을 하면 배탈이 나고 설사가 나고 토사 광란이 되는 것입니다.
잠도 적당히 자야 하지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면 게으름뱅이가 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요구도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겠다는 돈 욕심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요구 사항입니다. 이 요구를 지나치게 충족시키려다가 한국의 장영자와 같이, 중국의 한옥희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물질적인 욕구가 충족이 된다고 살지는 못합니다. 정신적인 요구가 또 있습니다. 이 정신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문학, 예술, 종교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든 요구는 적당하게 충족 될 때에 만족과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이 지나치면 모든 요구가 오히려 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요구를 크게 나누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肉慾이 있습니다.
육신이 요구하는 것으로 목이 마르면 물이 먹고 싶고 잠을 자고 싶고 먹고 싶고 쉬고 싶은 것은 육신의 요구입니다.
육신이 필요하여 이 요구가 생김으로 이 요구가 있을 때에는 적당하게 이 요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이러한 육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본능을 주셨기 때문에 이 요구를 지나치게 절제를 하면 몸에 병이 생기고 건강이 해쳐지고 사람이 추잡하게 보입니다.
오늘날 건강법이라는 많은 장수 법이 나왔지만 하나님이 주신 건강법은 육신의 요구를 잘 딸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입니다.
짜게 먹으면 물이 먹히고 고기를 많이 먹으면 물리고 수면이 부족하면 졸리는 것 등 육신의 요구를 무시하지 말고 잘 지켜 주는 것이 최상의 건강법입니다.
2. 情慾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래도 내 감정으로 요구하는 것이 정욕입니다.
나이가 들면 장가를 가고 싶고 시집을 가고 싶은 것은 정욕이요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 책을 많이 읽는 것이나 문학가나 시인이나 음악 등의 예술도 역시 정욕에 속합니다. 철학이나 과학 등 모든 학문 예술이나 권세욕 등은 모두 정욕에 속합니다.
정욕이 없으면 사람이 발전이 되지를 않습니다. 개나 돼지나 소나 짐승이나 원숭이를 보면 육욕이 있어서 먹고 잠도 자고 하지만 정욕이 발전하지 못하니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비를 맞으며 잠을 자고 있고 까마귀는 지금이나 5만 년 전이나 똑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문명의 발전이나 문화의 발전은 정욕이 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 정욕도 과욕이 아닌 정상적인 욕심을 발전시켜 나감으로 지성인이 되고 문화인이 되는 것입니다.
3. 靈慾이 있습니다.
영욕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영적인 욕심입니다.
로마서 1장 18절 -23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에게는 神性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는데 이 신성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망하게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핑계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욕심이 있어서 종교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미개한 민족이요 아직도 옷을 입지 않고 살고 있는 원시인과 같은 사람들도 종교성을 갖고 있어 그들 나름대로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잘못되어 귀신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사람은 영욕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욕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허망한 것을 찾았기 때문에 핑계치 못하게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옛날에 예수를 믿지 않고 죽어 지옥에 간 사람들은 예수의 복음을 듣지 못하였음으로 지옥에 갔다고 핑계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신성을 잘못 사용한 죄를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품성에 영욕을 주어서 하나님을 찾게 하였지만 이 영욕을 억제하여 일부러 故意的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혹시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며 잘 못 찾아 귀신을 섬기고 마귀를 섬긴 사람, 속아서 잘못 된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을 책임 져야 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 - 23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영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여 잘 못 찾아 우상이나 귀신이나 악한 영, 마귀를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볼 때에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千萬多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찾고 믿고 경외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격스러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성경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고 우리 속에 양심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우주 만물을 보아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허탄한 마귀, 귀신, 우상을 숭배하였으니 핑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욕, 정욕, 영욕의 세 가지가 채워져야만 만족이란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밥 잘 먹고 공부 많이 하고 장가를 잘 가고 공부를 많이 하고 문화인이 되었다고 만족한 것이 아닙니다.
영욕을 채우지 못하거나 잘 못 채우면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돈이 많고 잘살고 문화, 문명이 발달한 나라인 미국이 어찌하여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까?
영욕을 채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될 때에 참 만족을 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들은 자기가 필요한 요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중에 가장 요구가 많은 피조물입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요구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라는 것으로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요구를 하시었고 이 요구를 하나님께 충족시켜 드리지 못함으로 죄를 짓게 되고 죄인이 되고 사망과 저주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요리 문답에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과 순종하기에 부족한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이 요구를 다 기억 할 수도 없고 실행 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요구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의 요구만이라도 알고 이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하여야 할 마땅한 일인 줄로 압니다.
1. 하나님을 敬畏하라
창세기 22장 12절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고 그 나머지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안하고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마태 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오늘날은 예수를 안 믿는 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고 용서의 하나님을, 축복의 하나님만을 말하여 사람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였기 때문에 잘 못 된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잘 하는 목사를 진리의 말씀만을 전한다 하며 사람들이 모여들고 대형 교회가 되고 있으니 다른 목회자들도 이를 본 받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요사이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한 곳도 없었던 일이 자기의 편리를 따라서 주일 밤 예배를 석양 예배라고 말하여 오후 3시나 4시에 드리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자기의 편리가 먼저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도 잘 되고 부흥이 되는 교회는 미국인들도 석양 예배라는 것이 없이 주일 저녁에, 6시에 밤 예배를 드리고 있고 설교도 30분만하는 것이 아니라 1시간 이상을 말씀을 전하고 듣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줄어들고 안 되어 가는 교회는 아예 저녁 예배가 없이 일 주일에 주일 아침 예배만 드리고 있음을 볼 때 한국 교회도 많이 변질이 되고 있음을 알고 심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사라진 일은 치리라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당회에서 치리 하는 일을 많이 하여 교인들을 바로 잡아 나아갔는데 요사이는 당회가 주된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부수적인 일만 합니다. 교인을 치리 하면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옮겨감으로 이를 두려워하여 불의와 타협하고 눈감아 주고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수주일을 부르짖지 않고 주일을 범하는 자들의 편리를 보아주고 있는 일도 재미 동포 교회에 흔히 보고 있습니다.
교회의 타락이요 변질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의 편리를 하나님이 따라오게 하는 내가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고 앞에 있는 그러한 신앙 자세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할 때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니 그대로 순종하고 나갔을 때에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죽이고 바치고서라도 두려우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마태 복음 22장 37절 - 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의 가장 큰 요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라는 요구입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을 공경하며 섬기며 살 때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첫째 되는 요구입니다.
신명기 10장 12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마음 다하여 섬기고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제일로 삼고 사랑하며 섬기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 감정이 하나님보다 먼저가 되고 내 편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힘들고 어렵고 까다로워도 그 요구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내 편리한 대로 나의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에 교만한 자, 내가 하나님 보다 더 높았던 자, 하나님을 심부름만 시켰던 사람이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하나님을 제일로 먼저 삼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거룩하게 살기를 요구하십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 되다.는 말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完璧한 삶을 거룩하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 성도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하시며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를 요구하십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3절 - 17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지내고 거룩하게 살라고 베드로 사도는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한 삶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죄가 없어야 거룩하여 집니다
회개를 하면 지금까지의 죄가 용서를 받아 눈과 같이 희게 깨끗하게 사함 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2.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근신한다는 말은 삼가서 조심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반성하면서 말과 행동을 항상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회개한 다음에는 반드시 이러함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3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우리가 회개를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았으면 이제부터는 허리를 동이고, 허리를 묶어 매고 긴장을 풀지 말고 단단한 각오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잠을 잘 때에 허리를 동이고 자는 사람이 없이 허리를 풀고 잠을 자게 되지만 힘을 쓸 때에는 허리를 동이고 일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 반성하면서 말과 행동을 삼가 조심하면서 살아 갈 때에 거룩한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4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면에서 순종하여 마치 효자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순종하는 자식들은 부모의 말에 모두 예라는 대답을 하고 부모의 말이라면 나의 생각과 달라도 그대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거룩한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4. 사욕을 본 삼지 말아야 거룩한 자가 됩니다.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던 때에는 나의 私慾, 내 개인의 욕심을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하고 살았습니다. 이제 예수를 믿은 후에는 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사욕은 절대로 거룩한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죄가 되고 망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5장 19절 - 21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내 개인의 욕심을 따라서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하는 일만 되는 것임으로 우리는 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요구를, 성령의 요구를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갈라디아 5장 1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 유일한 길은 성령을 쫓아서 행할 때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 때에 육체의 사욕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5. 모든 행실에 거룩하여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는 행동의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를 부르신 자,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모범 삼고 예수같이 살기를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성경을 열심히 읽음으로 예수님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기도를 열심히 하여 예수님을 닮은 삶이 되어야 할 것이요 가난한 자를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을 열심히 하였듯 나도 그와 같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효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겸손하게, 온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거나 매일 부딪치는 사건을 대 할 때에 먼저 예수님 같았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하였을까를 먼저 생각한 후에 예수님과 같이 나도 결정하고 행동하여야 할 것입니다.
회개하고 근신하고 순종하며 사욕을 쫓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예수님을 표준삼아 모든 행실에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지옥에 갈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지 상관이 없지만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사람들은 거룩하게,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
3.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 1서 4장 20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마태 복음 22장 39절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로 두 가지가 있을 때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며 지키는 자입니다.
요한 복음 14장 21절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우리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말은 다 지키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사다가 달라고 말을 하면 귀찮고 힘들어도 기꺼이 움직입니다. 연애를 하여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 졌을 때에는 신경질을 냅니다. 우리 집 사람이 시장에서 동태를 사 오라고 하면 나는 어느 때는 기꺼이 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싫다고 하며 핑계를 꾸며댑니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순종하는 일에 다른 이유를 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로, 순종하는 일에 이유가 붙어서 거역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25장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사랑을 하여야 하겠지만 나와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우리는 사랑을 하여야 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말이 항상 앞서고 있고 사랑의 실천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중에 가장 크게 사랑하는 것은 지옥에 가고 있는 사람을 천국으로 가게 하는 일이 가장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나의 재산이나 귀한 것을 희생하여서라도 한 사람을 천국으로 들여보내는 이 사랑의 실천이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라가는 것이 진실 된 사랑입니다.
내가 희생의 수고를 하여서라도 이웃을 사랑함으로 저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대한 사랑의 요구입니다.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나의 본분임을 잊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림으로, 하나님을 빛나게 하여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1. 믿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로마서 4장 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있습니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에 미친 사람들을 보면 라스베가스에 가면 돈을 잃는 것이 뻔한 이치인데도 자기만은 돈을 잃지 않고 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니 돈을 꾸어서라도, 거짓말을 하여서라도 도박을 하는 행동을 합니다.
처음부터 돈을 잃을 것을 아는 사람은 도박을 하지 않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라스베가스에서 관광을 하려고 하지 도박을 하려고 가지는 않습니다. 호텔비가 아주 싸고 좋은 구경거리가 공짜로 많고 음식도 아주 싸고 좋으니 가족들과 관광을 하려고 가고 혹시 도박장에 가도 자기 분수에 맞는 재미로 약간 즐기고 돌아오지만 동양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셈의 자손이 되어서인지 돈을 딴다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다른 구경거리는 구경을 하지 않고 밤을 새우며 도박만을 하다가 몽땅 잃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이와 같이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상급을 주시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일에 충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는 안 보이는 것 같지만 믿음과 같이 똑똑히 잘 보이는 것도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을 보면 성도들의 믿음이 너무 명확하게 보여 지고 있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염려하며 저에게 맡는 말씀을 설교하고 권면하게 됩니다.
분명히 아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 행함이 있고 이 행함이 따르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여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2.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누가 복음 15장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탕자가 회개하며 돌아 올 때에 기뻐하시어 소를 잡으며 잔치를 벌인 것과 같이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 올 때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사람에게 너무 기뻐하시어 그 회개를 기뻐 받으신 증거로 성령을 주십니다.
회개한 사람은 다시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마치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은 일, 술 먹은 사람이 토한 술과 밥찌꺼기를 다시 먹지 않는 것과 같이 더럽게 여기고 다시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힘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개를 4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진돗개가 되어 영리하여 심히 사랑스럽지만 어쩌다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져 한동안 상대도 안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럽게 여기는 죄를 다시 반복하여 먹는 것은 회개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님을 알고 하나님께 회개를 하고 회개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드릴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3.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무엘 상 15장 22절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일 자체를 영광으로 받으십니다. 부모가 자식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 할 때에 부모가 기뻐하듯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 할 때에 하나님은 순종을 번제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순종하는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순종하지 않는 것이나 순종하기에 부족한 것이 죄임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로 순종하는 일, 나의 생명과 하나님의 말씀 순종과도 바꾸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잠언 15장 8절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진심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기 위하여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시는 동안은 밤을 새우며 기도를 하고 산기도, 새벽기도 등 짬이 날 때마다 기도를 쉬지 않으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도의 단계를 높여서 나의 소욕을 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기보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하는 기도 고단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기도를 하는 우리가 될 때에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5.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요한 복음 15장 8절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마태 복음 5장 16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아름답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를 믿는 자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고 장로가 장로답지 못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반드시 벌하십니다.
이 외에도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함으로(벧전4:14), 정직한 것(잠 11:20), 기쁨으로 헌금을 하는 것(고후 9:13), 복음 전하는 것(살전 2:4), 괴로움을 받고 참는 것(벧전 2:20) 등 성경에 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이 있음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크게 더 많이 영광을 돌릴까를 연구하며 힘쓰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를 연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많이 기쁘시게 할까를 연구하고 사는 사람이 참된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정리: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요구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의 삶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돈이 많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과 가난하게 힘들게 사는 사람과 五十步百步입니다.
이렇게 살아도 100년을 살지 못하고 저렇게 살아도 100년을 살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큰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요구를 많이 충족시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어려워하며 섬기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세상 사람과는 구별되게 어딘가는 다르게 살아갑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벽한 삶을 살도록 힘쓰며 살아갑시다.
3.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가 있습니까?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갑시다.
믿음과 순종과 회개와 기도와 선한 열매를 많이 맺으며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외에 당신 개인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 드릴 때에 내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도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도 응답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는 들어 드리지 않으면서 내 요구만을 잔뜩 널어놓으니 기도의 응답이 없고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킨 후에 임하는 것을 명심하고 나의 행복을 위하여서라도 먼저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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